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터넷의 역사를 써 내려온 네이버가 다시 한번 거대한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검색과 포털이라는 견고한 성채를 넘어 이제는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을 아우르는 '라이프 플랫폼'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파격적이다. '새벽배송'의 대명사 컬리,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을 이끈 우버, 그리고 'K-게임'의 상징 넥슨까지 손을 잡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라 불리는 이들과의 연이은 합종연횡은 단순한 사업 제휴를 넘어 네이버가 꿈꾸는 미래 생태계의 청사진을 명확히 보여준다.
과거처럼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소유하는 '제국 건설' 방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각 분야의 1위 사업자와의 '개방형 동맹'을 통해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새로운 전략이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의 네이버답다.
네이버는 이 동맹의 중심에서 강력한 '플랫폼 허브' 역할을 수행하며 쇼핑, 이동, 여가라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를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이라는 강력한 깃발 아래 하나로 묶으려 하고 있다.

e커머스의 마지막 퍼즐, 컬리와의 동맹
네이버의 e커머스 장악 시나리오에서 오랫동안 아쉬운 부분으로 꼽혔던 영역은 바로 '신선식품'과 '새벽배송'이었다. 공산품과 생필품 시장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가장 구매 빈도가 높고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장보기 시장에서는 쿠팡의 '로켓프레시' 등에 밀려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선택한 파트너는 바로 '프리미엄 신선식품' 시장을 개척하고 '샛별배송' 신화를 쓴 컬리였다.
지난 9월 네이버 쇼핑 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내에 '컬리N마트'가 문을 열었다. 컬리가 가진 독보적인 상품 큐레이션 역량과 안정적인 새벽배송 물류 시스템을 네이버의 방대한 트래픽과 결합하는, 그야말로 '윈-윈' 전략이다. 사용자들은 이제 네이버 플랫폼 안에서 밤 11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서 컬리의 신선식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됐다.
협력의 핵심에는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이 있다. 멤버십 회원은 2만원 이상만 구매해도 무료 배송 혜택을 받는다. 이는 컬리 자체 멤버십인 '컬리멤버스 코어'와 동일한 혜택으로, 네이버가 자사 충성 고객에게 e커머스 시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새벽배송'이라는 무기를 쥐여준 셈이다.
즉각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한때 주춤했던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앱의 주간 활성 이용자(WAU)는 컬리와의 협업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9월 첫 주 230만 명 수준이던 WAU는 2주 차에 245만 명, 3주 차에는 281만 명을 돌파하며 3주 만에 50만 명 이상이 순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네이버의 약점이던 신선식품 카테고리가 보강되자 잠재 고객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윤숙 네이버 쇼핑사업 부문장은 "컬리와의 협업을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신선식품 DB와 프리미엄 장보기, 새벽배송 측면에서 사용자에게 안정적이고 일관된 장보기 경험을 줄 수 있게 됐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한편 네이버와 컬리의 관계는 단순한 서비스 제휴에 그치지 않는다. 네이버는 최근 500억~600억 원 규모의 컬리 구주를 인수하며 양사의 관계를 '전략적 혈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컬리의 물류 자회사 '컬리넥스트마일'이 네이버의 물류 솔루션인 '네이버 도착보장' 프로그램(NFA)에 합류한 것과 맞물려 더 큰 시너지를 예고한다.
컬리 입장에서도 이번 동맹은 '1석 3조'의 효과를 가져다준다. 김슬아 컬리 대표의 말처럼 이용자는 네이버를 통해 더 편리하게 새벽배송 혜택을 누릴 수 있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한 셀러들은 컬리의 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판로를 넓힐 수 있으며, 양사 운영자는 인프라 효율성 증대와 재무 성과 개선을 동시에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컬리는 네이버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며 그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수익성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네이버와 컬리의 만남은 결정적 한 수라는 분석이다. 네이버에게는 e커머스 시장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퍼즐이며 컬리에게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든든한 우군이 될 전망이다. 데이터와 트래픽을 가진 플랫폼 강자와 상품력과 물류를 가진 버티컬 커머스 강자의 이상적인 결합이다.

우버와 함께 이동을 장악하다
네이버가 컬리와의 협력으로 '집 안'의 장보기 경험을 장악했다면, '집 밖'의 일상, 즉 '이동(Mobility)'을 장악하기 위한 파트너로는 글로벌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를 선택했다. 네이버 생태계를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사용자의 실제적인 오프라인 활동까지 깊숙이 연결하려는 거대한 O2O(Online to Offline) 전략의 핵심이다.
협력의 핵심 역시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이다.
네이버는 자사 멤버십에 우버의 구독형 멤버십 서비스인 '우버 원(Uber One)'의 혜택을 통합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가입자는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우버 택시를 이용할 때마다 요금의 5~10%를 크레디트로 적립 받고, 평점이 높은 우수 기사를 우선 배차받는 등의 프리미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기존의 멤버십 혜택이 쇼핑 적립, 디지털 콘텐츠(웹툰, VIBE 등) 이용권 등 온라인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택시 이용이라는 실생활과 밀접한 오프라인 혜택까지 제공하게 된 것이다. 네이버는 이를 통해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을 단순히 쇼핑 할인 카드가 아닌, 사용자의 모든 일상을 아우르는 '필수 라이프스타일 구독 서비스'로 포지셔닝하겠다는 야심을 분명히 했다.
