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퇴직연금 적립금이 확정급여형(DB형)에서 확정기여형(DC형)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저성장과 임금상승 둔화로 DB형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7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는 '퇴직연금 도입 20년, 퇴직연금 확정급여형(DB형)에서 확정기여형(DC형)으로의 머니무브가 시작됐다'를 주제로 투자와연금리포트 제 69호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퇴직연금 총적립금 중 DB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73.9%에서 2024년 49.7%로 감소했다.
반면, DC형은 같은 기간 17.6%에서 27.1%로,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8.5%에서 23.2%로 비중이 커졌다.
퇴직연금제도 도입 초기에는 DB형 제도가 투자자에게 더 유리했다. 구조적으로 기존 퇴직금제도와 더 유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임금상승률도 시장수익률(금리)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능력·성과를 중심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연봉제'가 확산되고, 근로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정년 고용을 보장하는 '임금피크제'가 선호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확정급여형'이라는 이름처럼 근무기간과 최종임금에 따라 퇴직금 수준이 사전에 정해지는 DB형 특성상, '최종 임금의 불확실성'은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저성장 기조 심화로 실질임금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DB형에 대한 투자매력도는 더욱 감소했다. 실제로 2000년대 평균 실질임금상승률은 2.3%인데 반해, 최근 5년 평균 상승률은 0%대에 정체되어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올해부터 미래 잠재성장률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머니무브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던 일본의 경우에도 최근 5년 평균 임금상승률은 –0.6%를 기록했다"며 "한국도 과거 성장기에 나타난 높은 임금상승률은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퇴직연금 운용환경이 크게 개선된 것도 DC형 확산을 뒷받침했다고 짚었다.
제도 도입 초기였던 2005년에는 DC형·IRP의 위험자산(원리금 비보장자산)에 대한 총투자한도는 30%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며 현재 70%까지 투자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특히 ▲2018년 적격TDF ▲2022년 디폴트옵션제도 도입으로 최대 100%까지 위험자산 편입이 가능해졌다.
보고서는 "이러한 조치로 DC형 가입자는 순수 주식형 펀드·ETF 등 다양한 실적배당형 상품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이는 곧 연금투자 활성화로 이어져 국내 자본시장을 지지하는 한 축으로 작동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DC형 퇴직연금의 실적배당형 비중은 2024년 23.3%로, 최근 5년간 7.6%p 상승했다.
이규성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선임연구원은 "실질임금상승의 둔화로 장기근속 프리미엄이 축소됐다"며 "이에 따라 최종임금에 연동되는 DB형의 예상 급여수준은 과거에 비해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현재로선 연금자산을 성장자산에 투입하는 DC형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가입자 스스로 운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디폴트옵션을 충분히 활용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