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사진=HMM
HMM 상트페테르부르크호. 사진=HMM

국제해사기구(IMO)의 주도로 세계 바다에 본격적인 친환경 규제가 시작됐다. IMO는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가 목표다.

선박은 한 번 건조하면 20~30년을 운항하기 때문에, 현재 발주되는 선박들부터 점점 친환경 솔루션을 도입하는 흐름이다.

대한민국 최대 국적선사 HMM도 규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IMO의 환경 규제를 만족하고, 다가오는 해운 경쟁 시대에 글로벌 선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선제적인 친환경선 투자와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HMM은 여느 때보다 친환경 선대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친환경 솔루션 도입 정도가 타 선사 대비 우수하며, 수년간 이어진 해운업계 호황으로 자금 사정도 가장 좋다. 지금이 적기라는 마음가짐으로 투자 중이다.

운용 선박에는 친환경 솔루션 도입, 신조선 발주는 대체 연료 추진선

이미 단기적 성과를 보인다. 국내 최초로 선박용 탄소 포집 시스템(OCCS)을 선박에 설치하고 실증 중이다. 선박 운항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₂)를 포집 후 액화 저장해 배출을 방지하는 온실가스 대응기술이다. 향후 IMO 등 국제기구로부터 탄소 감축 기술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 선제 도입에 나섰다.

동시에 HMM의 스크러버(탈황장치) 설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크러버는 배기가스 내 황산화물을 바닷물로 씻어내는 장치로, IMO 환경 규제의 대응조치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기준 세계 컨테이너선 중 스크러버가 설치된 선박의 비중은 선복량 기준 24%인 반면, HMM은 81%에 달한다. 이밖에도 보유 중인 초대형선박의 효율적인 연료 소모량을 바탕으로 저속운항, 탄소 저감 솔루션 시행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HMM은 지난 11월 21일 LNG를 연료로 하는 77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도입했다. ‘HMM 오션호’와 ‘HMM 스카이호’로 명명된 선박들은 국내 최초의 LNG 추진 컨테이너선이다. 그리스 선주사인 나비오스가 국내 조선소인 HJ중공업에 발주한 것을 HMM이 최대 14년간 용선(대여)해 운항한다. 기존 선박보다 탄소배출이 덜한 LNG추진선 용선을 통해 단기적 친환경 수요를 충족하겠다는 포석이다.

사선(소유)에서도 친환경 선대를 확충 중이다. 주 선종은 메탄올 추진선이다. 메탄올 연료는 연료 자체에 탄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바이오원료에서 추출하거나 청정수소와 합성하는 등의 생산과정을 거치면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높고 상온에서 액체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엔진 내 연료 공급도 용이하다. LNG 추진 선박이 운행할 때 메탄이 불완전 연소돼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메탄슬립’ 현상 때문에실질 온실가스 저감효과는 23%에 그치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상용화된 친환경선 중 가장 탄소중립에 가까운 선박이다.

HMM은 이러한 메탄올 추진선을 직접 발주해 운영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2월 9000TEU급 중형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했는데, 모두 메탄올 추진선이다. 당시 메탄올 추진선이 일반 선종 대비 15%가량 비쌌음에도 과감히 투자했다. 해당 선박들은 2025년 중 인도 예정이다.

이런 차등적 투자 흐름은 아직 선박 100% 탈탄소 기술이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완전 무탄소가 가능한 암모니아 추진선은 2026년경 상용화 예정이다. 수소 추진선은 아직 연구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선박은 한 번 도입하면 20년 이상을 운항하는 관계로 하나의 친환경 솔루션을 도입하면 쉽사리 바꾸기도 어렵다.

결국 운항 가능 기한이 남은 기존 선박에는 OCCS와 스크러버 같은 탄소저감 솔루션을 도입해 최대한 탄소배출을 줄이고, 신조선이지만 탄소 저감이 완벽하지 않은 LNG 추진선은 용선을 통해 향후 교체 리스크를 적게 부담하며, 그보다 탄소 저감능력이 더 뛰어난 메탄올선은 사선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현실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친환경성을 확보하려고 한 노력으로 풀이될 수 있다.

친환경 투자 전략 확립한 HMM, 새 주인만 남았다 

HMM의 친환경 투자는 중장기 로드맵에서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9월 신규 해운동맹 ‘프리미어 얼라이언스’ 조직을 선언하며 동시에 2030 중장기 전략을 밝힌 바 있는데,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14조4000억원이 친환경 관련 사업 투자로, 전체 투자비의 60%를 상회했다.

눈에 띄는 점은 넷제로 시한을 IMO 데드라인인 2050년보다 5년 앞당긴 2045년으로 설정한 점이다. 이는 새롭게 ‘제미나이 협력’을 구축하며 해운동맹 강자로 떠오른 덴마크 머스크와 독일 하팍로이드가 각각 2040년과 2045년 넷제로 달성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경쟁 선사와 발맞춘 빠른 탄소중립으로 시장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심산이다.

동시에 선대도 확충한다. 2030년까지 컨테이너에 11조원을 투입해 130척, 155만TEU를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공급과잉에 대비해 선대를 확충 중인 글로벌 선사들과 동등하게 협력할 수 있을 ‘체급’을 갖추기 위함이다. 확충 대상 선대는 모두 친환경 연료 추진선이나, 친환경 솔루션을 탑재한 선박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투자를 위한 포석은 이미 깔렸다. HMM은 2024년 3분기 영업이익 1조461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1828% 늘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5849억원의 2.5배에 달하는 수익을 한 개 분기 만에 벌어들인 것이다. 코로나 19 특수 이후 쭉 흑자를 기록하며 쌓인 단기금융자산과 현금성자산도 14조원이 넘는다.

관건은 매각 변수다. 앞서 HMM의 매각은 한 차례 실패했다. 2025년 4월에는 1억4400만주의 영구채가 추가 주식전환되며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지분율도 71.7%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앞선 매각 당시보다 매각가가 더 비싸질 수 있다. HMM의 인수 비용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으며, 친환경 투자 계획도 그대로 유지 가능한 인수자가 나타나야 할 시기다.

지난 매각 당시 인수 후보인 하림과 동원그룹 모두 HMM보다 작은 체급으로 승자의 저주 우려를 일으켰다. 대기업 인수 후보군으로 꼽히던 현대차그룹과 포스코, 한화그룹 등은 모두 인수에 소극적이었다. 다가오는 2차 매각에서는 HMM의 새 주인이 결정되고 투자가 온전히 이행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