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4일 개봉한 영화 <진주의 진주>.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다.
초반부는 <미드나잇 인 파리> 같다. 진주시를 구경하기에 예쁜 공간으로 담아서가 아니다. 사람이 함께해서 좋은 공간으로 담았다. 네이버 지도를 열고 영화 속 동선을 따라가면 알게 된다. 감독은 아무 장소나 찍은 게 아니다. 진주시를 알면 동선이 곧 복선이고 감정이다.
중반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다. 주인공은 삼각지 다방을 찾아 미로처럼 헤맨다. 그러다 어느 새 주인공은 그 이상한 곳에 적응한다. 가장 의아했던 건 주인공이 왜 삼각지 다방을 지키려고 하는가? 그가 삼각지 다방 안에 들어가 있었던 건 길어야 십여분이 전부다. 앨리스에게 이상한 나라가 그러했듯 삼각지 다방은 주인공에게 그러한 곳이다.
후반부는 <시네마 천국> 같다. 삼각지 다방을 지키려고 하는 이도 영화인이고, 바꾸려는 이도 영화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삼각지 다방’은 시네마 세대의 ‘영화 극장’ 혹은 멀티플렉스 세대의 ‘영화’처럼 보인다.
또, 가끔 어떤 영화는 배우에 관한 애정이 보일 때가 있는데 이 영화가 그렇다. 몇 개의 씬은 완전히 배우를 위한 씬이다. 보나마나 시나리오에는 그 씬들은 간단한 지문이었거나 아예 없었을 씬이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근본적인 게 궁금해진다. 왜 진주여야 했을까? 자신이 지키고 싶은 낭만은 무엇일까? 그 낭만을 지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게 궁금해진다.
그래서 ER 이코노믹리뷰 문화부가 김록경 감독에게 물었다. 낭만이란 무엇입니까?
이름에 관하여
Q. 록경이라는 이름은 누가 어떤 뜻으로 지어주셨나요?
집안 어르신께서 지어주셨어요. 뜻은 푸를 ‘록’에 별 ‘경’ 자입니다. 어떤 의미로 지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뜻의 의미처럼 푸르게 빛을 내며 살아가라는 거 아니셨을까요?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저는 제 이름이 아주 좋아요.
Q. 왜 주인공 이름이 하필이면 진주인가요?
진주라는 이름은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입니다.
도시 진주에서 촬영하고자 먼저 생각을 했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주(Pearl) 같은 공간의 이야기를 해보려 했는데 도시 진주에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이름을 진주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 씨의 성을 넣은 건 서울에서 진주로 가면 서진주 IC로 들어갑니다. 진주를 자주 찾거나 진주에 계신 분들은 ‘서진주’가 아주 익숙한 단어(이름) 일거에요.
Q. 왜 지역이 하필이면 진주인가요?
처음 진주역을 찾았을 때 시나리오를 떠올렸고 당시 제가 진주지역민들과 영화모임을 만들고 상영회를 가지면서 진주를 자주 오갔어요.
어느 지역에 가도 있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낙후된 건물과 새롭게 만들어지는 건물들이 눈에 자주 들어왔어요. 그리고 당시 지역을 하나의 배경으로 소비하는 것 말고 진짜 로컬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낭만에 관하여

Q. (포스터 카피 그대로) 당신에게도 지키고 싶은 낭만이 있나요? 무엇인가요?
기억입니다. 아버지와 기억, 형과 기억, 아주 작지만 어머니와 기억,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억, 그리고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간 사람들과 여러 장소들.
이런 지난 기억들이 제게는 지키고 싶은 낭만이죠. 기억을 지키고 싶다는 게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은 망각이란 걸 하잖아요. 망각 속에서도 꼭 지키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난 기억이 제게는 낭만이죠.
Q. 그 낭만, 지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만으로도 슬프네요. 지킬 수 있는 마법 같은 기계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렵겠죠.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공간이라고 한정 짓는다면 저는 다시 글을 적고 영상으로 남기는 일을 할 것 같아요. 그렇게라도 남길 수 있으면 제 낭만의 기억은 더 오래가겠죠.
아니면 영화 속 진주와 예술인들처럼 여러 곳을 다닐 수도 있고... 그런데 참으로 마음 아프고 끔찍한 질문이네요. 영화 속 ‘진주’ 대사처럼 “지킬 수 있을 때까지 같이 지켜보고 싶어요.”
Q. 그런데 낭만이란 게 무엇인가요?
낭만은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어요. 사람의 모습과 행위, 사물, 공간 풍경에서도 느낄 수 있죠.
