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에서 안드리 니리나 라주엘리나 마다가스카르 대통령(가운데)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4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에서 안드리 니리나 라주엘리나 마다가스카르 대통령(가운데)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대한민국 산업 발전 역사에서 공급망 위기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원유부터 가스, 구리, 각종 희귀금속까지 상당부분의 자원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용 광물의 수입 의존도는 95%에 달한다.

글로벌 선진국 산업 지도가 IT와 첨단제조업 위주로 재편되는 오늘날에도 공급망 불안정은 잠재적 국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핵심광물을 대대적으로 비축하는 한편,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공급망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이유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두 곳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 구도가 심해지는 신 냉전 시대에, 해당 지역들은 국제적 갈등과 권력의 중심에서 한 발 멀리 떨어진 외교적 ‘로우 리스크’ 지역이다. 이와 동시에 자원 매장량은 수위권을 다투는 ‘하이 리턴’ 지역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원조 늘려 공급망 강화

윤석열대통령은 지난 6월 4일부터 5일까지 양일간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아프리카 48개국 정상 및 국가 대표와 핵심 광물 공급망 보장을 논의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세계 백금 매장량 89%, 크롬 80%, 망간 61%, 코발트 52%, 원유 10%, 천연가스 8%가 묻혀있는 자원의 보고다. 특히 삼원계(NCM,NCA) 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료인 코발트는 세계 매장량의 절반(48%) 가량이 콩고민주공화국에 묻혀있다.

대통령실은 “아프리카는 핵심 광물의 필수 보급지로 니켈, 크롬, 코발트, 리튬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원자재를 비롯한 세계 광물 자원의 30%를 보유하고 있다”며 “2030년까지 100억달러(약 13조7800억원) 수준으로 ODA(공적개발원조)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약 140억달러(약 19조3000억원) 규모의 수출금융도 관련 기업들에 제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와의 핵심광물 협력에 주력했다. 아프리카 최초로 탄자니아와 경제동반자협력(EPA) 협상 개시를 선언하고 핵심광물 협력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동시에 마다가스카르와도 핵심광물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탄자니아는 배터리 음극재 핵심 소재인 흑연 매장량 세계 6위를 자랑한다. 흑연은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97%에 달하는 소재로,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적이다.

‘핵심 파트너’ 중앙아 3국

정부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직접 방문해 공급망 강화를 논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투르크메니스탄을 시작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중앙아시아 3국을 5박 7일 일정으로 국빈 방문했다.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핵심광물 공급에 있어서 카자흐스탄과의 협력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경제 규모가 가장 큰 곳이다. 우라늄 매장량 세계 1위(43%), 크롬 매장량 2위(15%), 티타늄 3위(15%)를 자랑하는 대표적 자원 부국이기도 하다. 원유 매장량도 세계 12위로,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이기도 하다. 핵심광물과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 확립을 위해 놓칠 수 없는 파트너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일부터 13일까지 카자흐스탄에 머무르며 3건의 핵심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중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통해 리튬을 포함한 주요 광물의 전 주기에 걸친 파트너십을 마련했다. 또한 한국 기업들에게 우선적인 광물 개발과 생산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윤 대통령은 “MOU를 계기로 핵심 광물의 공동 탐사부터 최종 사용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적 협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스타나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함께 자리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아스타나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함께 자리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밖에도 대한민국의 중앙아시아 내 최대 수출국 우즈베키스탄과는 기존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했다. 교통인프라와 에너지 등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들의 수주를 지원했다. 천연가스 매장량 4위인 투르크메니스탄과도 에너지플랜트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의 진출을 논의했다.

국제적 변수에 흔들림 없어야

정부의 ‘공급망 활로 찾기’에도 변수는 있다. 현재 협력 논의 대상 지역과 중국·러시아 등 ‘반미 진영’의 수장격 국가들의 협력관계가 두텁다는 점이다.

한국이 100억달러의 ODA와 140억달러 수출금융 지원을 약속했던 아프리카는 이미 중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이 오래 전부터 개발에 뛰어든 지역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빈국이 다수일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며, 민족 갈등과 내전 등 사회 정치적 문제도 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중국이 아프리카에 관심이 크다. 미국기업연구소(AEI)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에만 아프리카에 110억달러를 투자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총 투자액은 740억달러(약 101조원)에 달한다. 이에 맞서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이 나서 지난 2022년 아프리카에 55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는 만큼, 한국 역시 아프리카 내 미국과 중국 경쟁구도로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중앙아시아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아프리카 대비 훨씬 안정적이지만, 내륙국이란 위치적 특성이 교역을 어렵게 만든다. 육로가 막혀 해상무역에 의존하는 대한민국과는 정 반대다. 해당 지역과의 교역을 위해선 중국횡단철도(TCR)이나 시베리아횡단철도 등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하는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다만 여러 변수와 난관이 있음에도 업계에서는 “그래도 공급망 다변화 시도는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에너지 자원 전문가는 “대한민국은 첨단제조업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가 필요하고,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는 시대의 대전환기를 타고 경제 성장을 꾀하고 있다”며 “지금이 서로의 요구사항을 적절히 절충해 미·중과는 차별화되는 별도의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미국 주도로 결성된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비한 공급망 협력체인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일원인 한편,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일원으로써 동아시아 3국·오세아니아·아세안 국가들과의 광범위한 FTA 관계를 맺고 있다. 이처럼 국제 질서에 휘둘리지 않고 실익 하나만을 생각하는 공급망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