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플랫폼, 즉 '게이트키퍼'의 시장 지배력과 확고한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하는 유럽연합(EU) 디지털 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이 글로벌 빅테크의 화두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빅테크 카르텔을 거침없이 흔들어 충만한 잠재력을 가진 라이징 스타들에게 길을 열어준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혁신의 횃불. 이른바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의 가능성'이다.
다만 그림자도 있다. 특히 EU의 DMA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를 주로 압박한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반미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후 대서양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통상전쟁까지 포함된 거대한 힘의 충돌 연장선에서 DMA를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미 '일가'를 이룬 빅테크를 무리하게 규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시장 전체가 성공에 대한 열망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사실일까? DMA와 같은 법안을 통해 디지털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혁신, 경쟁, 선택, 경제 성장을 끌어내는 '상호운용성'의 횃불을 치켜드는 순간, 사실은 그 이면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음습한 습기가 눅눅하게 묻어나고 있는 것일까?
서울대학교 AI연구원에서 'EU의 빅테크 규제의 경과와 미래'라는 주제로 서울대 경쟁법센터-법과경제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전문가와의 대화 행사가 열린 가운데, 이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알렉산더 드 스트릴 벨기에 나무르 대학교(University of Namur) 유럽법학 교수를 16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유럽규제센터(Centre on Regulation in Europe, CERRE)의 디지털 연구 프로그램 학술책임자이며 유럽대학원(College of Europe) 및 파리 정치대학 초빙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와 나이트파운데이션이 공동 설립한 나이트-조지타운 연구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설립한 유럽대학원 산하 디지털사회 연구소, 만하임 경쟁·혁신 연구센터 등 여러 학회 자문위원회에서 활동중이며 이전에는 뉴욕대학교 로스쿨, 피렌체 유럽대학원, 팡테옹 아사스(Panthéon-Assas ) 싱가포르 캠퍼스, 바르셀로나 경제대학원, 루뱅 대학교 등에서 초빙 교수직으로 재직한 바 있다.
벨기에 부총리실, EU 주재 벨기에 상임대표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서도 활동했으며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자문하는 온라인 플랫폼 경제 전문가 그룹의 의장직도 역임했다. 현재 유럽연합(EU) 및 국제기구에 디지털 규제에 관한 자문을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혁신과 선택(innovation and choice)"
DMA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게이트키퍼가 지배하는 디지털 시장을 더 공정하고 경쟁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개방형 디지털 생태계가 기업, 소비자, 사회 전반에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상호운용성을 지향한다. EU의 지침(Directive)이 아닌 규정(Regulation)으로 만들어져 EU 단일 시장 전역에 걸쳐 통일된 규칙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EU라는 정치공동체의 단호한 의지다.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DMA 제정 배경을 설명하며 1999년 개봉했던 영화 '매트릭스'의 예를 들었다. 실제로 그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하나의 단일한 생태계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이 묘사된다"면서 "DMA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 상황처럼 하나의 생태계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또 빠져나올 수도 없는 상태에 놓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DMA를 '삼켰다'는 뜻이다.
그의 말대로 영화의 주인공 네오는 매트릭스라는 거대하고 폐쇄적인 생태계에 갇혀있었으나 모피어스가 내어준 빨간 약(진실)과 파란 약(종속의 망각) 중 빨간 약을 선택, 이후 거대한 폐쇄 생태계를 탈출해 진실이라는 미지의 잠재력을 알아가게 된다. 그가 DMA를 두고 "혁신 친화적인 법"이라며 "기존 디지털 생태계를 개방함으로써, 미래의 혁신가들이 자신의 발명을 실질적으로 시장에 구현하고 확산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한 배경이다.
모피어스와 빨간 약이 DMA라면 미지의 잠재력은 '혁신과 선택(innovation and choice)'이다.
