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뇌 연구소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프랑스의 헌팅턴병(HD∙신경 퇴행성 유전병) 환자가 1만8000여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병을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치료를 낙관하는 이들은 ‘헬라 세포’가 이런 난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일 HD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제 기관인 CHDI재단은 26일부터 열리는 관련 컨퍼런스에서 HD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헬라에 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된다고 소개했다.

미국 제약 회사인 비아트리스의 독일 지사 전경. 사진=셔터스톡
미국 제약 회사인 비아트리스의 독일 지사 전경. 사진=셔터스톡

노바티스, 헬라 세포로 항암제 개발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생물학 연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된 세포는 헬라다. 1951년 미국인 헨리에타 랙스에게서 몰래 떼어낸 암세포가 각국 실험실로 퍼져나가 생명공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분열하는 이 세포로 제약사들은 여러 항암제를 개발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가 만든 최초의 카티 항암제 킴리아가 대표적이다. 헬라는 백신 개발, 시험관 아기, 유전자 지도 등 여러 의학연구에 기여했다. 미국 솔크연구소에서 개발한 세계 최초 소아마비 백신도 헬라 덕분이다. 당시 백신 안전성 검증에는 원숭이 세포가 활용됐는데 가격이 비쌌다. 헬라는 싼 값에 수조 개 단위로 만들어져 소아마비의 치료에 공을 세웠다.

하지만 랙스의 사망 후에도 유족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가 사망한 후 존스홉킨스대 병원은 치료하고 남은 세포를 배양해 과학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했고 제약사들은 이를 대량 생산해 떼돈을 벌었다. 이를 몰랐던 유족은 의료보험이 없어 중병에도 치료를 못 받는 비참한 생활을 살아왔다.

한 연구원이 카티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한 연구원이 카티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임상 시험을 하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美 울트라제닉스도 소송 휘말려

미 의학 전문지 스탯에 따르면 랙스가 흑인이기 때문에 관련 업적과 수익에서 오랫동안 소외됐단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에선 매독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 흑인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간간이 있었다. 영국 유력 통신사인 로이터는 노바티스와 미국 제약사 비아트리스∙울트라제닉스가 유족의 허락 등을 받지 않고 신약을 개발해 지난해 소송에 휘말렸다고 보도했다.

3사와 달리 미국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HMI)는 대형 연구기관 중 처음으로 헬라 세포를 사용한 대가인 수십만 달러의 기부금을 헨리에타 랙스 재단에 기부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으로 과학계의 인종차별 역사 청산을 호소하는 분위기에서 이뤄진 보상이다.

현재는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신체 조직을 채취하거나 이를 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때 개인의 동의를 받게 한다. 건강 검진을 위한 자료 수집과 연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규제 강도는 나라마다 다르고 산업 발전을 위해 규제를 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현실론에 맞서 생명 윤리를 양보해선 안 된다는 원칙론도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더 건강한 삶의 권리를 누리는 만큼 공익을 위해 어느 선까지 신체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가는 예전부터 첨예한 논쟁거리”라며 “살아 있으면 105세일 랙스가 타의로 남긴 ‘불멸의 세포’가 생명과학 윤리문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