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패러독스 |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경제학 패러독스 |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경제학 패러독스>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착한 정책은 왜 나쁜 결과를 낳는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시행된 복지 확대, 부자 증세, 서민 지원 등 정책이 왜 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는가? 이 책은 로마제국부터 조선왕조, 시진핑의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까지, ‘선한 의도로 시행됐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정책들의 함정을 낱낱이 밝힌다.

◇ 로마 제국, 무리한 ‘기본소득’ 정책 펼치다 쇠퇴

위대한 로마 제국은 왜 멸망했을까. 게르만족 등 야만족의 침략 탓인가 혹은 로마의 사치 풍조 때문인가.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1881~1973년)는 경제학으로 로마의 쇠퇴와 멸망을 설명했다.

미제스에 의하면, 로마는 복지정책, 화폐 정책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가격 정책 때문에 망해갔다. 로마는 초기에 복지정책을 통해 국민의 생계를 부양할 수 있었다. 로마는 빈곤층에게는 곡물, 빵, 올리브유, 포도주, 돼지고기까지 배급했다. 현대의 기본소득 개념을 이미 실행한 것이다. 

정책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복지비 급증으로 예산이 부족해지자 화폐 발행을 늘렸다. 그 결과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크게 올랐다. 로마는 빈곤층 생계를 지키려고 상품 가격을 통제했다.

가격 상한제 때문에 농부는 땀 흘려 재배한 밀을 손해 보고 팔아야 했다. 제빵업자들은 빵을 팔수록 손해였다. 결국 농부는 먹을 만큼만 밀 농사를 했고, 제빵업자들도 가족 식량만큼 빵을 만들었다. 활발한 상업 사회이던 로마는 자급자족 체제로 퇴보했다. 로마제국은 이렇게 몰락해 갔다.

중국의 '공동부유' 정책은 '공동빈곤'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출처: SNS.
중국의 '공동부유' 정책은 '공동빈곤'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출처: SNS.

◇ 中 시진핑, ‘모두가 잘 살자’며 대기업-부동산 갑부 공격

빈부 격차를 가장 빠르게 해소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정치인들은 대기업과 부자를 억누르는 길을 선택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2021년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천명했다. 모든 인민이 함께 잘살자는 것이다. 중국은 가장 먼저 대기업들을 손보았다. 매출과 이익이 높은 중국의 글로벌 IT 기업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이 대상이었다.

중국 당국은 이들 기업의 CEO들을 압박했다. 중국 6대 빅테크 기업은 정책 시행 첫해 약 30조 원의 기부금을 내야 했다. 사업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었다. 텐센트의 주요 사업 분야인 게임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졌다. 알리바바의 자회사 앤트의 상장도 금지되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윈은 현역에서 은퇴했다.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도 핀테크 자회사 차이푸퉁 대표에서 물러났다.

중국에는 부동산 사업으로 재산을 모은 갑부들이 많았다. 이에 중국 정부는 부동산을 엄격히 규제했다. 부동산 관련 부채 한도와 대출 한도를 줄였다. 대출 이자를 높이고 부동산 회사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공동부유’ 정책이 본격화되자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주식가격도 폭락했다. 기업들은 감원을 시작했다. 10~15%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대기업의 1·2·3차 하청업체들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결국 근로자의 실업률이 증가했다. 신입사원 채용이 사라져 청년 실업률이 급증했다. 2023년 6월 청년 취업률은 21.3%에 불과했다.

부동산 규제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들이 중단됐다. 대형 부동산 회사들이 도산했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건설자재를 댄 중소기업들은 물품비를 받지 못해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집 한 채 장만하려고 한푼 두푼 저축하여 아파트 선분양을 받은 사람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은행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넣었던 분양자들은 아파트 건설이 중단되자 은행 대출 이자만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공동부유 정책으로 대기업과 갑부는 확실히 줄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잘살게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럭저럭 살다가 일자리가 사라져 극빈층으로 전락한 사람들만 늘어났다. 이것이 부자를 끌어내리려는 정책이 품은 패러독스이다.

◇ 부자 소득세 높였더니 일자리 사라졌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전 세계는 사회주의 물결이 휩쓸었다. 모든 국가에서 부자에게 70~80%의 높은 세금을 물렸다. 한국도 부자의 세율이 90% 이상인 적이 있었다. 1961년 이병철 당시 삼성 회장은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 소장을 만난 자리에서 실질세율이 100%가 넘어 수입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니, 이래선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겠다며 소득세율을 70%, 80%로 올리는 사람들은 정치인,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돈을 직접 벌지 않고 국고에서 안정적으로 급여를 보장받는다.

하지만 부자들은 다르다. 대부분이 창업을 통해 돈을 번다. 사무실을 얻고, 직원을 채용하고, 투자를 한다. 이 과정에서 보통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고 소득이 생긴다.

만약 부자들에게 소득세율을 80% 이상 부과한다고 해보자. 자기 재산으로 사업을 벌여 돈을 벌더라도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게 된다. 더구나 사업은 언제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실패하면 투자금은 모두 날린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사업을 벌일 것인가. 그냥 있는 재산으로 놀면서 편히 살려고 할 것이다. 1970년대 세계 경제가 침체하고 활력이 사라진 이유는 바로 고율의 소득세로 인해 새로운 사업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빈부 격차 해소, 빈곤층 소득 높이는 데 초점 맞춰야

경제 격차를 시정하려는 정책의 목적은 부자들의 소득을 낮추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올리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소득격차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부자의 소득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사회는 부자들이 얼마나 돈을 더 버는지, 돈을 어떻게 버는지, 얼마나 상속받고 증여를 하는지에 모든 관심을 쏟고, 이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가 있는지를 밝히고 막으려고 한다.

제로섬 사회에서는 그게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제로섬 사회가 아니다. 비제로섬 사회에서 부자의 소득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면 가난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삶을 더 어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