먼저 혁신.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DMA는 디지털 생태계를 개방해 내일의 혁신을 일으키고 오늘날의 기업들이 발명한 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유럽 기업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아프리카 출신이든 상관없이 그 어느 지역에 있든 소규모의 기업에게도 충분한 활로가 열리며 혁신의 잠재력을 체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DMA 등을 활용한 상호운용성을 통해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이 빨라지면 기업들 간의 협력도 촉진되면서 전체 디지털 경제 전반의 혁신과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선택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진다. 그는 "DMA가 상호운용성을 통해 거대 카르텔이 아닌 수많은 잠재력을 키워낼 수 있다면, 소비자들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선택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서 "DMA를 바탕으로 하는 상호운용성은 소비자들을 매트릭스의 덫에서 빠져나오게 만든다"고 단언했다.
소비자들을 영화 ‘매트릭스’처럼 하나의 세계에 갇혀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생태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선택지와 만날 수 있게 돕는다는 뜻이다. 유통 경로가 개방되면서 앱 마켓 등에서 보다 공정한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많은 혁신 기업들이 더 쉽게 시장에 진입하면, 소비자들 역시 더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이 논의는 '하드웨어' 상호운용성까지 넘나들고 있다. 서로 다른 시스템, 제품 또는 서비스가 원활하게 함께 작동하여 마찰을 줄이면서 시장 전반에서 보다 광범위한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를 넘어서 하드웨어 전반의 개방과 연결이다.

메타가 레이밴(Ray-Ban)과 협력해 공개한 스마트 안경 레이밴 메타 스마트 안경(오라이언)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 오라이언은 출시 초기 애플 아이폰과의 연동성 문제로 사용자들의 아쉬움을 산 바 있다. 아이폰과 블루투스로 연결되어 음악 감상이나 사진 전송 등 기본적인 기능은 지원했지만 음성 명령을 통한 전화 걸기나 메시지 전송 기능은 메타의 자체 앱(왓츠앱 등)에 의존하거나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메타와 애플의 생태계가 단절되어 벌어진 일이다.
다행히 지금은 아니다. 최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아이폰 사용자들도 기본 전화 앱으로 통화를 걸거나 기본 메시지 앱을 통해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메타의 오라이언과 애플의 사례는 DMA가 추구하는 상호운용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소비자들은 아이폰으로 메타의 오라이언, 혹은 애플의 비전프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소규모 기업들도 특정 생태계에 갇히지 않게 되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특정 기업이 하나의 생태계를 통제하고 있더라도 자사 웨어러블 기기를 제공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DMA가 그 생태계를 분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그 생태계 안에서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져야 하며, 자사 제품 뿐 아니라 타사 제품에도 차별 없이 동일한 조건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아이폰에서 iOS 업데이트할 때 소비자가 선호하는 브라우저를 택하면 원하는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으며 이는 구글 안드로이드도 마찬가지"라면서 "상호운용성을 통하면 소규모 기업들의 기회가 많아지며 '혁신'이 벌어지고,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은 선택의 '기회'가 풍부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떤 기기를 쓰든 소비자들이 더 많은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자신이 선호하는 브라우저를 선택하거나, 앞으로는 다른 앱마켓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도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 저해? 반미법? "천만에"
일각에서 상호운용성을 지향하는 DMA와 같은 법안은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빅테크 카르텔을 파괴하고 소규모 기업에게 기회를 주면 잠재력을 창출할 수 있지만, 이러한 규제가 오히려 빅테크로 성장할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강한 규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DMA가 시장의 혁신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완전한 오해"라면서 "최근 빅테크 혁신의 속도가 느려지는 상황에서 DMA가 오히려 시장의 새로운 혁신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빅테크가 업계의 최전선을 달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들은 커진 덩치만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그 파격의 혁신은 소규모 기업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유럽 내에서도 빅테크들이 많은 혁신을 이뤄냈고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최근 들어 기술 분야에서의 혁신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는 일부 게이트키퍼 기업들이 더 이상 혁신에 대한 유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 꼽힌다"면서 소기업들의 잠재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DMA를 통해 하려는 것은 ‘혁신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라 말했다.
