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30일(현지시간)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제시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에 성공함에 따라 이 투자 패키지의 성격과 재원 마련 방법 등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한국시간 3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통상 합의에 포함된 3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는 양국 전략산업 협력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라며 "조선,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에너지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적극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이 가운데 1500억달러는 조선협력 전용 펀드로 우리 기업의 미국 조선업 진출을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86조원은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1조8천699억달러의 약 20% 수준에 달한다. 협상결과를 놓고 경쟁 상대인 일본·유럽연합(EU)과 상대적 비교를 하는 것을 떠나 국가 경제에 절대적으로 부담되는 금액이라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재원마련과 수익 배분방식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의 무역협상 타결을 발표한 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하는 대로 투자하기 위한 3500억달러를 미국에 제공할 것이며 그 수익의 90%는 미국민에게 간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면서 수익 대부분을 양보해야 하는 듯한 표현으로 해석되며 논란이 됐다.
반면 우리 정부의 해석은 전혀 달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의 원문에 'retain 90% of profits from the investment'(투자 수익 90%를 보유)라고 돼 있다"며 "리테인(retain)이 무슨 뜻일지 논의해봤지만, 아직 펀드 구조나 투자자, 수익 배분 방식이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단정적 해석은 어렵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어 "미국 정부가 사업을 추천하고 구매를 보증(off-take)하는 구조라면, 이익이 외부로 빠져나가기보다는 미국 내에 유보되는 구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펀드가 미국에 투자돼 발생한 수익 대부분을 미국에 양보하는 것이라는 해석에 대해 대통령실은 "정상적인 문명 국가에서는 어려운 일"이라며 강한 수위의 반박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김 실장은 "우리는 일본 펀드딜을 정밀하게 분석했고, 우리 나름대로 안전장치들을 훨씬 더 많이 포함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조현 외무부 장관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나면서까지 정밀 분석한 일본의 5500억달러(약 760조원) 대미 투자펀드 역시 투자수익 배분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같은 논란의 시발점과 확산 양상은 한일 양국이 동일하다 할 정도로 비슷하다.
미일 관세 협상 타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러트닉 상무장관은 블룸버그TV에 제약 공장과 반도체 제조 공장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은 이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운영자에게 제공하며 수익의 90%는 미국 납세자에게 분배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일본의 대미 펀드 조성 아이디어는 정작 일본이 아닌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냈고, 당초 이같은 아이디어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펀드를 통해 제약과 광물 등에 대한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부채 상환을 위한 자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는 곧 일본의 투자 수익이 미국 재무부에 귀속돼 부채 상환에 사용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다른 나라가 자국에 투자함으로써 발생한 이익을 사실상 강제적으로 국고에 귀속시키는 갈취와도 같은 행위가 이제는 '정상적인 문명 국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 현실이다.
더 짚어봐야 할 대목은 대미 투자펀드에서 손실이 났을 때는 과연 누가 이를 감당하느냐다.
대미 투자펀드 재원 마련에 있어 민간 기업과 시중은행의 참여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미일 관세협상에서 일본 측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일본국제협력은행(JBIC)과 일본무역보험(NEXI) 등의 공적자금 투입과 민간 기업들의 참여를 통해 5500억 달러를 조달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한국 역시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공적 수출금융기관이 미국 투자펀드에 융자와 보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민간 은행들도 대출 방식(수은이 지급보증)으로 3500억달러 펀드에 관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 주장대로 수익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 정부에 귀속되고, 더 나아가 손실분은 투자에 참여한 우리 민간 기업과 은행들이 떠안는 조건이라면 이러한 투자는 주주들로부터의 배임소송을 우려해야 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투자 분야는 두주 후 열릴 양국 정상회담 때 더 논의가 될 예정이다.
더욱 치밀한 준비를 통해 우리 기업과 금융사들이 정부에게 등 떠밀려 대미 투자 재원 마련에 참여하고 결국 남의 나라에 투자 이익을 갈취당하는 일이 없도록 확실한 기준을 세워줘야 한다.
민간 기업과 금융권의 경영이 어려워져 공적자금과 같은 정부 지원이 들어갈 경우, 결국 그 돈이 국민의 혈세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