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31일 한미 관세협정이 타결되면서 타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가 이목을 끈다.
정부는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총 3500억달러(약 489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중 1500억달러(약 209조원)은 양국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운영 펀드로 편성된다. 단순히 돈을 푸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핵심 역량인 조선업 기술과 인력, 운영 노하우를 현지에 통째로 이식하는 것이 골자다.
왜 마스가인가
‘마스가’가 이번 협정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이유를 이해하려면 미국과 중국이 당면한 현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미국은 중국의 해양 굴기가 두렵다. 미 외교 안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올해 초 발간한 ‘중국 이중 용도 조선소의 위협 탐색’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300개가 넘는 조선소가 존재하며 매년 전 세계 상선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CSIS는 이 조선소들이 상선과 함정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이중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반면 미국은 조선 산업 쇠퇴의 기로에서 허덕이고 있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상선 건조 시장 점유율은 0.1%대로 추락했으며, 군함 건조 능력마저 한계에 부딪혔다. 버지니아급 공격 잠수함,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등 핵심 해군력 증강 사업은 수년째 지연되고 있고, 건조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 전역 조선소는 2024년 단 5척의 대형 상선을 건조했다. 총톤수는 7만6000톤 남짓이다. 같은 기간 중국은 최대 조선소인 중국국영조선공사(CSSC) 홀로 250척이 넘는 선박을 건조했다. 총톤수는 1400만톤으로 생산능력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극단적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모든 선박의 톤수를 합치더라도 CSSC의 한 해 생산량을 넘지 못한다. 중국 나머지 조선소까지 합산하면 미국이 직면한 과제의 규모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셈이다.
중국의 전략은 평시에는 글로벌 선사들의 상선 주문이 수요를 뒷받침하고, 경기 침체기에는 국가가 직접 해군 함정 주문을 넣어 상선 침체를 상쇄하는 ‘군민융합’ 전략이다.
CSIS는 “상하이 창싱섬 CSSC 조선소에서는 이미 수십 척의 상선과 수상 전투함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다”며 “중국 4티어(민영) 조선소는 전체 조선소의 74%를 차지하지만, 중국 연간 생산량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CSSC 소속 1·2티어(국유) 조선소”라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와 압도적 상선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발주를 쓸어담고 있는 현상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상선 수익을 해군력 강화에 투자하고 인도 태평양 지역 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시선이다. 일본, 프랑스, 독일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도 예외 없이 중국산 선박을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는 미국이 중국 조선 해운을 적극 견제하는 한편, 우방국인 한국과 일본에 손을 내밀게 된 계기가 됐다.
현재로는 단순 프렌드쇼어링(우방국 제조) 물량 증가로 그치지 않는 분위기다. 한미 양측이 모두 이참에 적극적인 조선 동맹을 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은 한화오션의 미 필리조선소 인수 등을 바탕으로 현지 사업장을 마련하고, 최종적으로 군함 물량까지 노린다. 미국은 노후한 자국 생산설비와 건조기술을 최신화할 기회로 보고 있다.
미국 시장 진출과 관세 완화를 원하는 한국과, 조선업 재굴기를 원하는 미국의 눈높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협상단으로 방미한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현지 브리핑에서 “합의에 이르도록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마스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며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조선업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미국 내 선박 건조가 최대한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 부총리는 “협력은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립,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재구축, 그리고 조선 관련 유지 보수 업무인 MRO 등을 포함해 조선업 전반에 대해 우리 기업들의 수요에 기반해 이뤄질 것”이라고 첨언했다.
중국 현지에서도 마스가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보도를 통해 “미국의 한국 대상 15% 관세 확정의 이면엔 세계 조선업 판도를 바꿀 계획이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SCMP는 “한국 조선산업은 미국 조선 산업을 부활시키고 중국 지배력을 억제하려는 워싱턴의 야망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어 보인다”며 “미국이 오는 10월부터 중국에서 건조되거나 중국 기업들이 운항하는 선박에 대해 고액의 항만 사용료를 부과하려는 계획이 한국 조선업체들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꿈과 희망의 마스가, 함정은?
업계 실무자들은 한미 조선업 협력이 자칫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지 투자 수위를 조절하고 ‘너무 퍼주면’ 안된다는 시선이다.
특히 전투함 등 특수선 분야 협력은 한국 특수선 사업이 미국까지 시장 확대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현재로선 현지 투자가 필연적으로 강제된다는 점이 걸린다. 한국 사업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LNG운반선 등 상선과는 다른 성격이다.
