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사진 = 김호성.
여의도 증권가. 사진 = 김호성.

코스피가 외국인 대규모 매도세에 휘청이고 있다. 미국발 '인공지능(AI) 거품론' 확산과 원달러 환율 급등이 겹치면서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코스피가 4000선을 밑돌며 3900대까지 밀려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 외국인 7조 순매도…역대 최대 규모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3∼7일)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7조2640억원을 순매도했다. 주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직전 최대 기록은 2021년 8월 둘째 주의 7조454억원이었다. 당시에도 D램 가격 하락 우려로 반도체주 중심의 투매가 이어진 바 있다.

이번주 외국인은 3일부터 7일까지 5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유지했다.

3일 7950억원이던 순매도액은 4일과 5일 각각 2조원대로 급증했고, 6일 1조7000억원, 7일 455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4일 순매도액은 2조2280억원으로, 2021년 8월 이후 4년 3개월 만의 최대치였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대형 반도체주에 집중됐다. SK하이닉스가 3조7150억원, 삼성전자가 1조5030억원 순매도되며 두 종목이 전체 외국인 순매도의 72%를 차지했다.

반면 LG씨엔에스(1940억원), SK스퀘어(1790억원), LG이노텍(690억원), 이수페타시스(490억원), 하이브(480억원) 등은 순매수했다.

외국인의 순매도가 이어지면서 코스피는 이달 들어 3.7% 하락했다. 지난 5일에는 2.8% 넘게 급락하면서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가 발동되기도 했다.

증권가는 "AI 거품론에 따른 미국 기술주 급락과 고점 부담이 외국인의 매도세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 AI 버블론·고환율·미 셧다운 '3중 악재'

증시 불안을 키운 건 미국발 악재다.

미국 주요 투자은행 CEO들이 "AI 관련 주식이 고평가됐다"고 언급한 데다, 오픈AI 최고재무책임자(CFO)가 "AI 투자를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팰런티어 등 미국 AI 관련 종목이 급락하며 거품 논란이 다시 부각됐다.

이경민·정해창 대신증권 연구원은 "AI 기대감, 미·중 정상회담, 양적 긴축 종료 등 낙관론이 한꺼번에 반영된 뒤 11월 들어 이슈 공백기에 접어들면서 차익실현 압력이 커졌다"며 "단기 과열 해소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진단했다.

환율 급등도 매도세를 부추겼다.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56.9원으로 마감해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밤 사이 장중 146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미국 고용 지표 부진이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키우며 원화 약세를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미국 고용정보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는 "10월 미국 기업의 감원 인원이 15만3074명으로 2003년 이후 최대"라고 밝혔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셧다운 장기화와 대미투자 확대가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1480원대 진입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반대매매 급증·개인 방어 '역부족'

증시 급락과 함께 반대매매 물량도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6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 규모는 219억원으로 올해 들어 최고치다. 9월 말 197억원 대비 22억원 증가했다. 이달 들어 일평균 반대매매액은 149억원으로, 지난달(75억원)보다 두 배 수준이다.

코스피는 지난 3일 4200선을 돌파한 이후 이후 급락세를 타며 7일 한때 3900선이 붕괴되면서, 개인투자자가 7조4430억원 순매수하며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상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반도체 중심 주도주의 숨 고르기 국면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 "실적주 중심 대응 필요"

증권가는 당분간 증시 상승 모멘텀이 부재한 만큼 기업 실적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까지 상승해 외국인 수급 반전은 당분간 어렵다"며 "셧다운 해소 여부,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엔비디아 실적 등 주요 이벤트가 변동성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경민·정해창 연구원은 "AI 버블 우려에도 중장기 상승 추세는 유효하다"며 "펀더멘털 훼손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 주에는 하이브, 엔씨소프트, 삼양식품 등의 3분기 실적이 예정돼 있다. 또 11일 열리는 중국 '광군제'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논의 등 정책 모멘텀이 재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배당 분리과세를 30% 이하로 낮출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주식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13일 발표될 미국의 10월 CPI가 연준의 금리 인하 전망을 뒷받침할지도 시장의 관심사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CPI 상승률이 안정적이면 12월 금리 인하 기대가 재부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