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쩍 늘었다. 테헤란로 거리를 조금만 걸어도 외국 관광객이 1년 전과 또 다르게 많아졌다. 싸이와 BTS, 블랙핑크,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K팝이 만든 바람이고 물결이다. 한마디로 2025년 지금, 한국인의 ‘잘 노는 문화’가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다.
전통음악에서는 ‘멋있게 잘 노는 문화’를 ‘풍류’라 부른다. 풍류(風流)란 문자 그대로 바람과 물결이란 뜻이다. 자연의 흐름처럼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기는 정신이다.
선조들이 말하는 ‘멋있게 잘 노는 것’은 흥청망청 노는 것이 아니요, 속되지 않고 멋스럽고 풍취 있게 노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노는 것도 아니다. 자연 경치를 감상하고, 차와 술을 건네며 대화하고, 글이나 그림으로 서로 화답하고, 음악과 춤을 즐기면서 흥을 더하고, 함께 하는 이들을 배려하고 나누는 것이 곧 우아하고 멋있게 노는 것이다.
멋있는 이들이 노는 무대가 ‘풍류방’이다. 정읍에는 지금도 그 전통의 멋을 이어가는 풍류방이 있다.
정읍시 내장산 자락을 따라가면 ‘달맞이골’이라 불리는 월영마을이 있다. 마을 안쪽 길로 쭉 들어가면, 대문 없는 아치형 틀의 집이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너른 마당이 나오고, 툇마루 위에는 ‘샘소리터’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이곳은 영원한 풍류인으로 살고자 하는 터지기 김문선 선생이 지은 풍류방이다.
김문선 선생의 샘소리터 경영방식이 참으로 특이하다. 자기 집 마당과 툇마루가 달린 한옥집을 모두에게 열어 두고 쓰게 한다. 김 선생이 분명 주인장이나, 모두가 주인이며 언제든지 풍류를 탈 수 있도록 오픈되어 있는 것이다. 김 선생은 풍류의 참된 멋은 이웃과 나누는 것이라 말하고 직접 실천하며 살고 있다.
샘소리터에서는 매달 합주와 강습, 차 모임이 이어지고, 봄과 가을에는 ‘어울마당’이라는 큰 풍류잔치가 열린다. 선조들에게는 일상의 풍류였지만 지금은 1년에 두 번 열리며, 올해는 9월 넷째 주 토요일에 38번째 잔치가 예정돼 있다.
이처럼 샘소리터는 전라도에 남아 있는 민간 줄풍류를 잇고, 정읍 풍류음악을 보존하며 널리 알리고 있다.
김문선 선생 이전 정읍의 풍류방은 아양정의 주인 김기남 선생과 이심정의 주인 나용주 선생이 자신이 소유한 별장이나 대가댁 사랑채를 모두에게 열어 공간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 풍류방에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모시고 마을 잔치를 열었다. 풍월을 읊는 시객, 가곡을 노래하는 가객, 음률을 하는 율객, 서화를 하는 묵객, 악기를 연주하는 금객 등 다양한 분야의 예인들이 모여 잔치의 흥을 돋구었다. 지금으로 치면 K팝, K문학, K아트의 스타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신 것이다.
멋스럽게 노는 사람은 보는 사람도 즐겁다. 즐거우면 시름도 잊고 신명이 올라온다. 그래서 풍류잔치를 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도 자기 집에서 맛난 먹거리와 술을 가져와 나누며 밤새 공연을 감상하고 자신의 흥과 한과 멋과 끼를 한껏 자랑하며 놀았다.
낯익지 않나? 필자는 멋을 아는 선조들의 풍류 문화가 K컬처 열풍의 근원이라고 본다. 이미 예술의 삶을 살았던 민족성과 그 흥과 끼를 즐기면서도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했던 선조들의 풍류정신.
그들은 단지 먹고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풍류로 시대정신을 이어가고자 했다. 그것은 악한 욕심을 버리고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며, 넘치지 않게 절제하면서 놀이를 즐기는 풍류의 도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멋의 K컬처일 것이다.
음악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음악의 가치를 생명과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역사와 정신을 이어오는 정읍의 샘소리터와 미래를 도약하는 K컬처가 같은 뿌리와 정신으로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멋을 전하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흥미롭고 멋스러운 일이다.
※ 가야금 연주자 송영숙은 한국 전통예술의 계보를 잇고 시대정신을 음악으로 구현하는 전통예술가다. 현재 선릉아트홀 예술감독 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해외 뮤지션과 협업해 20여 개 작품과 200여 회 공연을 연출했다. 국내에서 300여 회 공연을 제작하고, 500여 회 공연에 참여했으며, 8회 이상의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멋진 글로 귀한 우리 음악을 소개해 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