빅테크들이 '발명의 구현'에 있어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나 '발명' 그 자체의 혁신은 소규모 기업들이 해내고 있다는 점에 착안, 상호운용성을 통해 카르텔의 경계를 부수고 풍부한 잠재력을 끌어내자는 주장이다.
또 다른 오해인 '반(反)미법' 논란에도 선을 그었다.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유럽의 DMA가 마치 미국 기업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사실이 아니다"면서 "상호운용성을 끌어내어 큰 성과를 낸 애플과 메타도 미국 기업이라는 것을 봐도 자명하다"고 단언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혁신을 이루었는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상호운용성의 핵심인 개방성은 과거에는 혁신을 선도했으나 지금은 다소 게을러진 기업들을 견제하는 개념"이라며 "나태해진 거인들을 견제하며 소기업을 통해 시장 전체에 혁신을 불어넣는 것은 그 옛날 산업혁명 시대부터 내려져 온 자연스러운 경제의 역사"라고 말했다.

전략적 선택 필요하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는 최근 백악관을 향해 DMA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는 한편, 상호운용성의 큰 그림을 빠르게 그려야 한다고 주장해 시선을 끈 바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DMA가 AI, 검색, 소비자 앱 분야에서 미국 스타트업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한편 빅테크 카르텔이 소규모 기업들을 배제하지 못하게 막아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이콤비네이터는 애플의 경우 경쟁사들이 생성적 AI 음성 비서를 시장에 출시한 후 몇 년이 지난 2027년까지 LLM 기반 시리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경쟁 압박의 부족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의 가능성을 가진 서드파티들이 애플에 연결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결국 '생태계의 멈춤'은 예정되어 있고, 그 연장선에서 지금이라도 유럽 DMA가 가진 '거인들만의 유리한 생존게임 파괴하기'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문제는 DMA가 지향하는 이 상호운용성을 '어떻게' 안착시키느냐다. 질문도 명징하고 답도 나왔으니, 이제 액션플랜을 고민할 순간이다.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꾸준함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그는 먼저 "상호운용성을 지향하는 DMA는 권력의 재분배로도 볼 수 있어 반독점 경쟁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반독점 당국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입하고, 그 문제가 해결되면 시장에서 물러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 꼬집었다. 이어 "지금 우리가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상호운용성 제공"이라며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에 해결하는 것이 아닌, 명확한 규칙을 세워 그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 기술기업, 중소 기술기업, 그리고 규제 당국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규제 생태계(regulatory ecosystem)를 구축해야 한다. 알렉산더 드 스트릴 교수는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고, 또 중요한 보안(Security) 문제도 함께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애플이나 안드로이드가 무조건 모든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공정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상호운용성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와 감독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혁신의 연속성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는 "DMA로 인해 기존 대기업이 규제를 당하거나, 혹은 소기업이 대기업이 되면 역시 규제 대상이 될 것이기에 일부에서는 '그렇다면 결국 기업들이 더 이상 혁신하지 않게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면서도 "이러한 우려는 실체가 없다"고 강하게 선을 그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DMA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혁신을 위해 막대한 수익을 올릴 것이고, 자신들의 기술과 서비스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확산시키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혁신은 규제와 공존할 수 있으며, 오히려 공정한 경쟁 환경 속에서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호운용성을 보장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level playing field)을 조성한다면 일반적으로 ‘혁신’과 ‘이용자 선택권 확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것은 이미 입증이 됐다"면서 "이 모든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우며 정교한 법과 제도적 구조가 필요하지만 꾸준히 추진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유럽의 경우 운영체제 중심의 상호운용성 확보와 검색엔진 및 마켓플레이스의 자사 서비스 우대 금지, 데이터 남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상호운용성의 가치를 창출해 나갔다"면서 "개방을 통해 혁신과 선택의 큰 흐름을 잡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