이윤숙 부문장은 "OTT, 그로서리에 이어 모빌리티 등 사용자 단골력 중심의 생활 밀착형 분야에서 대표적 리더십과 로열티를 가진 파트너 중심으로 협업을 넓혀나갈 것"이라며, 우버와의 제휴가 네이버의 '생활 밀착형 생태계' 구축 전략의 중요한 한 축임을 시사했다.
한편 네이버와 우버의 만남은 단순한 혜택 연동을 넘어 데이터와 서비스의 결합을 통한 '슈퍼앱'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용자가 네이버 플랫폼 한 곳에서 검색, 쇼핑, 예약뿐만 아니라 이동(택시 호출 및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우버 입장에서도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를 만난 셈이다. 네이버의 막강한 플랫폼 영향력과 충성도 높은 멤버십 회원을 통해 단숨에 방대한 잠재 고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네이버 지도, 네이버페이 등과 연계될 경우, 사용자들은 더욱 편리하고 완결성 높은 모빌리티 서비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넥슨과 구축하는 '심리스 엔터테인먼트'
쇼핑(컬리)과 이동(우버)으로 일상의 필요를 채운 네이버의 다음 행보는 '여가'와 '엔터테인먼트' 영역의 정복이다.
핵심 파트너로 국내 1위 게임사이자 글로벌 시장에서도 막강한 IP(지적재산권) 파워를 자랑하는 넥슨을 선택했다. 이는 네이버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스트리밍, 결제, 데이터 커머스 사업의 화룡점정이 될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와 강대현 넥슨코리아 대표는 25일 "이용자의 일상과 게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며 포괄적인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의 핵심은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이다. 네이버와 넥슨의 이용자 계정과 결제 데이터를 연결하여, 이를 기반으로 초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 메인 화면에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넥슨 게임 콘텐츠를 노출하고, 더 나아가 네이버 플랫폼 내에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네이버페이로 결제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강대현 넥슨 대표는 "양사가 더욱 풍부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차별화된 서비스와 이용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며 데이터 기반 협업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이는 사용자의 게임 밖 일상(검색, 쇼핑) 데이터와 게임 안에서의 활동 데이터가 결합될 때, 얼마나 정교하고 강력한 개인화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협력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 중 하나는 네이버의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과의 연계다. 넥슨의 주요 게임 리그와 이벤트가 치지직을 통해 독점 중계되고, 오프라인 행사의 티켓 예매나 굿즈 판매 역시 네이버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질 예정이다.
여세를 몰아 게임과 스트리밍의 경계를 허무는 '심리스(Seamless)' 경험을 구현할 계획이다. 넥슨 게임 플레이 중 버튼 하나로 바로 치지직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거나, 반대로 치지직에서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가 '플레이' 버튼을 눌러 즉시 해당 게임에 참여하는 식이다.
트위치의 철수로 무주공산이 된 국내 게임 스트리밍 시장에서 '치지직'이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넥슨이라는 거대한 콘텐츠 공급원을 확보함으로써, 치지직은 단순한 방송 플랫폼을 넘어 게임 커뮤니티와 e스포츠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최수연 대표는 "OTT와 모빌리티에 이어 게임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사용자에게 새로운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번 협력이 네이버의 콘텐츠 생태계 확장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를 분명히 했다. 넥슨과의 동맹은 네이버가 Z세대를 포함한 미래의 핵심 사용자를 플랫폼으로 끌어들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커머스와 광고 수익 모델을 창출하는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네이버 유니버스의 미래
컬리, 우버, 넥슨. 이 세 건의 빅딜은 각기 다른 산업을 겨냥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네이버의 미래를 관통하는 공통 전략이 숨어 있다. 바로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을 중심으로 한 '개방형 생태계 확장'과 '데이터 기반의 초개인화'다.
먼저 네이버는 '소유'가 아닌 '연결'을 통해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성을 가진 파트너들과 손잡음으로써, 막대한 투자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얼라이언스(Alliance)'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모든 것을 내재화하려는 경쟁사들과는 차별화되는 네이버만의 독특한 성장 방식이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은 이 거대한 연합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구심점'이다. 쇼핑, 모빌리티, 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압도적인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의 '락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멤버십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앞으로 어떤 파트너가 이 멤버십 연합에 추가될지에 따라 네이버 유니버스의 영토는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이 모든 협력의 기저에 '데이터'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사용자의 쇼핑(컬리), 이동(우버), 여가(넥슨)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네이버는 그 어떤 플랫폼도 가질 수 없는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사용자 프로파일을 구축하게 된다. 이는 향후 AI 기반의 광고, 커머스, 금융 등 모든 사업 영역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개인화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 기술이 될 것이다. 최근 불거진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의 인수합병설 역시, 이러한 데이터 기반 금융 생태계 확장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전략이 마냥 쉽게 전개될 가능성은 낮다. 각기 다른 기업 문화를 가진 파트너사들과의 유기적인 시너지를 창출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방대한 데이터의 결합은 개인정보보호 및 독과점 규제라는 또 다른 과제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색 포털의 왕좌를 넘어, 이제 사용자의 '일상 모든 것'을 책임지는 '라이프 OS(Operating System)'를 꿈꾸는 네이버의 행보는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