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그룹이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에서 승자가 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실무 최전선에서 그룹의 구체적 미래를 설계한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다.
정 회장의 행보는 숨가쁘다. 미국과 조선업 협력 ‘MASGA(마스가) 프로젝트’에서 HD현대그룹이 중추를 담당할 예정인 데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역시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재탄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룹 대변혁기에 새로이 방향타를 잡은 정 회장이 HD현대 50년 신화를 넘어, 미래 100년 기업을 꽃피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불황 극복 공신, 회장 되다
정기선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와 미국 스탠퍼드 MBA를 졸업했다. 2009년 현대중공업 기획실 재무팀을 시작으로 HD현대 경영지원실장, HD현대중공업 선박영업 대표, HD현대마린솔루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경영 일선에 뛰어든 이후 다양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HD현대마린솔루션 출범과 조선업 불황 극복이다. 2016년 선박서비스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현대글로벌서비스(현 HD현대마린솔루션) 설립을 주도하고, 2017년에는 직접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맡으면서 적극 투자했다. 당시 주력인 조선사업이 최악의 부진 속 시름 중이었음에도 과감한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투자는 실적으로 증명됐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지난해 5월 유가증권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된 후 현재 시총 11조원의 그룹 내 주력사업으로 성장했다. 단순 선박 판매 진작을 통한 불황 개선이 아닌, 미래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통했다.
두산 인프라코어 인수도 대표적 성과다. 두산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건설기계 사업을 인수해 HD현대인프라코어를 출범했다. 현재 HD현대 건설기계 부문은 조선과 에너지에 이어 그룹 3대 사업의 축으로 성장했다.
마스가 프로젝트로 '성과낸다'
HD현대그룹은 현재 복잡한 글로벌 통상환경 격변기의 중심에 서 있다. 사령탑을 맡은 정 회장의 어깨 역시 여느 때보다 무거운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정 회장의 지휘 아래 미국과 조선업 협력을 시작하며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는 점이 주효하다.
지난 4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선박 생산성 향상 및 첨단 조선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이번 경주 APEC을 앞두고 헌팅턴 잉걸스와 ‘상선 및 군함 설계·건조 협력에 관한 합의 각서’를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 건조에 공동 도전장을 내밀었다.
특히 양사는 MOA를 통해 미국 내 조선생산시설 인수 또는 신규 설립에 공동으로 투자하는 한편, 헌팅턴 잉걸스 그룹의 두 조선소인 뉴포트 뉴스 조선소와 잉걸스 조선소에 블록 모듈과 주요 자재 등을 공급하기로 했다.

비슷하게 미국 함정 건조를 추진하는 한화오션이 현지 필리조선소를 우선 인수하며 거점을 구축했다면, HD현대는 현지 기업과 먼저 연결고리를 구축하고 천천히 거점 마련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이런 결정은 결과적으로 미중 알력다툼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지는 효과를 낳았다. 최근 중국이 미국의 중국 조선해운사 제재를 문제 삼으며,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를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한화오션으로서도 당장의 경영상 타격은 없지만, 잠재적 리스크를 떠안게 된 그림이다. 반면 HD현대로서는 리스크는 최대한 뒤로 미루면서도 현지와의 협력이라는 실익을 추구하게 된 모양새다.
실제로 HD현대는 지난 9월 초에는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함의 정기 정비 사업에 본격 착수하는 등 차근차근 실리를 챙기고 있다.
내실 다지고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한다
현재 정 회장이 주도 중인 통합 HD현대중공업 출범 건 역시 미국과 조선업 협력을 위한 장기적 포석이다. 방산 사업부문을 본격 강화하겠다는 의도기 때문이다.
그간 HD현대의 함정 건조는 주로 HD현대중공업이 담당해 왔다. 함정 등 특수한 선박을 담당하는 특수선 사업부도 HD현대중공업에 있다. 하지만 도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항상 뒤따랐다. HD현대중공업의 도크는 초대형·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적합한 대형 도크인 반면, 전투함과 수상정 등 군사목적 특수선은 건조에 큰 도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크기가 중소형 50k PC선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떠오른 회사가 HD현대미포다. HD현대미포는 그간 중소형 컨테이너선, PC선, 탱커선 등 비교적 작은 크기의 선박을 도맡아 건조해 왔다. 보유한 도크 크기가 특수선 건조에 적합한 것이다.
실제로 통합 HD현대중공업은 기존 HD현대미포 도크 2개를 글로벌 방산 물량 건조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HD현대미포가 보유한 도크의 절반이다. 특수선 사업을 더 확대하고, 수익성이 적은 선종 수주는 줄이겠다는 정 회장의 복안이다.

이 같은 구조개선의 근간에는 마스가 프로젝트가 있다. 정 회장은 대미 사업 확장과 더불어 국내 사업장 내실 다지기를 통해 기초 체급을 충분히 키우고자 한다.
동시에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도 추진한다. 정 회장은 지난 10월 27일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문무홀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을 개최했다.
그는 기조연설을 통해 “HD현대는 첨단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의 해양 르네상스를 위한 든든한 파트너로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됐다”며 ▲AI 혁신 기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스마트 조선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등 조선업의 미래 비전과 혁신 방향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