낭만이라는 단어 안에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과거, 시간, 아늑함, 편안함, 슬픔, 아픔, 그리움, 때론 기쁨과 즐거움도 있고 이 모든 게 낭만이라 생각해요. 생각해 보면 낭만은 늘 우리 곁에 있어요.
장면에 관하여
Q. 시나리오 작업할 때 울컥했던 딱 한 씬은?
아무래도 영화 후반부 진주가 삼각지 다방 오사장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도 울컥했었어요.
본래 속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진주는 정말 극에 달해 어렵게 말을 한 거죠. 그만큼 그 순간 진주는 절실했고.
하지만 극중 진주는 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글쓴이는 울컥하지만 진주는 울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현 배우에게 촬영 당일까지도 울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실제 영화에서 진주가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 관객분들이 꼭 극장에서 봐주시면 좋겠어요.
Q. 편집하면서 꼭 지키고 싶었던 한 씬은?
촬영한 모든 씬은 다 사용했어요. 모든 씬이 다 중요하죠. 이건 모든 감독이 저와 같은 마음일거라 생각해요.
전작 <잔칫날>에서 편집을 하며 삭제한 씬이 몇 개 있었는데 촬영 전에 왜 이런 리듬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제 스스로를 꾸짖었었죠. 그게 도움이 돼서 촬영 전부터 리듬에 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부족한 예산과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제 스스로가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소중한 장면 장면 모두를 지킨 것 같아요.
배우에 관하여

Q. 이지현 배우가 꼭 영화계에 계속 남아야 하는 이유는?
이지현 배우를 처음 본 게 9년 전인 것 같아요. 이후에 <연기의 힘>이라는 단편을 함께 했는데 그 작품 안에서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 속 정유미 배우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 <잔칫날>을 함께 했고, 다음 장편 영화를 할 땐 꼭 주인공으로 함께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진주의 진주> 이야기를 떠올린 순간부터 지현 배우를 생각했고 지현 배우를 진주라고 생각하며 시나리오 글을 적었어요.
흔히들 날것이라고 하죠. 지현 배우는 그 날것의 느낌과 상업적 느낌이 함께 공존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눈동자가 매력적이고.
또, 학습 능력과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가 매우 좋아요.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 속 진주를 기억하겠지만 저는 매번 제게 질문을 던지고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던 배우 이지현의 모습을 함께 기억합니다.
지현 배우는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흙 속의 ‘진주’같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긴 호흡의 작품을 좀 더 해나간다면 분명 더 빛나는 영화계의 진주 같은 배우가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정도면 영화계에 남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겠죠.
Q. 다른 배우들에 대한 코멘트는?
음악가 도경역의 김진모 배우와 훈이 선배 역의 허웅 배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김진모 배우는 과거에 저의 습작부터 늘 함께해 준 배우예요. 감독의 생각을 최대한 이해하고 감독이 원하는 인물에 접근하려 항상 노력해요. 그 노력의 결과를 촬영장에서 보여주고 무엇보다 자신의 개인적 욕심이 아닌 작품 안의 인물과 이야기를 먼저 생각해요.
그리고 훈이 선배 역의 허웅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는 잠깐 등장하지만 존재감이 커요. 영화의 시작을 지현 배우와 함께 편하게 열어줬다고 생각해요.
전작 <잔칫날>과 단편을 함께 했는데 자신을 이해시켜 달라는 시그널을 늘 제게 보내는 것 같아요. 묵직함과 함께 편안하게 연기하는 허웅 배우의 연기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요. 진모 배우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예술인 4인방의 막내 길도영 배우, 리더 임호준 배우, 미술가 시아 역의 이정은 배우도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고 싶은 배우들이에요.
약속의 2031년
Q. 감독님은 2031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 영화를 본 관객은 어떻게 기억할까요?
2031년에 저는 영화 또는 드라마 현장에서 컷! 오케이! 를 외치고 있거나 창밖이 훤히 보이는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적고 있을 겁니다.
저는 1년 365일 중 300일은 글을 적는 것 같아요. 제법 많은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죠. 아마 이 작품들이 세상으로 하나 둘 나와 바쁜 촬영장에 있거나 또 다른 소재로 글을 적고 있을 게 분명해요.
그리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화 시장과 드라마 시장은 분명 나아져 있을 거고 다양한 작품들이 극장에서 많은 관객들을 만나고 있겠죠.
이때 극장에서 만난 한 관객이 제게 2024년에 개봉한 <진주의 진주>를 통해 공간의 대해 소중함 알았다며 그 기억으로 자신이 현재 오래된 공간을 지키고 있다고 말해 주면 아주 낭만적일 거 같아요.
<진주의 진주>는 2031년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오래된 공간과 함께 소중한 영화였다고 기억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