패션의 메카 유럽이 중국 초저가 플랫폼 쉬인을 향해 칼을 빼 들었다. 그동안 환경 훼손과 노동 착취로 비판을 받아온 쉬인이 최근 어린이를 닮은 성인용 인형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에 불을 지피면서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쉬인의 프랑스 시장 운영 중단 절차를 개시한 데 이어 쉬인이 프랑스로 발송한 소포 20만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한편, 쉬인을 필두로 유럽 내 C커머스에 대한 제재 분위기가 고조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소액 면세 제도 폐지 이후 유럽 진출에 박차를 가하던 이들 기업의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정부, 쉬인 운영 중단 절차 돌입

샤를드골 공항에서 세관원들이 쉬인에서 발송된 제품들을 전수 조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샤를드골 공항에서 세관원들이 쉬인에서 발송된 제품들을 전수 조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일 관련 업계와 AP 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최근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쉬인의 프랑스 시장 운영 중단 절차를 개시한 데 이어 쉬인을 통해 발송된 소포에 대한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아멜리 드몽샬랭 공공회계부 장관은 지난 6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위터)에 “샤를 드골 공항 세관원들이 쉬인에서 발송된 소포 100%, 20만 개를 검사할 것”이라며 “이 전례 없는 규모의 작전은 제품의 적합성, 신고 내용의 진실성, 세관과 납세 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같은 날 프랑스 세관 직원과 항공 경찰, 검찰 등 수사 요원들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쉬인을 통해 발송된 소포인 20만개 전량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이들은 소포를 뜯어 제품 유해성과 적합성 등 법률 위반 여부를 확인한 후 다시 포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두고 관련 업계에서는 세관이 나서 개인의 해외 직구(직접 구매) 상품을 확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앞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 5일 쉬인 플랫폼에 대한 운영 중단 절차에도 착수했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쉬인에서 대량의 무기, 전쟁 자료 등 불법 상품이 발견됐다며 쉬인에 대한 접속 중단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경제부는 “쉬인의 플랫폼 내 콘텐츠가 프랑스 법률과 규정을 완전히 준수함을 입증할 때까지 운영 제한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며 “관련 장관들이 48시간 이내 중간 점검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쉬인은 곧바로 “프랑스 시장 내 독립 판매자의 상품 거래를 일시 중단한다”라며 “이번 조치는 프랑스 법률을 준수하고 소비자 보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쉬인 입점 반대 플래카드. 사진=연합뉴스
쉬인 입점 반대 플래카드. 사진=연합뉴스

한편, 프랑스 정부가 쉬인을 향해 칼을 꺼내든 건 최근 해당 사이트에서 어린이 형태의 성인용 인형이 판매된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지난 1일 프랑스 공정경쟁국(DGCCRF)는 쉬인이 ‘어린이처럼 생긴 성인용 인형’을 판매했다며 해당 사건을 검찰과 영상·통신규제위원회(ARCOM)에 공식 이관했다. 이후 쉬인은 성인용 인형 제품 판매 중단과 함께 ‘성인용품’ 카테고리를 일시적으로 비활성화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프랑스 내 부정적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쉬인이 파리의 심장부로 불리는 시청 건너편에 자리한 베아슈베(BHV) 백화점에 첫 오프라인 상설 매장을 연 것도 논란을 키웠다. 쉬인 측은 이번 매장 개점을 두고 “패션 수도이자 현대 백화점의 발상지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는 입장이지만, 프랑스 패션계를 비롯해 주변 상인들은 그동안 프랑스가 고수해 온 ‘장인 정신’과 충돌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사회당 소속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시장 후보는 “BHV 측은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쇼윈도를 제공함으로써 악마와 거래했다”라고 비판했고, 녹색당 소속 다비드 벨리아르 파리 부시장도 “정부가 나서 쉬인을 금지하라고 촉구하지 않으면 쉬인의 행위에 ‘공범’이 될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EU, 알·테·쉬 ‘경계 태세’ 돌입

파리 쉬인 매장에서 의류 구매한 남성. 사진=연합뉴스
파리 쉬인 매장에서 의류 구매한 남성. 사진=연합뉴스

쉬인을 겨냥한 프랑스 정부의 제재는 C커머스 플랫폼 전반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문제가 향후 중국 플랫폼에 대한 EU 차원의 규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중국발 소액 소포에 대한 관세 면세 제도를 폐지했다. 기존의 경우 800만 달러(약 112만원) 미만 수입품의 경우 관세를 면세해 왔는데 이를 중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C커머스 판매 상품의 가격이 오르며 미국 내 점유율이 줄자, 이들 기업은 미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유럽을 점찍고 물류망을 확충하는 등 시장 공략에 나섰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쉬인의 월간 활성화 사용자 수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13~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로 인해 유럽 내 관련 산업 생태계 파괴와 함께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잇따르며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최근 불법 유통에 따른 문제까지 불거지자 결국 각국 정부 차원에서 단속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최근 쉬인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 프랑스 정부는 쉬인 이외에 테무, 알리익스프레스, 위시 등 초저가 이커머스 기업 4곳을 상대로 미성년자 유해·음란물 유통 혐의 수사에 착수했다. 이들 기업이 성도착적인 사진을 별도의 성인 인증 절차 없이 공개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플랫폼 중 위시를 제외한 3개의 플랫폼은 모두 중국 플랫폼이다.

이외에도 이탈리아는 자국의 패션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중국산 패스트패션 제품에 대한 추가 부담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프랑스 정부의 경우 당국 자체 조사 착수에 더해 유럽연합(EU) 집행부에, 쉬인에 대한 전면 조사를 요청한 상황이라 해당 문제를 둘러싼 공방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C커머스에 대한 유럽의 공세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이들 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C커머스가 유럽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철수한다면, 이들 기업의 한국 시장에 대한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한 관련 업계 관계자는 “C커머스를 포함해 해외 직구가 늘고 있는 상황에 이들 중 상당 기업은 국내 플랫폼과 달리 인증과 AS 의무가 없어 ‘역차별’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라며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태는 언제고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최소한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상품 판매에 대한 조치는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쉬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호호혜 원칙에 따라 중국 플랫폼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라며 “결국 높은 상품 품질과 제조 능력 등 우리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쉬인의 사례를 통해 보았듯 진출하는 국가의 문화와 역사적인 부문을 잘못 이해하고 해당 시장에 접근할 경우 응당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 플랫폼 역시 해외 시장 진출 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진출 국가의 문화와 정서를 면밀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