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5일 신규 임원인사를 통해 80년대생 야전사령관들을 전진배치했다. 경영 안정성과 현장 중심 실행력 강화를 통해 내실 경영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방점을 찍은 인사라는 평가다.
예년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진 일정, 총 76명에 달하는 신규 임원 승진, 그리고 그 중심에 선 80년대생 젊은 리더들의 전진 배치는 한화그룹이 처한 냉혹한 현실과 절박한 미래 전략을 동시에 투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이번 인사는 기회와 위기라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를 동시에 마주한 한화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K방산 신화를 쓰며 글로벌 시장을 질주하는 방산(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 다른 한쪽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신음하는 태양광(한화솔루션)이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엇갈린 계열사의 운명은 모두 미중 패권 전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변수에서 파생됐다. 그리고 한화그룹은 이 뉴 콜드워(New Cold War) 시대의 복잡다단한 방정식을 풀 열쇠로 속도, 기술, 그리고 80년대생 세대교체를 선택했다. 1983년생인 김동관 부회장 본인이 주도하는 새로운 한화의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한 달 빠른 인사의 의미… 기회와 위기의 전선에 리더십 급파
한화그룹이 통상 12월 초중순에 실시하던 임원 인사를 11월 초로 한 달이나 앞당긴 것은, 현재 그룹이 평시가 아닌 전시 상황에 준하는 긴급한 경영 환경에 놓여있음을 잘 보여준다. 승리의 과실을 극대화하고, 패배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야전 지휘관들을 조기에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이번 인사의 키워드는 글로벌, 기술(현장), 그리고 성장 잠재력(젊은 피)으로 요약된다.
먼저 한화솔루션은 1980년대생 2명을 포함해 총 11명의 신임 임원을 발탁했다. 한화솔루션 측은 "기술, 사업 등 현장 중심 인사를 강화하고 성과를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을 갖춘 젊은 임원의 과감한 발탁을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을 도모한다"고 밝혔다. 위기 극복과 혁신이라는 단어에서 태양광 사업이 처한 절박함이 묻어난다.
실제로 이날 주식시장에서 한화솔루션의 주가는 -14.94%라는 폭락세를 보였다. 미중 갈등의 산물인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최대 수혜주로 꼽혔던 과거와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중국이 자국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태양광 패널을 전 세계에 덤핑 수준으로 밀어내면서 한화솔루션의 수익성이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다.
반면 K-방산의 기수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6명, 한화시스템은 4명 등 총 10명의 방산 부문 신규 임원을 승진시켰다.
인사 키워드는 명확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와 시장 선도 제품 확보를 가속화해 주요 핵심 지역에서의 경쟁 우위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혔고, 한화시스템 역시 "글로벌 시장 진출 기반 마련과 수출 성과"를 강조했다. 이는 폴란드 대규모 수출 성공으로 증명된 기회를 더 큰 글로벌 영토 확장으로 이어가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룹의 또 다른 핵심 축인 한화오션 역시 연구·설계·생산(제조) 분야 7명, 사업관리·지원 5명 등 총 12명의 대규모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친환경 기술 기반의 기술경쟁력 강화", "글로벌 생산체계 고도화" 등은 미중 갈등 속 해상 물류와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기술력으로 조선 슈퍼 사이클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다.
80년대생 발탁의 함의 "연공서열을 파괴하라"
이번 인사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80년대생 임원들의 약진이다. 실제로 한화솔루션의 백승환·김태환 상무(1980년대생 2명)를 비롯해, 한화에너지, 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엔진 등 에너지 4개사에서도 1980년대생 5명이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총 76명의 신규 임원 중 최소 7명 이상이 40대 초중반의 젊은 리더로 채워진 것이다.
단순히 젊은 조직을 만들겠다는 상징적인 제스처를 넘어선다. 1983년생인 김동관 부회장 체제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김동관의 속도전을 현장에서 실행할 핵심 인재들을 전진 배치했다는 실질적인 의미가 크다.
나아가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에서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40대 초반의 임원을 발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조직에 보내는 메시지가 강력하다. 성과와 잠재력만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기회를 부여한다는 신호는 조직 전체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한화가 처한 미중 패권전쟁이라는 전장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방산 분야에서는 K-방산의 급부상에 따른 서방의 견제와 기술 종속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태양광 분야에서는 미국의 IRA 정책 변화 리스크와 중국의 가격 전쟁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해야 한다. 조선 역시 기존의 LNG선을 넘어 친환경 암모니아·수소 선박이라는 차세대 기술 표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60~70년대생의 관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디지털 네이티브이자 글로벌 스탠더드에 더 익숙한 80년대생 리더들의 새로운 시각과 빠른 실행력이 절실한 이유다. 한화솔루션 관계자가 "성장 잠재력을 갖춘 젊은 임원의 과감한 발탁을 통해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을 도모한다"고 밝힌 배경이다. 즉, 80년대생 임원들은 위기의 최전선에 투입된 혁신 돌격대인 셈이다.
기술·현장·글로벌… 뉴 콜드워 시대 한화의 생존 키워드
인사를 관통하는 또 다른 핵심어는 기술 전문성과 현장 중심이다. 당장 76명의 신규 임원 대다수는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이나 R&D(연구개발)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인물들로 채워졌다.
특히 한화솔루션의 80년대생 신규 임원 발탁 배경에는 기술, 사업 등 현장 중심 인사 강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한화오션 역시 승진자 12명 중 7명이 연구·설계·생산(제조) 분야에서 나왔다. 한화시스템 또한 "각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과 리더십을 보유한 인재"를 발탁했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일이라는 평가다. 당장 방산 부문은 K-방산의 명성을 이어갈 차세대 무기체계 개발과 이미 수주한 물량의 완벽한 현지 납품이 중요하다. 이는 현장 엔지니어들과 글로벌 사업 전문가들의 역량에 달려있다.
태양광 부문 역시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설 유일한 무기는 더 높은 효율의 차세대 태양광 셀(페로브스카이트 등) 기술 개발이다. 이 역시 한화그룹이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를 넘을 유일한 무기는 결국 초격차 기술력과 현장 실행력뿐이라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