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가장 차가운 곳,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며 역설적으로 가장 뜨거운 기회의 항로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는 대한민국이 수에즈 운하를 대체할 최단 거리 교역로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이를 적극 개척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설명이다.

쉬운 길은 아니다. 러시아의 지정학적 야망, 미·중의 패권 경쟁,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라는 거대한 '얼음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실가능성을 둘러싼 민감한 정책적 판단도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 쇄빙선 아라한.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최초 쇄빙선 아라한. 사진=연합뉴스

북극으로
흔히 '북극항로'라 불리는 이 길은 비행기와 뱃길을 모두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러시아 연안을 지나는 '북동항로(Northeast Passage)'를 지칭한다. 캐나다 북극 군도를 지나는 '북서항로'와는 구별된다는 설명이다. 

이 항로들은 경제적 가치 때문에 수백 년간 수많은 탐험가들의 도전 대상이었다. 비투스 베링, 빌럼 바렌츠, 헨리 허드슨 등 수많은 이들이 얼음과 추위 속에 목숨을 걸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귀환조차 보장받지 못했으며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북극항로의 별이 되었다. 그 얼음길이 탐험가의 무덤이라 불린 이유다.

1878년 스웨덴의 탐험가 노르덴시욀드가 증기선을 타고서야 인류 최초로 북동항로를 완주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계기술이 등장해서야 북극항로는 그 속살을 인류에게 내어준 셈이다. 그리고 북서항로도 1906년 탐험가 아문센에 의해 정복되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다.

유빙에 갇힌 선박들. 사진=연합뉴스
유빙에 갇힌 선박들. 사진=연합뉴스

빛나는 길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해양수산부 및 HMM 본사의 부산 이전과 함께 북극항로 개척을 주요 공약으로 걸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은 부산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북극항로 개척' 공약을 내걸고 '북극항로 개척추진위원회'까지 출범시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전재수 북극항로개척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부산 공약은 대한민국 균형 발전 전략의 일환"이라며 "부산을 해양 수도로 만들어 서울 중심의 1극 체제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극항로에 대한 기대감의 핵심은 명확하다. 먼저 압도적인 거리 단축이다.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 운하를 통하면 약 2만2000km, 40일이 걸리지만 북극항로로는 약 1만5000km, 30일로 단축된다. 이는 수출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나아가 '해적이 없는 안전한 바닷길'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소말리아, 예멘 등 파탄국가가 인접한 남방항로는 해적의 위협에 상시 노출되어 있지만, 북극항로는 군사강국 러시아가 완벽히 통제하는 해역이다. 혹독한 기후와 희박한 인구 탓에 소말리아식 해적은 애초에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대글로비스의 북극항로 시범항해. 사진=연합뉴스
현대글로비스의 북극항로 시범항해. 사진=연합뉴스

혹독한 얼음장벽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냉정한 회의론도 존재한다. 거대한 리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러시아다. 

실제로 러시아는 북극해가 국제법상 공해임에도 유빙 때문에 사실상 자국 쇄빙선의 에스코트 없이는 통행이 불가능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를 외교적 지렛대로 삼아 북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당장 알렉세이 체쿤코프 극동·북극개발부 장관은 "2030년까지 물동량을 1억 톤으로 늘리고, 각종 에너지 터미널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으며 2021년에는 북극해 안보를 위한 '북극함대' 창설까지 공식화했다. 

북극항로를 단순한 통행로가 아닌, 자국의 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음을 명확히 한 것이다.

미국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와 북방 함대의 연계성이 강화되는 것을 자국의 해양 전략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나아가 '빙상 실크로드'를 내세워 러시아와 밀착하자, 미국은 북극 담당 대사까지 임명하며 동맹국들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북극 진출이 자칫 강대국 패권 경쟁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가는 '전략적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가장 현실적이고 큰 문제는 '비용'이다. 

우선 러시아 쇄빙선 이용료는 수에즈 운하 통행료와 경쟁력을 저울질해야 할 정도로 비싸다. 2018년 세계 최초로 컨테이너선 '벤타 머스크'호가 부산항을 출발해 북극항로를 통과하는 역사적 항해에 성공했지만 이는 상업적 성공이라기보다는 실험적 시도에 가까웠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난화가 진행되어 연중 항해가 가능해진다고 해도(2030년경으로 예측) 부빙해(浮氷海)가 유빙해(流氷海) 수준이 될 뿐 여전히 고가의 내빙(耐氷) 선박은 필수적이다. 더욱이 연중 4개월가량은 항해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설한 항만, 도시 등 인프라가 그대로 멈춰 서야 하는 비효율 문제도 발생한다. 

위성통신(INMARSAT) 제한, 스타링크의 극지방 서비스 공백 등 통신 문제와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인프라 투자 소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불확실한 미래에 배팅되는 순간이다. 북극항로의 경제성이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빙하. 사진=연합뉴스
빙하. 사진=연합뉴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모든 리스크를 감내한다고 해도 내부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것이 더 심각하다. 실제로 북극항로라는 거대 담론이 현실적인 동력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국내적 요인은 '정책의 비일관성'에 있다는 분석이다. 수십 년이 소요될 국가적 프로젝트가 5년 단임 정권의 외교·안보 기조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투자와 국제적 신뢰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강조하며 '9-브릿지 전략'을 통해 조선·항만·가스 등 다방면에서 러시아와 협력하며 북극항로 공동 개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윤석열 정부는 이를 180도 바꿨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한미동맹 강화 기조 속에 대러 관계에 신중한 태도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경제성, 환경성, 지정학적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신중론'에 무게를 두고 당장의 상업화 추진보다는 제2쇄빙연구선 '아라온2호' 건조 등 연구 역량 강화와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러한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재차 신중론에서 벗어나 경제적 기회를 선점하자는 '적극론'으로의 회귀를 시사하고 있으나 이 역시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는 리스크 그 자체다. 부산을 물류 허브로 육성하고, 특수선박 수주로 조선업의 새로운 활로를 찾자는 비전은 과거 정부의 적극적인 기조와 맥을 같이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변덕, 나아가 이재명 정부에서 달라진 분위기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결론적으로 북극항로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경제 영토를 열어줄 잠재력을 품고 있지만, 그 길은 수많은 지정학적, 경제적, 환경적, 기술적 암초로 가득하다. 섣불리 뛰어드는 '탐험가'가 되기보다는, 국제 사회와 공조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는 '책임 있는 설계자'의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정권을 초월한 '국가 북극 전략'을 수립한 후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급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자율운항 등 미래 선박 기술의 초격차 확보 △미국·북유럽 등 가치공유국과의 협력을 통한 외교적 다변화 △철저한 사전 검증과 데이터 축적이라는 원칙 위에서 신중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면서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딜레마를 풀어낸 후 현실에 입각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