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칼을 빼 들었다. 대한민국 IT 혁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에게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을 둘러싼 '시세조종' 의혹의 정점에 그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리고 이 서슬 퍼런 사법의 칼날은 단순히 한 기업인의 비리를 단죄하는 것을 넘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확립된 '금융범죄=패가망신'이라는 강력한 기조가 현실화되는 첫 번째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시장의 건전성을 해치는 범죄는 뿌리 뽑아야 한다는 대의에 이견은 없다. 벌이 있다면 받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일련의 정책 방향과 맞물려 기업을 향한 압박의 수위가 과연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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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벌
검찰 구형 배경에는 사안의 중대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29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김 위원장을 단순 공모자가 아닌, 범행의 전 과정을 최종적으로 승인하고 그로 인한 모든 이익을 궁극적으로 가져가는 카카오 그룹의 '총수'이자 '최종 결정권자'로 명확히 규정했다. 

사건의 전말은 2023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K팝 산업의 패권을 두고 하이브와 카카오가 SM 경영권을 놓고 격돌했을 당시, 하이브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인수하고 주당 12만 원의 공개매수를 선언하며 승기를 잡는 듯했다. 

코너에 몰린 카카오는 변칙공격을 택한다. 2023년 2월, 단 사흘간 약 11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해 SM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 원 이상으로 인위적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결국 자금 부담을 느낀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철회하면서 SM은 카카오의 차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원된 불법적인 시세조종 행위는 자유로운 경쟁을 기반으로 해야 할 자본시장의 룰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불공정 행위의 정점에 김 위원장이 있었다는 것이 15년 중형 배경이다.

검찰의 논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실무진으로부터 적법한 경쟁 방식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하고 불법적인 시세조종을 통한 인수 방식을 최종 승인했다. 그룹 총수의 사적 이익을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질이 불량하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함께 기소된 배재현 전 투자총괄대표(징역 12년),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징역 10년) 등 최고위급 임원들에게 내려진 구형량 역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의 엄중한 시각을 대변한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된 중대 범죄라는 것이다.

사진=금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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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용"
이번 구형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천명해 온 금융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이 실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한국거래소를 직접 찾아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첫날로 삼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개미 투자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자본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건강한 코스피 5000을 위한 일종의 선언이기도 하다.

최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참여하는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도 출범했다. 기관 간의 칸막이를 없애고 인공지능(AI) 기술까지 동원해 주가조작 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범수 위원장 사건은 바로 이 합동대응단의 출범과 궤를 같이하며, 정부의 주가조작 척결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는 시범 케이스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범죄에 대한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최근 정부의 대기업을 향한 압박 기조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특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강경한 태도는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태다. 

SK텔레콤에 대한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 결정도 미묘하다.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SK텔레콤의 유심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1347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 잣대가 과연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지는 따져볼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구글과 메타의 사례와 비교된다. 이들은 이용자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맞춤형 광고에 활용하는 등 '고의적'이고 '영리적인 목적'으로 법을 위반했음에도 각각 692억 원, 3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반면 SK텔레콤은 고도화된 해킹 공격의 '피해자'라는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 법 위반 기업보다 훨씬 무거운 철퇴를 맞았다.

글로벌 기준과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미국 T모바일은 1억 1000만 건 유출에 216억 원, AT&T는 890만 건 유출에 178억 원의 제재를 받는 등 유사 사례와 비교해 SK텔레콤의 과징금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신용정보법상 개인신용정보 유출 과징금 상한이 50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법 체계 간의 비례성마저 상실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마치 '괘씸죄'가 적용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당연히 기업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방어적 경영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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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동력은 꺾이는가
자본시장의 신뢰를 저해하는 범죄는 일벌백계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김범수 위원장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방식'과 '균형'이다. 범죄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하되, 지나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은 한국 경제 전체에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의 본질은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에 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기존에 없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위험을 동반한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와 사법의 잣대가 예측 범위를 넘어 과도하게 강경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기업가들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성공의 과실보다 실패의 책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는 환경 속에서 누구도 선뜻 혁신의 최전선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SKT 사태에서 보듯, 해킹의 피해를 입은 기업에 '결과'만을 놓고 가혹한 책임을 묻는 방식은 기업의 자진 신고와 정보 공유를 위축시켜 오히려 전체적인 보안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김범수 위원장이 이끌어온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는 대한민국 IT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던 기업이다. 무료 모바일 메신저라는 불모지에서 시작해 이제는 국민 대다수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국민 플랫폼'을 일궈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골목상권 침해 등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의 도전이 우리 사회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수많은 새로운 기회를 창출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제일원칙'은 있다. 사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김 위원장의 혐의를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혁신의 아이콘이니까 무조건 봐준다'는 개념은 21세기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에서 용인될 수 없는 명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 전체와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필요이상 압박 일변도로 나아가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한 기업인의 불법행위를 단죄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인 혁신과 도전의 정신마저 위축시키는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각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판단을 두고 전 정부와 관련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루머가 나오는 것도 쉽게 넘기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입법-사법-행정이 분리된 나라에서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가 지나친 존재감의 그림자를 떨구는 것 아니냐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우려를 걷어내려면, 공정하고 명확하며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그 길은 간단하다.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찰의 칼날이 예리하되, 경제의 혈맥까지 끊어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법적 정의와 경제적 활력 사이의 현명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