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사고 0건(해외 법인 제외). 한때 횡령과 정보유출로 신뢰를 잃었던 우리은행이 달라졌다. 변화의 중심엔 영업통이면서도 통제형 리더십을 택한 정진완 행장이 있다. 타사들이 잇단 사고에 흔들린 사이 우리은행은 5대은행 중 유일하게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입증했다.

내부통제 후 고객 신뢰 회복으로 실적 개선
2023년까지 우리은행은 잇따른 횡령과 정보유출로 고객 신뢰를 잃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그 여파로 비이자수익 감소와 함께 장기 수익 기반도 타격을 입었다. 이에 정 행장은 취임 후 리스크 요인을 줄이고 내부통제 체계를 정교화했다.
최근 실적 지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올해 2분기(4~6월) 우리은행의 비이자수익은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에 그쳤다. 정 행장 취임 전인 2023년의 급감세(-8.8%)와 대비된다. 고객에 대한 신뢰 회복, 리스크 비용 감소가 맞물리며 실적 회복세도 가시화된 것이다.
이런 성과는 시장의 인식 변화로도 이어졌다. 내부규정준수 확산에 조직문화가 달라졌고 평판 리스크 완화로 자금조달비용도 줄었다. 기관투자자들은 우리은행의 구조적 변화에 주목하며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도 “내부통제는 장기 수익성과 직결되는 인프라”라며 우리은행 사례가 업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업계에선 “단기 실적과 사고는 직결되진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하나은행(약 488억원)과 KB국민은행(111억원), 신한은행(37억원)은 잦은 사고에도 이자이익 급증이나 유가증권 투자성과 등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내부통제는 단기 실적을 좌우하진 않지만 장기 수익 기반의 인프라로 작동한단 평가다.

해외 지점은 내부통제 미비…당국 신뢰 회복은 과제
현재 정진완호 우리은행은 당국과의 관계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해 회사는 금융사고가 없었지만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6건의 제재를 받았다. 이는 전년(4건) 대비 증가한 수치다. 내부통제가 완성형이라기보단 아직 조정하고 있는 시스템에 가깝다는 뜻이다.
특히 6건의 제재 중 4건은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 해외 법인 통제 미비에서 비롯됐다. 지점의 전산화 부족(수기 관리)과 보고체계 미비, 현지 규제 미준수 등이 주요 내부통제 취약점으로 지적됐다. 본점의 통제시스템을 해외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도기적 혼선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현지 규제에 맞춘 통제 매뉴얼을 정비하고 있다. 글로벌 통제 전담 조직의 구축 역시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당국으로부터의 신뢰 회복은 명예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자산을 비롯한 신사업 인허가와 규제유연성, 자금조달 여건 등 성장성과 직결된다. 무사고만으론 충분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부통제는 사고 방지를 넘어 글로벌 기준을 따르고 시장과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지배구조 개편 통한 ESG 평가 개선도 숙제
이에 회사가 다음으로 나아가려면 ▲국내외 조직 간 통제 편차해소 ▲AI기반 이상거래 탐지(FDS) 등 실시간 자동감시체계 구축 ▲제재대응을 넘는 선제적 신뢰구축이 핵심이다. 특히 시급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통제에 대한 편차해소다. 이는 제재 리스크를 넘어 해외 경쟁력과 리스크 관리 효율성, 조직신뢰도, 장기 수익성까지 좌우하는 문제다. 지금은 과도기의 시행착오로 보이지만 반복되면 감독당국에 구조적 한계로 비칠 수 있다.
ESG 평가 중 지배구조(G) 항목 점수가 오히려 낮아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최고경영자(CEO) 중심 의사결정구조가 부각되며 이사회 다양성과 의결권 분산 등 ‘투명한 통제 시스템’의 부재가 한계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 평가는 사고 방지뿐 아니라 이사회구성, 의사결정투명성 등 전반적시스템이 반영된다. 장기적 성장을 위해선 관련 의사결정 체계를 비롯한 지배구조 개편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사회 독립성을 높일 인물을 보강하고 CEO 단독 판단보다 의결을 거치게 하는 식이다. 다만 현재 우리은행의 지배구조와 지주회사 체계·내부 관행상 단기 실현 가능성은 낮다.
지금의 무사고 성과는 정 행장의 강한 리더십과 통제기조가 만든 결과다. 그러나 조직의 지속 가능성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확보된다. 그의 통제형 리더십이 일시적 효과를 넘어 제도와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는 우리은행의 ‘다음 10년’을 가를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