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옥 전경. 사진=한국토지주택공사
LH 사옥 전경. 사진=한국토지주택공사

정부가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공공택지 매각을 중단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접 시행해 분양·입주까지 책임지는 방식이다.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 도심 유휴부지 활용 등 공공 주도의 속도전을 통해 공급 절벽을 메우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실행력과 신뢰 확보 없이는 장밋빛 숫자에 그칠 위험이 크다.

우선 LH는 17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떠안고 있다. 택지 매각으로 적자를 메워왔던 구조가 차단되는 만큼 재무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순살 아파트' 부실 사태, 직원 땅 투기, 수천억원 규모 입찰 담합 등 반복된 비리도 여전히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런 조직이 대규모 주택 공급의 전면에 서는데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신뢰감을 갖을까?

LH의 근본적 개혁과 재창사 수준의 혁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공 주도 공급은 또 다른 부실과 재정 리스크를 낳을 공산이 크다.

또한 정부는 수도권에 2030년까지 착공 기준으로 연평균 27만가구(총 13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 했는데, 이는 최근 3년간 연평균 착공 실적(15만8000가구)을 크게 웃돈다.

그러나 정작 공급 속도를 가로막는 건 인허가 지연, 주민 반발, 사업성 악화 등 현장 변수다. 이를 해소할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목표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서울 신규 주택의 80% 이상이 재건축·재개발에서 나오는 현실을 외면한 채 민간 활성화 대책을 소홀히 한 건 큰 한계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용적률·기부채납 규제 합리화 없이는 시장의 활력을 되살리기 어렵다.

PF(프로젝트 파이낸스) 시장 경색과 미분양 위험으로 민간이 위축된 상황에서 금융 지원과 보증 확대도 병행돼야 한다. 공공과 민간이 균형을 이루며 공급 기반을 넓혀야만 정책의 실효성이 담보되기 때문이다.

대출 규제를 강화한 수요억제책도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공급 확대와 금융 규제가 충돌하지 않도록 세심한 보완이 필요하다.

수도권 쏠림에 치중된 이번 대책 역시 지방 시장 대책이 빠져 균형을 잃었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급 목표가 전국적인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지방 도시에도 맞춤형 공급과 규제 완화가 뒤따라야 한다.

주택 정책은 '얼마를 짓겠다'는 숫자가 아니라 실행과 신뢰가 핵심이다. 

공공 주도의 공급 확대가 시장 불안을 잠재우려면 LH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개혁, 그리고 민간의 활력을 살리는 구조적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계획도 과거와 다르지 않게 목표만 요란한 채 현실에선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