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로 대표되는 국내 통신3사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1강 2중’의 질서에 거대한 균열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반의 합산 영업이익은 사상 처음으로 상반기 3조 원을 돌파하고 연간 5조 원 돌파까지 넘보는 등 외형적으로는 성장하는 모양새다. 다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기업의 체질과 생존 전략에 따라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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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아직 한발 남았다"
SK텔레콤은 지난 4월 발생한 사상 초유의 유심(USIM) 해킹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그 결과 2분기 SK텔레콤의 영업이익은 3383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37.1%나 하락하고 말았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수치다. 당기순이익도 832억 원으로 역시 76.2%나 쪼그라들며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적 악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고 수습을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유심 무상 교체 비용과 신규 가입을 일시 중단하는 초강수를 두면서 발생한 유통망 보상금 등 약 25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일회성 비용이 2분기 실적에 그대로 반영되며 이익을 잠식했다.

재무적 손실보다 더욱 뼈아픈 것은 고객의 신뢰 상실과 이로 인한 전례 없는 대규모 이탈 현상이었다. 당장 사고 사실이 알려진 이후 7월까지 약 72만 명의 가입자가 SK텔레콤을 떠나는 ‘엑소더스’가 발생했으며 3월 말과 6월 말을 비교하면 핸드셋 가입자만 75만 명이 순감했다. 

단순히 번호이동 수치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근본적인 믿음이 흔들렸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 여파는 무선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의 IPTV와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마저 동반 감소하는 등 유무선 결합 상품 전체의 경쟁력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결국 수십 년간 단 한 번도 내준 적 없던 철옹성인 시장 점유율 40% 선이 붕괴되며 39.2%까지 하락했다.

앞으로도 어렵다.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은 향후 실적에 더욱 무거운 족쇄가 될 전망이다. 특히 전 고객 통신요금 5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보상안은 3분기부터 회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양섭 SK텔레콤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예상되는 재무적 영향이 작지 않다”고 인정하며 사실상 추가적인 실적 악화를 예고했다. 

다만 SK텔레콤의 근본이 흔들릴 정도의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않다. 40% 점유율이 무너졌으나 아직은 여전히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총체적 위기 속에서도 주주들의 신뢰를 붙잡기 위해 주당 830원의 분기 배당을 유지하기로 결정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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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와 LG유플러스 대약진
KT와 LG유플러스는 약진에 성공, 나란히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KT의 2분기 실적은 놀랍다. 영업이익 1조 148억 원을 기록하며 업계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1조 클럽’이라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전년 동기 대비 105.4%라는 경이로운 성장률이다. 하나의 요인이 아닌, 전략적 선택과 외부 환경의 변화가 맞물린 완벽한 조합의 결과로 평가된다. 먼저 반사 이익이었다. SK텔레콤 가입자들이 대거 KT로 유입되면서 이동통신(MNO) 가입 회선이 전년 대비 11.6%나 증가했다.

여기에 자회사 KT에스테이트가 추진한 서울 광진구 ‘이스트폴’ 아파트 분양 사업에서 약 39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일회성 이익이 더해지며 실적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과거 고통 분담을 통해 단행했던 대규모 구조조정도 연간 3000억 원 규모의 인건비 절감 효과로 돌아오며 역시 회사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만든 점도 주효했다. 장민 KT CFO가 "부동산 관련 일회성 요인을 제외하고도 본업에서 상당히 좋은 실적을 달성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것은 이러한 복합적인 성공에 기반한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익의 질(Earnings Quality) 측면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LG유플러스 역시 조용하지만 강한 저력을 과시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분기 영업이익은 304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9.9% 증가했고, 매출 역시 10% 늘어난 3조 8444억 원을 기록하며 분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경쟁사들처럼 대규모 일회성 요인 없이 달성한 '어닝 서프라이즈'  이자 '실적 턴어라운드'  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일등 공신은 단연 가입자 순증에 따른 단말기 수익의 폭발적인 증가였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0.6%나 급증했다. 이는 단순히 일회성 매출 증가를 넘어, 향후 2년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우량 가입자를 대거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아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온 알뜰폰(MVNO) 사업이 21.7% 성장하며 6분기 연속 20%대라는 놀라운 고성장을 이어간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로써 전체 무선 가입 회선이 3000만 개에 육박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서비스수익 증가율(+2.5%)과 영업이익 증가율(+19.9%) 사이의 차이다. 이익이 매출보다 약 8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것은 LG유플러스가 단순히 외형을 키우는 것을 넘어 수익성 개선에 집중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사진=LG유플러스
사진=LG유플러스

하반기 AI 대전 남았다
통신 3사의 시선은 공통적으로 통신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향하고 있다. 단기적인 가입자 쟁탈전을 넘어, AI를 중심으로 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조 단위의 투자를 쏟아붓는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5G 이후 뚜렷한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던 통신 산업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필연적인 경로다.

SK텔레콤은 현재의 위기를 미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역발상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당장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울산에 구축하는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는 2030년까지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는 야심 찬 계획이다. 나아가 B2C 영역에서도 AI 에이전트 서비스 '에이닷(A.)'이 누적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회사의 위기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의 최종 5개 정예팀 중 하나로 선정된 것도 고무적이다. 이를 통해 '국가 대표 AI 기업'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향후 5년간 7000억 원을 정보보호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이번에 실추된 보안 기업의 이미지를 기술적 신뢰로 전환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울산 AI 데이터센터 구축에서 자체 LLM '에이닷X' 개발에 이르기까지 인프라부터 플랫폼,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풀스택(Full-stack)' 전략에 드라이브를 건 모양새다.

'AICT(인공지능+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포한 KT는 글로벌 협력과 독자 개발을 병행하는 '멀티 모델' 전략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자체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 '믿:음 2.0'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하여 '코리안-챗GPT'를 개발하고, 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팔란티어와는 독점 솔루션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전방위적인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B2B) 고객들에게 맞춤형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AI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한 포석이다. 여기에 향후 5년간 1조 원 이상을 '제로 트러스트' 보안 체계 구축에 투입하며 기술력과 안정성을 모두 잡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LG유플러스는 그룹사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LG AI 연구원이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Exaone)'을 기반으로 통신 서비스에 특화된 AI 에이전트 '익시(ixi-O)'를 고도화하고 보이스피싱범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안티딥보이스' 기술을 탑재하는 등 고객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실용적인 AI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여세를 몰아 오픈AI의 기술을 결합한 AICC(AI 컨택센터) 솔루션을 하반기에 출시하며 B2B 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거대 담론보다는 실질적인 고객 가치 혁신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