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대출. 출처=연합뉴스
가계 대출. 출처=연합뉴스

그동안 빚을 다 갚으면 5년간 유지됐던 연체 기록이 이번 정부의 '신용 사면'으로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카드사들은 예정된 신규 고객 증가를 반기면서도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인한 건전성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5000만원 이하로 연체한 빚을 올해 말까지 갚으면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신용 사면에 나선다. 사면 대상자는 최대 324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9월 30일부터 성실 상환 연체 채무자의 연체 이력 정보 공유 및 활용을 제한하는 신용회복 지원 조치를 시행한다고 11일 밝혔다. 신용회복 지원 대상은 5000만원 이하(2020년 1월 1일부터 이달 31일까지)의 연체가 발생한 개인ㆍ개인사업자 324만 명이다. 연말까지 연체 금액을 모두 상환하면 연체 이력 정보를 지워준다.

기존에는 빚을 다 갚아도 연체 기록이 신용정보원에 1년 동안 남아 있고, 신용평가사엔 최대 5년간 남았다. 이로 인해 낮은 신용점수로 대출 금리, 대출 한도, 카드 이용 등에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채무 변제를 완료한 사람은 신용평점이 올라가게 됐다.

카드사들 입장에서 신용사면의 장점은 회원수 증가다. 이번에 연체 기록이 모두 지워질 수백만명의 고객이 향후 새롭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는데 신규 발급 증가는 매출 증대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신용사면 당시 약 2만6000명이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다만 카드사들은 이번 조치로 피해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용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금융산업의 기둥인 신용평가시스템이 흔들릴 것이란 비판이다. 지난해 말 기준 NICE평가정보에서는 46.9%,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서는 44.2%가 900점을 넘었다. 국민 절반이 최상위 등급이 되면서 변별력이 약해진 것이다.

연체자를 주기적으로 구제해준 정부 탓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10만 명의 연체 기록을 삭제한 적이 있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판이 더 커졌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250만 명, 2024년 윤석열 정부는 290만 명을 대상으로 ‘신용 사면’을 단행했다. 연체 이력을 자꾸 지우면 신용점수는 상향평준화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이재명 정부는 324만명이라는 역대급 인원이다.

이렇게 되면 2002년 한국의 경제위기였던 카드 사태와 유사한 상황이 된다. 당시에는 연체를 금액과 기간에 따라 주의, 황색, 적색 정도로만 분류해 변별력이 없었고 이는 무분별한 신용카드 빚더미를 양산해 대규모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 이때를 기점으로 1점부터 1000점까지 세분화한 신용점수 시스템이 등장했는데 다시 변별력이 사라진 것이다.

신용점수가 올라간 소비자가 대출이나 카드론을 추가로 받으면 이미 연체율에 빨간등이 켜진 카드사들의 부실 위험은 더 커지게 된다. 특히 카드사 차주 대부분은 중저신용자다 보니 재대출 후 연체되고 또 다시 돈을 빌리는 연체율 악순환 고리도 우려된다. 취약 차주의 연체가 늘어나면 건전성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업계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위험도 존재한다.

현재 카드사 대부분은 연체율이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1분기 전업 카드사 8곳의 실질 연체율(대환대출 채권을 포함한 1개월 이상 연체율)은 평균 1.93%로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카드업계는 연체율이 2%를 넘으면 위험신호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