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서 시작되어 10년 가까이 이어진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대법원의 17일 최종 판결로 마침내 종결되었다. 

1심과 2심의 무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됨에 따라 이 회장과 삼성 최고 경영진의 머리 위를 맴돌던 '다모클레스의 칼'이 사라졌다. 이는 전례 없는 경영 안정성을 보장하는 한편 그동안의 전략적 의사결정 지연에 대한 법적 명분을 제거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비록 지배구조에 대한 일부 논란의 불씨는 남겼을지라도 법적 관점에서는 2015년 합병의 사업적 논리를 인정한 셈이다. 이를 통해 삼성은 경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미래 준비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합병' 혐의에 대한 17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단순히 한 개인의 법적 족쇄가 풀렸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지난 10년간 삼성을 짓눌러 온 전략적 관성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뉴삼성'은 이제 방어적 경영에서 벗어나 공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전략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시장에서는 세 가지 핵심 영역에서 그 변화가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바로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인수합병(M&A)의 부활,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적 패권을 되찾기 위한 총력전, 기업 지배구조와 리더십 비전의 근본적이고 도전적인 재편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대화하는 이재용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대화하는 이재용 회장. 사진=연합뉴스

과감한 동력 창출
삼성에게 2017년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은 이 회장의 재판 리스크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대규모 M&A가 실종된 시기로 기록된다. 실제로 2017년 80억 달러 규모의 하만(Harman) 인수는 사실상 마지막 '빅딜'이었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 AMD 등 글로벌 경쟁사들은 AI, 자동차, 소프트웨어 분야의 핵심 기술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미래를 선점해 나갔다. 반면 삼성은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도 이를 활용하지 못했으며 이 회장이 100회가 넘는 재판에 출석하는 등 경영진은 법적 대응에 역량을 소진해야만 했다. 예단할 수 없지만, 삼성이 AI와 같은 미래 핵심 산업에서 경쟁사에 뒤처졌다는 시장의 평가로 이어지는 결과를 이어졌다.

당장 삼성의 최고 경영진은 대담한 전략적 베팅보다는 안정을 우선시하는 극도로 보수적인 '벙커 심리'에 갇히고 말았다.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대형 M&A가 중단된 것은 최고 결정권자가 수감될 수 있고 승계의 정당성이 법적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M&A에 필요한 과감한 리더십과 이사회 승인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떤 빅딜이든 법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거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오해받을 수 있는 2차 리스크를 감수할 수 없었던 셈이다.

법적 족쇄가 풀리면서 이 회장은 더 자유롭고 과감하게 미래지향적 의제를 추진할 동력과 명분을 얻었다는 평가다. 이는 단순한 기회가 아니라 반드시 증명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제 삼성의 무게중심은 리스크 관리와 법적 방어에서 선제적 투자, 전략적 인수, 그리고 삼성의 다음 성장 시대를 정의하는 것으로 완전히 이동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삼성전자가 연결 기준으로 145조원(약 1000억달러 이상)이 넘는 세계 최대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이유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불꽃'이 튈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AI 가치사슬 전반을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영국 옥스퍼드 시맨틱 테크놀로지로부터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와 같은 IP를 인수하거나 거대언어모델(LLM) 최적화, 엣지 AI 등 특화된 AI 분야와 액추에이터, 센서 등 로봇 부품 분야의 소규모 기업 인수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나아가 미국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 젤스(Xealth) 인수처럼 갤럭시 워치, 갤럭시 링 등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병원 시스템과 직접 연결하는 추가 전략도 가능하다.

최근의 M&A 사례들은 삼성의 전통적인 핵심 역량이 아닌, 인접한 고성장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 당장 젤스는 갤럭시 워치를 의료적으로 더 의미 있게 만들고 소니오는 삼성메디슨의 초음파 장비를 더 스마트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는 삼성이 하드웨어 중심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서비스와 지능형 소프트웨어를 통합해야 하며 삼성의 미래 M&A는 이러한 역량을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전망이다.

다만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막대한 자금의 분배 구조가 M&A 전략의 제약 요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00조원이 넘는 상당액이 미국, 중국, 베트남 등 해외 자회사에 묶여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재계 관계자는 "대규모 인수를 위해 이 현금을 국내로 들여올 경우 막대한 세금과 환율 변동 리스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삼성의 오랜 '무차입 경영' 기조도 대규모 부채를 동원한 자금 조달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가장 현실적인 M&A 시나리오는 해외 자회사가 보유한 현금을 활용해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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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업부 재편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 중심의 대전략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현재 삼성 파운드리는 시장 지배자인 TSMC에 크게 밀리고 있다. 2027년 1.4나노(SF1.4) 공정 도입을 목표로 하며 3나노에서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하는 등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으나 TSMC의 안정된 수율과 방대한 생태계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 메모리(HBM), 첨단 패키징(AVP)을 통합 제공하는 '원스톱 AI 턴키' 서비스가 핵심 카드가 될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전열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AI 가속기 시장의 핵심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게 주도권을 내주며 자존심을 구겼지만 CXL(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 PIM(지능형 반도체)과 같은 차세대 솔루션 개발을 통해 AI 시대의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의 자체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엑시노스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진정으로 경쟁력 있는 플래그십 AP를 만들거나, 전략적으로 중저가 시장에 집중하고 차량용, IoT용 SoC 개발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바이오 및 제약 전략도 재정립될 전망이다.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거둔 가장 확실한 성공 사례이자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했다. 당장 막대한 매출과 견조한 성장 전망을 자랑하며 위탁개발생산(CDMO) 설비를 공격적으로 확장(5공장 가동, 추가 증설 계획)해 항체-약물 접합체(ADC)와 같은 고부가가치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그 중심에서 새로운 시장 개척 등 입체적인 전략이 가동되는 중이다. 또 '갤럭시 AI'의 통합과 차세대 6G 통신 기술 리더십 확보는 이 싸움의 핵심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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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보여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기술 전쟁은 공급망, 시장 접근성, 심지어 M&A 가능성까지 압박하는 상수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은 향후 18~24개월 내 차량용 반도체 또는 AI 보완, 제약 및 바이오 분야 등에서 대규모 인수를 단행하여 새로운 전략적 의지를 시장에 명확히 알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투명성 강화와 장기 주주가치 제고에 초점을 맞춘 강력한 서사와 함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명확하고 시한이 정해진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보다 이재용 회장은 선대 회장들의 유산을 넘어 회사를 통합하고 임직원에게 영감을 주며 시장에 강력한 스토리를 제공할 새로운 미래 비전을 직접 제시해야 한다는 숙제도 받았다. 그리고 이 비전은 '인류를 위한 AI 기반 초연결 및 지속가능 기술'을 중심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