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흑표' 주력전차(Main Battle Tank, MBT)가 약 9조원에 육박하는 폴란드 2차 수출 계약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방위사업청은 2일(현지시간)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악-카미슈 폴란드 국방부 장관과 현대로템이 K2 전차 2차 계약 협상을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폴란드 측 요청으로 구체적 액수는 비공개지만, 업계에서는 1차 계약과 동일한 180대 물량에 약 8조8000억원(65억 달러) 규모로 추정한다. 1차 계약 당시 약 4조5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금액이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약 9조원에 달하는 계약금은 이번 수출의 핵심이 ‘현지 생산’에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차 계약 물량 180대 중 117대는 현대로템이 국내에서 생산해 공급하지만 나머지 63대는 폴란드 국영방산업체 PGZ가 폴란드 현지에서 직접 생산한다.

나아가 폴란드 군의 요구에 맞춘 개량형 모델 ‘K2PL’ 개발 비용까지 포함됐다. 완제품을 수출했던 1차 계약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술 이전과 산업 협력을 포괄하는 진정한 파트너십의 시작인 배경이다. 또 단순한 무기 판매 계약을 넘어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유럽의 심장부이자 나토(NATO)의 최전선인 폴란드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유럽 안보의 핵심 공급망으로 편입됨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국방력을 시급히 재건해야 하는 폴란드와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려는 한국의 이해관계가 완벽히 맞아떨어진 결과다. 폴란드는 자국 내에 K2 전차 생산 시설을 구축함으로써 안정적인 무기 공급과 유지보수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자국 방위산업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나아가 현지에서 생산된 부품과 완성품을 다른 동유럽 국가에 판매하는 ‘허브’ 역할까지 구상할 수 있게 됐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독일이나 구소련제 무기를 공유해왔던 동유럽 국가들은 폴란드와 K2 전차의 유지보수 인프라를 공유하며 가격 납기 성능에서 우수한 K2 전차를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독일 KMW의 레오파르트 전차가 장악하고 있던 유럽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을 확보한 셈이다.

특히 폴란드 맞춤형 K2PL 모델 개발은 K2 전차의 수출 경쟁력을 한층 더 끌어올릴 전망이다. 최성환 LS증권 연구원은 “K2PL에는 능동방호장치(APS) 및 드론 재머 등 각종 사양 업그레이드가 진행된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전차무기와 드론의 효용성이 입증된 만큼 K2PL 사양을 원하는 국가는 다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앞으로도 K2 전차가 한국뿐 아니라 유럽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폴란드 땅에 세워질 K2 생산라인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유럽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게임 체인저’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노르웨이 설원을 달리는 K2. 사진=유튜브 갈무리
노르웨이 설원을 달리는 K2. 사진=유튜브 갈무리

T-34와 화염병
북한군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세계대전을 거치며 육군 전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전차에 진심이었다. 한국전쟁 전쟁 발발 3년 전부터 북한 전차병들은 한반도에 주둔중이던 소련군 제10전차사단에서 3개월 과정의 전차교육을 받았으며 1947년 12월 제208전차훈련연대까지 창설했다.

1948년 소련군 제10전차사단이 철수하면서 전차와 자주포, 싸이드카, 차량 등 장비를 대거 인수했고 1950년 4월 소련으로부터 청진항을 통해 전차 100대를, 6월에는 나진을 통해 T-34를 추가 공급 받았다.

운명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90여대의 전차를 투입해 포천에서 의정부, 서울 축선으로 이어지는 국군 7사단의 방어선을 날카롭게 때렸다. 한국군은 결사항전에 나섰으나 변변한 전차도 없던 상황에서 속절없이 밀리고 말았다. 105미리 곡사포를 직사로 겨눠 북한군 T-34를 공격하거나 박격포탄을 날리는 것이 전부였다.

