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 문턱에 들어섰다. 최근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전고체 배터리의 시범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목표 시기를 설정하고 개발과 생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물론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2030년까지 약 53조원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차지하기 위한 국내외 기업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고체가 ‘꿈의 배터리’라고 불리는 이유
배터리는 양극재와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충·방전이 가능한 배터리가 바로 리튬이온전지다. 현재의 리튬이온전지는 전해질을 타고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낸다.
액체 전해질은 이온 이동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가연성으로 인해 화재 위험이 높은 단점이 있다. 지난해 전기차 화재사건처럼 열폭주가 일어나면 불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은 사고에도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쉽게 말해 100% 고체로 이뤄진 전지로, 가연성 액체 전해질을 불연성 고체 전해질로 대체한 배터리다.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질로 바꾸면 충격에 대한 내구성이 향상되고 누액 발생 확률이 낮아져 화재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
또 단단한 고체 전해질이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를 견고하게 지지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분리막이 필요 없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 시중에 출시된 전기차 배터리는 완충 시 약 400~500㎞를 주행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분리막을 없애고 남은 공간에 리튬 메탈이나 고성능 실리콘과 같은 음극 활물질을 채워 에너지 밀도를 높이면 주행거리가 800~1000㎞로 두 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온 전도도(이동 속도)’의 한계다. 고체 전해질은 이온 이동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어 액체 전해질 수준의 이온 전도도를 구현하는 것이 기술적 난제로 꼽힌다.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 종류 따라 크게 고분자계·산화물계·황화물계로 나뉜다. 이 중 황화물계 전해질은 원료 확보가 상대적으로 용이해 비용이 저렴하고, 전고체전지 계열 중 높은 이온 전도도, 양산 적합성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산화물계는 전기화학적 안전성은 우수하지만 황화물계 대비 이온 전도도가 낮고, 고분자계는 기존의 액체 전해질 기술과 비슷해 대량 양산이 쉽지만 온도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美·中·日,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레이스 돌입
당장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업계는 이미 레이스를 준비하는 중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METI)은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산업과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해 22억 4000만 달러(약 3조3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배터리 공급 보증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현재 한·중·일 3국 가운데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국가별 특허 점유율은 일본(36%)이 가장 높고, 중국(27%), 한국(18%), 미국(11%) 순이다.
일본 완성차 기업 도요타는 ‘프라임어스 EV 에너지’를 인수하고, 오는 2028년 충전 시간 10분 이내, 항속거리 약 1200km의 성능을 목표로 하는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완성차 기업인 혼다는 지난해부터 자사 R&D 센터에서 전고체 배터리 시범 생산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는 산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퀀텀스케이프는 지난해 7월 독일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과 전고체 배터리 관련 계약을 맺었다. 올해부터는 20GWh 규모의 전고체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솔리드파워가 국내 배터리 기업인 SK온과 손잡고 황화물계 기반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 전고체 배터리 R&D에 총 60억위안(1조 127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산·학·연으로 구성된 ‘전고체 배터리 혁신 플랫폼(CASIP)’을 출범시켜 중국 배터리 산업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 기업 가운데 한 곳인 CATL은 지난해 11월 황화물계 기반의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발표했다. 오는 2027년부터는 전동 스쿠터 등에 탑재 가능한 소용량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시작으로 2030년 이후 2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돌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의 속도, SK의 혁신, LG의 전략”…전고체 배터리 시장의 미래는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고체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2750만달러(약 370억원)에서 2030년 400억달러(약 53조4600억원)로 커지고, 2027년부터 양산이 시작돼 2035년에는 전체 이차전지 시장의 10∼13%를 차지할 전망이다.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배터리 3사(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도 전고체 상용화 목표 시기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모습이다. 삼성SDI는 2027년, SK온은 2029년,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황화물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온은 전고체 배터리 연구를 통해 고분자-산화물 복합계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두 가지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배터리 3사 중 가장 빠른 상용화를 목표로 잡은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지난 2013년 소형 기기용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시작으로, 2020년 이후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로 적용 범위를 확장해왔다.
최근에는 경기 수원에 전고체 배터리 생산라인인 ‘S-라인’을 준공하며 상용화 준비를 가속화하고 있다. 삼성SDI는 이미 시제품 양산을 통해 일부 고객사에 공급해 성능을 테스트 중이라고 알려졌다.
특히 삼성SDI는 단위 부피당 이온 전도도를 가장 빠르게 높일 수 있는 황화물계 기술을 채택해 업계 최고 수준인 900Wh/L 에너지밀도를 구현하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2030년 에너지 밀도를 두 배 끌어올린 900Wh 이상의 황화물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연구 개발에 돌입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 양산과 더불어 전고체 배터리 기술 연구를 병행해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SK온은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보다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되지만, 국내 주요 대학·연구기관과 진행한 연구 결과가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연이어 게재됐고, 일부는 특허 출원까지 마쳤다.
SK온은 한국세라믹기술원과 함께 빛 에너지로 소재를 결합해 강도와 내구성을 높이는 광소결 기술을 활용해 고분자-산화물 복합계 전고체 배터리의 균일한 구조를 구현했다. 이를 기반으로 제작된 배터리는 수명이 길다는 것이 SK온의 설명이다.
또 서울대 연구팀과 원가 절감 효과가 큰 망간리치(LMRO) 양극재를 전고체 배터리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를 통해 충·방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소가 전해질에 손상을 주는 문제를 규명하고, 산소 발생을 억제하는 특수 코팅 기술을 적용해 배터리 수명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SK온은 오는 2029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대전 배터리 연구원에 배터리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 중이다. 지난 2021년부터는 미국 솔리드파워와 손잡고 공동으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