미국은 연안을 오가는 선박의 경우 미국 내 조선소에서만 건조돼야 한다고 명시한 ‘존스법’과 외국 조선소의 미 군함 건조를 금지하는 ‘번스 톨리프슨법’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 조선소의 우수한 조선 인프라를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현지에서 해당 법령을 개정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 여부와 시기는 아직 미지수다.
한국이 빠르게 미국 군함 건조를 수주하고 싶다면 현지에 조선소를 새로 건설하거나, 기존 조선소를 인수하는 방법밖에 없다.
먼저 조선소를 새로 건설하는 방안은 가장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조선소 투자 사례를 돌아봐야 한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6년 조선업 호황기 당시 필리핀 수빅 지역에 조선소를 짓기 시작했다. 총 2조원 가까이 투입해 3년 동안 건설하고 성업가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진 조선업 불황과 현지 생산성 저하 문제, 산업재해가 겹치며 급격한 쇠락을 맞았다. 2019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따라 서버러스가 인수했다.
이번 마스가 프로젝트는 200조원이 넘는 규모를 자랑한다. 단순 선박 건조비용 지원이나, 현지 인력 양성 지원에만 국한하기엔 지나치게 큰돈이다. 정부에서도 현지 조선소 건설을 언급한 만큼 막대한 금액이 직접 건설에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기존 조선소 인수로 방향을 바꿔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본격적인 설비 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미국 조선업은 사실상 1980년대 이후로 답보 상태다. 이미 설비는 노후화됐다. 점점 더 커지고 정밀해지는 선박을 건조할 역량을 갖추려면 인력 양성부터 리모델링까지 수백~수천억원대 투자가 동반돼야 한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가 대표적이다. 필리조선소는 도크 규모가 작아 미군 함정 유지 보수 정비(MRO)만 가능하다. 인수 가격도 1000억원대로, 척당 3600억원을 호가하는 LNG운반선 한 척보다 저렴하기에 현재로는 미국 진출 자체 ‘상징성’만 있는 상황이다.
한화는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조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이중 8000억원을 필리조선소 확장과 추가 조선서 확보에 쓰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시장 진입 이후에도 꾸준한 재투자가 필요하다.
인수부터 설비 투자까지 전부 무난히 마무리하면, 이번에는 선박 고정비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미국의 비싼 인건비를 고려하면 가격경쟁력 보장이 힘들다.
현지와 한국의 노동 구조 차이도 잠재적 우려점이다. 한국 조선업계는 현재 대규모 인력 유지와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하청과 재하청을 반복하는 구조다. 원청 입장에서 경영효율화와 납기 준수 측면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론 원하청 격차를 심화시켜 노사 갈등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조선업계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파업을 감행하는 등 지속 대치 중이다. 이들은 노조법 2, 3조 개혁안 ‘노란봉투법’ 통과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미국 진출과 현지 인력 대거 채용 시에도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 조선업체가 강점으로 내세웠던 저렴한 가격과 납기 준수가 자칫 무색해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특히 수빅 조선소에서도 불거졌던 현지 노동자의 저숙련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수빅 조선소는 현지 일자리 창출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한국인 노동자는 300여명만 파견하고 2만4000여명의 노동자를 모두 필리핀인으로만 구성했다.
결과는 빈번한 품질문제로 이어졌다. 선박 납기도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비숙련 노동자를 무리하게 투입하다 산재사망사고도 이어졌다. 미국에서도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시간을 들여 노동자를 육성하고 기술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결론과 맞닿는다. 수익 실현 시기도 멀어진다.

트럼프 정권의 관세정책으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원자재 물가가 상승하는 것도 우려점이다. 특히 선박 건조에 대량 투입되는 후판(두꺼운 강판)의 경우 조선업체의 중국산 저가 후판 의존도가 적지 않은 편이다. 당장 국내 조선사와 철강업체의 후판 가격 협상에서도 가장 문제시되는 게 중국산 저가 후판과의 가격 형평성이다. 대중 제재로 미국 내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이 막히면 그만큼 현지 건조 비용은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한 점도 불안요소다. 철강업계에서는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에 상당한 이권을 양보한 만큼, 향후 생산성과 수익성을 보장받기 위해 고강도 철강 보호무역을 요청하리란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미국 내 철강 유통가격이 더 비싸지면서 현지 선박 건조 난이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지 선박 수요에 대한 불확실성도 있다. 애초에 미국은 상선 수요가 많지 않다. 해운사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압도적 물동량을 바탕으로 화주국의 위치에서 해운을 좌지우지한다.
가장 기본적인 컨테이너선 수요보다는, 알래스카 LNG프로젝트와 관련된 LNG운반선 수요와 특수선 수요가 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LNG운반선과 특수선 종류는 선박 가격은 높지만, 시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조선사 입장으로선 우려 사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