최악의 경우 화염병에 모래를 넣어 육탄돌격까지 감행했다. 조국과 민족을 지키겠다는 불타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분전(奮戰)이다. 그러나 한국군은 UN군의 참전이 결정되고 미군이 M4 셔먼을 한반도에 전개하기 전까지, 말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T-34의 압도적인 전력에 뼈와 살로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T-34. 사진=연합뉴스
러시아 전쟁박물관에 전시된 T-34. 사진=연합뉴스

전장의 지배자, K2 흑표전차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전차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선보인 ‘전격전(Blitzkrieg)’은 전차의 활용을 극대화한 전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참호 속에서 소모되던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고, 기동과 돌파라는 새로운 전술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독일군은 전차 부대를 선봉에 내세워 빠른 속도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후방 깊숙이 침투해 지휘 체계와 보급로를 마비시켰다. 보병, 포병, 공군이 유기적으로 전차 부대를 지원하는 ‘제병협동작전’을 통해 폴란드, 프랑스 등 유럽 대륙을 순식간에 석권했다.

전차가 단순히 보병을 지원하는 보조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주력 무기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후 전차는 냉전 시대를 거치며 더욱 강력한 주포와 장갑, 첨단 사격통제장치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스텔스 기술, 능동방호시스템 등 첨단 기술이 접목된 차세대 전차가 개발되고 있다.

K2 전차는 그 최전선에 선 전장의 지배자다. 3명(전차장, 포수, 조종수)의 승무원이 탑승해 현대위아 CN08 120mm 55구경장 활강포로 무장한 K2 전차는 50톤 중반의 비교적 가벼운 중량에도 불구하고 1500마력의 강력한 엔진을 탑재한 '타오르는 검'이다. 

사진=유튜브 갈무리
사진=유튜브 갈무리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포탑 후방의 버슬형(bustle-type) 자동장전장치 채택이다. 분당 약 10발의 신속하고 일관된 재장전을 보장하며, 험지 기동 중에도 안정적으로 포탄을 장전할 수 있어 지속적인 화력 투사가 가능하다. 여기에 각 보기륜을 개별적으로 전자 제어하여 차체의 높이와 자세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반능동형 암 내장형 유기압 현수장치(In-arm Suspension Unit, ISU)는 K2 전차를 '지형의 조율자'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K2는 '앉기(sit)', '서기(stand)', '무릎 꿇기(kneel)', '기울이기(lean)'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변화무쌍한 지형 적응력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미래 전장 환경에 필수적인 네트워크 중심전(Network-Centric Warfare, NCW) 수행 능력도 완벽하다. 자동항법장치(GPS/INS), 자동 표적 탐지 및 추적 장치, 그리고 전차장이 탐색한 표적을 포수가 즉시 공격할 수 있는 '헌터-킬러(Hunter-Killer)' 기능은 노르웨이 군 입찰 당시 독일의 레오파르트를 압도한 결정적 차이였다.

적의 레이저나 미사일 접근을 탐지하는 경보 수신기와 다영역 연막탄 발사기 등 소프트킬(soft-kill) 능동방호체계는 물론 수심 4.1m까지 잠수하여 강을 건널 수 있는 심수도하(deep fording) 능력은 외국 방산 관계자들의 머리속을 복잡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당장 구입하고 싶다" "적이 구매하면 어쩌지?" 독일의 레오파르트 2A7, 미국의 M1A2 에이브람스를 압도하는 K2 전차의 존재감이다. 물론 K2 전차가 모든 영역에서 경쟁자를 압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작전 환경과 운용 개념에 최적화된 '전략적 선택지'로서의 가치로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한 '가성비 좋은 전차'를 넘어 '지리적으로 적합한 전차'라는 차원이 다른 경쟁력이다.

레오파르트와 K2의 노르웨이 테스트. 사진=유튜브 갈무리
레오파르트와 K2의 노르웨이 테스트. 사진=유튜브 갈무리

폴란드, 그리고 나토
현대로템과 폴란드의 K2 전차 계약은 단순한 무기 구매 계약이 아니다. 이는 지정학적 위기감, 산업적 야망, 그리고 금융 공학이 복잡하게 얽힌 다층적인 전략 협정으로 봐야 한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폴란드는 국방비를 GDP 대비 4% 이상으로 대폭 증액, 유럽 최강의 지상군 건설을 목표로 대규모 군비 증강에 착수했다. 이어 자국이 보유하던 구소련제 T-72 및 이를 개량한 PT-91 전차 수백 대를 우크라이나에 긴급 지원하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신규 전차 도입의 계기로 삼기 시작했다. 

