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규모 게임 제작사 유비소프트가 전례 없는 하락 곡선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파 크라이 시리즈, 레인보우 식스 시리즈 등 걸출한 명작을 만들며 걸어온 전성기도 옛 이야기다. 수천억원을 투자한 신작 게임들이 연이은 흥행 참패에 발목 잡히며 일각에서는 2025년 파산설이 제기되기까지 한다.

무엇이 게임 공룡을 나락으로 끌어내렸을까.

최근 5년간 유비소프트 주가 추이. 사진=인베스팅닷컴 캡처
최근 5년간 유비소프트 주가 추이. 사진=인베스팅닷컴 캡처

연이은 신작 흥행 참패

유비소프트의 주가 하락은 최근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1년 1월 주당 80달러를 호가하던 유비소프트 주가는 4년 뒤인 2025년 1월 6일 기준 주당 12.8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불과 4년 만에 80% 이상 빠진 것이다. 주요 신작의 흥행 부진이 단기적 요인이 아닌 고질병처럼 굳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정타는 2024년이다. 2024년 한 해에만 47%에 달하는 주가 하락을 경험했다. 유비소프트가 개발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한, 자칭 AAAA급 게임 ‘스컬 앤 본즈’가 기록적 실패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컬 앤 본즈를 플레이 한 유저들은 해적을 모티프 삼은 게임임에도 부실한 선상 전투 연출, 미흡한 콘텐츠 구현 등을 이유로 혹평했다.

결국 최초 70달러로 출시한 스컬 앤 본즈는 출시 후 단 3개월 만에 29.99달러로 할인하며 흥행 참패를 시인했다. 캐나다 게임매체 듀얼쇼커에 따르면, 스컬 앤 본즈 개발비용으로 최대 8억5000만달러(약 1조2455억원)가량 투입됐다. 일각에서는 마찬가지로 2024년 기록적 흥행 참패를 기록했던 소니 ‘콘코드’에 버금가는 흥행 참패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

스컬 앤 본즈뿐 아니라 ‘스타워즈 아웃로’의 실패 역시 치명타였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자랑하는 스타 워즈 IP를 차용한 AAA급 오픈 월드 게임으로 개발됐지만, 저열한 AI와 각종 버그, 부실한 디테일로 혹평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유비소프트는 지난해 9월 재무 업데이트 보고서를 통해 스타워즈 아웃로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고 시인했다. 이어 11월 21일 스팀 PC버전을 출시했지만, 동시접속자 수 3000명 안팎을 기록하며 대형 게임사의 AAA급 게임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새로움 없는 게임, PC 강요에 지친 게이머

유비소프트 신작 게임 흥행 참패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먼저 유저들이 더 이상 유비소프트식 게임 스타일에 새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유비소프트는 어쌔신 크리드를 통해 ‘유비식 오픈 월드’를 정립했으며, 한때 ‘고스트 오브 쓰시마’,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등 유명 오픈 월드 게임에서도 유비식 오픈 월드 시스템을 일부 차용할 정도로 나름의 새로움과 성과를 보였다.

문제는 이런 유비식 오픈 월드 시스템이 게임 시리즈 신작 들에서도 동일하게 반복 적용되며 유저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맵에 다양한 UI와 마커를 배치하며 여러 정보를 전달했던 시스템은 어느 순간부터는 유저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한정 짓는 요소로 작용한다. 넓은 맵과 단순 반복되는 퀘스트 등도 매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요소다.

흥행 참패를 겪은 스타워즈 아웃로 역시 유비식 오픈 월드를 답습했다 실패를 겪은 케이스다. 해외 게임 전문매체와 비평가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방식의 퀘스트’와 ‘단조로운 플레이’를 이유로 혹평했다.

정치적 올바름(PC)주의 남용도 게이머들의 관심을 떠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부터 유비소프트는 정치적 올바름을 지키고자 노력해 왔다. 대표적으로 ‘레인보우 식스 시즈’의 한국인 캐릭터 ‘비질(화철경)’은 탈북자 출신으로 탈북 과정에서 가족이 대부분 죽는 등 비극을 겪고 트라우마를 앓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처럼 유비소프트가 이따금 던지는 사회문제에 대한 화두는 준수한 게임 퀄리티와 함께 게임의 평가를 높이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해외 게임사를 중심으로 PC주의적 메시지 활용을 넘어 유저에게 강요하는 형태의 게임 출시가 많아졌고, 유비소프트 역시 이에 동참하며 반사적으로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반 PC주의가 대두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사진=유비소프트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 사진=유비소프트

특히 유비소프트가 킬러콘텐츠이자 부진 극복 카드로 준비 중인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는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흑인 사무라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논란에 휩쓸렸다. 주인공 ‘야스케’는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 휘하에서 활동한 실존 인물이다. 다만 동양 배경 스토리에 무리한 흑인 주인공을 등장시키며, 그 과정에서 각종 사료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유비소프트는 2024년 도쿄 게임쇼에 불참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일본 게임쇼에 불참한 것이다. 일본 게임 시장이 동아시아 게임 시장에서의 위상을 감안하면, 사실상 동아시아 흥행에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2조원 규모 부채 해결 어쩌나

일련의 논란과 출시작들의 연이은 흥행 참패 속에 유비소프트는 최악의 자금난에 직면했다. 가장 최근 기준 유비소프트 국제회계기준 순부채는 14억유로(약 2조1238억원) 수준이다. 2023년 대비 8억8000만유로(약 1조3349억원) 증가했다. 해외 게임 전문매체 테크4게임즈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2025년 유비소프트의 파산을 보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때 중국 텐센트가 유비소프트를 인수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며 구원투수로 부상하는 듯 했으나, 창업자 기예르모 가문과의 주주 의결권 존치·비상장화 여부를 두고 의견차가 발생하며 난항에 빠진 형국이다.

로이터 통신은 “기예르모 가문이 인수 후에도 유비소프트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며 “텐센트는 현재 인수 참여 여부를 확실히 하지 않았으며, 기예르모 가문과 현금 배당·이사회 의결권 등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텐센트는 기예르모 가문이 협상에 동의할 때까지 기다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텐센트가 보유한 유비소프트 지분은 10% 수준이다.

과거 세계 최대 비디오 게임 제작회사 ‘아타리’는 게이머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과거 성공작들을 답습하다 처절한 실패를 맞본 바 있다. 당시 아타리는 세계 게임 시장을 홀로 좌우하는 위치였으며, 붕괴 여파는 곧 게임 시장 황폐화로 이어지며 ‘아타리 쇼크’를 일으켰다.

2025년은 다르다. 이미 게임 시장에는 유비소프트를 대체할 유력 게임사와 킬러 IP가 즐비하다. 유비소프트 스스로가 혁신에 성공하지 않으면 자칫 게이머들의 추억 속 ‘한 때 잘 나갔던’ 게임사로 남게 될 위기다. 오는 2월 14일 발매 예정인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의 흥행 여부에 게이머들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