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정책과 일방적인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미국 내 반발 기류가 거세지고 있다. 관세 정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찬성을 크게 앞질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주말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미 전역에서 벌어졌다. 여기에 행정부 내 최측근 인사마저 관세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전직 대통령과 부통령까지 비판에 가세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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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반대 여론 급증…경제정책 우려 커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현지시간)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지난달 27일부터 6일간 유권자 1500명 대상)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54%로 찬성(42%)을 크게 웃돌았다.

지난 1월 조사(찬성 48%, 반대 46%)와 비교해 찬반 여론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응답자의 4분의 3은 수입 관세 부과로 인해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을 우려했으며,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도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커졌다. 경제 정책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52%로 찬성(44%)보다 많아졌다. 지난해 10월 대선 직전 조사(반대 40%, 찬성 50%)와 비교하면 이 역시 역전된 수치다.

다만,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전체 유권자 중 46%가 그의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해 1월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며 지난해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자의 93%는 여전히 그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민주당 여론조사 전문가 존 앤젤런은 이를 집권 초기의 '허니문 현상'으로 분석하며 유권자들이 어느 정도 유예기간을 주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도 재확인됐다. 미국 경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응답이 52%로 1월(37%)보다 크게 늘었지만, 동시에 41%는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 축소를 지지하는 응답자(42%) 중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추진 방식(예산 삭감 등)에는 37%가 반대했으며, 54%는 예산 삭감으로 인한 공무원 해고와 정부 서비스 축소를 우려했다. 불법 체류자 구금 및 추방에는 53%가 찬성했지만, 반드시 추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도 많았다.

행정부 고위 인사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JD 밴스 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50%(긍정 43%), 정부효율부 장관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에 대한 부정 평가는 53%에 달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해밀턴 칼리지 강연에서 "이렇게 공개 연설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정부 재편 시도, 이민자 및 반대 세력 탄압, 언론·법조계 위협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백악관의 권리 침해가 더 우려된다"며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대학을 위협하거나, 반대 정당을 대변하는 로펌을 압박하는 행위는 "미국인으로서 맺은 기본적인 약속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해리스 전 부통령도 별도 행사 영상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며 "명백히 위헌적인 위협에 굴복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남편이 일하는 로펌과 거액의 무료 법률 서비스 계약을 맺은 것을 겨냥한 듯 "법치와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다"며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은 전염되지만, 용기 또한 전염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핸즈오프 시위. 사진=유튜브 갈무리
핸즈오프 시위. 사진=유튜브 갈무리

미 전역 '핸즈오프' 시위
미국 전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도 열렸다. 5일(현지시간) '손을 떼라'(Hands Off)는 구호 아래 민권 단체, 노동조합, 성소수자 단체, 참전용사 단체 등 150여 개 단체가 참여해 1,200건 이상의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연방 공무원 감축 및 정부 조직 축소, 보건 예산 삭감, 고율 관세 정책, 러시아 유화 기조 등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정책들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 D.C.의 워싱턴기념탑 주변에 모인 시위대는 북소리에 맞춰 "트럼프와 머스크는 나가야 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고, "왕은 없다", "행정부가 법을 만들 순 없다", "좌파, 우파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두 달 반 만에 터져 나온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부효율부 장관 역할을 하는 일론 머스크 CEO는 5일 이탈리아 극우 정당 행사에 보낸 화상 연설에서 "미국과 유럽이 이상적으로는 무관세 체제로 나아가 실질적인 자유무역지대를 창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 세계 수입품에 10% 이상(EU산 2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머스크는 무역 불균형 해소라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관세라는 수단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책사' 피터 나바로 고문을 겨냥해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는 좋은 게 아니라 나쁜 것", "자아(ego)가 두뇌(brains)보다 크면 문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과 북미 간 노동 이동 자유 확대에도 찬성하며 대통령에게도 조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규모 이민 허용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