'훌륭한 제품'으로의 '빠른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폴란드에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전차의 성능을 넘어 얼마나 '빨리'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가로 좁혀졌다. 바로 '신속한 납기'다. 여기에  '산업 협력을 통한 장기적 파트너십 구축'이라는 2단계 전략적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만 했다.

북한이라는 안보 위협이 존재하는 K방산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무난하게 부상한 배경이다. 실제로 현대로템은 폴란드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K2를 개량한 'K2PL(Poland)' 모델의 개발과 생산 카드를 꺼내들었다.

심지어 폴란드 국영방산업체인 PGZ(Polska Grupa Zbrojeniowa) 산하의 부마르-와벤디 공장에 K2PL 생산 라인을 구축해 2차 계약 물량 180대 중 63대를 현지 조달하기로 했다. 폴란드가 원했던 단순한 부품 조립을 넘어, 핵심 기술 이전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산업 협력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이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포석이다. 자국의 기술과 생산 시스템을 나토 회원국의 산업 기반에 깊숙이 이식해 유럽의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과 같은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가격(Price)', '성능(Performance)', '신속 납기(Prompt Delivery)'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의 시너지를 바탕으로 나토 회원국 폴란드의 '군심'을 저격했다는 평가다.

폴란드가 K2 전차를 구매한 것이 아니라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 다양한 K-방산 무기체계를 '패키지'로 도입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폴란드는 K2와 더불어 미국의 M1 에이브람스, 그리고 독일의 레오파르트까지 구매해 일종의 다양성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지만 유독 한국과는 K2와 더불어 자주포 및 다연장로켓까지 이르는 패키지 구매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과의 방산 협력 관계를 단일 무기체계 거래를 넘어 훨씬 더 깊고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격상시키려는 의지다. 당연히 한국에게는 엄청난 기회의 잠재력이다. 

이번 2차 계약을 두고 2022년 체결된 K2 전차 1000대 총괄 계약의 나머지 물량(640대)에 대한 후속 계약 가능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방사청은 "유럽연합(EU)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유럽 재무장 계획'에 부합하는 방산 협력 모델"이라며 "유럽 내 개별 국가는 물론 나토 차원에서도 새로운 방산 수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폴란드에서의 성공은 강력한 '레퍼런스'가 되어 주변국으로의 수출 확대 가능성도 크게 높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K방산 벨트'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군 현대화를 추진 중인 루마니아, 노후화된 구소련제 T-72 전차를 대체할 차기 주력전차로 K2PL 모델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슬로바키아 등과의 협력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벌이는 K2. 사진=연합뉴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을 벌이는 K2. 사진=연합뉴스

"이제는 기회를 유지할 때"
폴란드 K2 계약의 성공은 K방산의 꽃놀이패다. 그러나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는 평가다.

우선 폴란드 계약의 완벽한 이행이 필요하다. 특히 2차 계약에 포함된 기술 이전과 K2PL 현지 생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K-방산의 신뢰성과 실행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 단순한 '하드웨어 공급자'를 넘어 '종합 국방 솔루션 파트너'로 진화해야 제대로 된 방산 시장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대상 국가와의 정치·외교적 파트너십 구축에 더욱 힘써야 한다. 기회를 잡은 상황에서, 그 기회를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개발 중인 차세대 주력전차인 '주력 지상 전투 시스템(Main Ground Combat System, MGCS)' 프로젝트도 의식할 필요가 있다. 지속적인 성능 개량을 통해 K2PL 플랫폼이 MGCS의 '대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결국에는 '끝없는 진화의 나선'을 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R&D 투자를 통해 미래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더욱 정교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정치적 장벽까지 넘어서는 입체적 전략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