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 업계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석화업계 선두주자인 LG화학이 자금 조달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글로벌 공급 과잉과 정부의 감축 압박, 중국의 고부가 전략까지 겹치면서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와 구조 전환에 총력전이다.
이번 선택이 단순한 재무 보강을 넘어 국내 석화산업 재편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LG화학은 1일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 보통주 575만주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PRS(주가수익스와프) 거래를 통해 약 1조 9981억원을 조달한다고 공시했다.
계약 기간은 3년이며 기준금액은 9월 30일 종가인 주당 34만 7500원이 적용됐다. 주식 처분에 따른 매각 대금은 11월 3일 수취할 예정이다.
거래 이후 LG화학의 LG엔솔 지분은 81.84%에서 약 79.4%로 2.5%p 하락한다.
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를 명시했고, 고금리 환경에서 외부 차입 대비 비용의 효율적 조달 수단이라는 게 LG화학의 설명이다.
지분율 80% 초과 시 모회사가 자회사 실효세율 부족분을 보충 납부해야 하는 규제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포석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자금은 우선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에 쓰일 것”이라며 “최근 고금리 상황에서 해외 자금 조달은 이자 부담이 크다. 보유 자산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조조정 자금이라는 일각의 해석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관계자는 “석유화학이 과거에는 조 단위의 이익을 냈지만 지금은 수년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어 현금 창출 능력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자사는 활용 가능한 자산이 있어 자금 조달 여력이 충분히 있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석화 불황 직격탄…정부도 직접 나섰다
이번 자금 조달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라는 배경과 맞닿아 있다.
LG화학은 설립 초기 ‘락희화학공업사’ 시절 국내 업계 최초로 PVC(폴리염화 비닐)·ABS 등의 합성수지를 국산화하며 성장했고,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을 통해 국내 석화업계에서의 초석을 다져 글로벌 화학 업계에서도 10위 안에 드는 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왔다.
다만 한국의 최대 수출 고객이었던 중국이 자체적인 석유화학 설비 증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그 타격이 고스란히 한국 석화 기업에게 돌아왔다.
심지어 중국이 ‘에너지·화학 자급률 70%’를 내세워 2014년 1950만톤 수준이던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2024년 5200만톤으로 끌어 올렸다. 결국 3~4년째 불황이 깊어지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상황이 극에 달하자 정부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올해 8월 석유화학 구조개편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연말까지 NCC 최대 25%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업계 10개사가 합의했고, 각 사는 연말까지 NCC 효율화 및 설비 감축 등의 구조조정 구체 시나리오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각종 금융·세제 지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지난 30일에는 산업은행을 비롯한 17개 은행과 4개 정책금융기관이 ‘산업 구조혁신 지원을 위한 금융권 공동협약식’을 열고 석화 기업들이 구조혁신안을 지원하면 채권단이 협의회를 열어 대출 만기연장·금리조정·신규 자금 지원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LG화학, NCC 통합·고부가 ‘투 트랙’으로 돌파구 마련
LG화학은 ▲정유사와의 NCC 통합 ▲고부가·친환경 제품 전환 등 ‘투 트랙’으로 시장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먼저 정부 방침에 따른 GS칼텔스와 여수 NCC를 통합 논의가 대표적이다.
자산 매각이나 합작사 설립, 정유-석유화학 수직 통합을 통한 원료·비용 효율화 모델 등 다방면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전지 소재, 바이오, 친환경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등 고부가·친환경 사업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LG엔솔을 분사해 배터리 사업을 키운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분기 실적 컨퍼런스에서 차동석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 사장은 “사업·자산 효율화, 고성장·고수익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 첨단소재 부문의 고객 다변화 등 미래 수요 확보를 통해 견조한 중장기 성장성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여전히 업황 개선에 대한 전망은 안갯속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노후 설비 정리와 구조조정 기조를 내놨지만, 동시에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에 집중 투자하며 경쟁의 질까지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 등 7개 부처는 ‘석유화학공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업무방안(2025-2026)’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방안은 2025~2026년 석유화학 산업 부가가치 연평균 5% 이상 성장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전자화학품·고급 폴리올레핀 집중 육성’을 핵심으로 제시하며 고부가가치 제품 사업에 뛰어들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지분 활용 이후 글로벌 최저한세 부담 경감과 차입금 상환과 같은 긍정적인 요인이 기대된다”면서도 “석유화학과 전지 소재 부문 영업 환경이 모두 어려운 국면이고,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석유화학 업황은 당장 개선 여지가 적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