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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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자국에서 반도체 생산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신흥국으로 불리는 인도와 베트남의 전격전이 시선을 끌고 있다. 대기업과 외국기업을 포함해 모든 기업에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부족한 점이 많아 우려가 크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국가는 반도체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발생했던 반도체 공급망 차질이 '트리거'였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자 '산업의 쌀'인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졌고, 당시 각 국은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에 두려 관련 규제를 마련하거나 막대한 보조금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리오프닝 이후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 가운데 챗GPT의 등장으로 AI(인공지능)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선단 공정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가뜩이나 각국 반도체 '각자도생' 흐름이 AI 시대를 맞이해 반도체 품귀 현상까지 겹쳐지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결국 일부 GPU(그래픽처리장치)와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반도체 부족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됐다. 챗GPT의 아버지인 샘 올트먼도 9000조원에 달하는 펀딩을 추진하며 자체 반도체 네트워크 구축까지 타진하는 중이다.

인도 “극단적인 인센티브”... 반도체에 올인

'반도체 생산 쟁탈전'이 치열한 가운데 미국, 유럽, 일본 정부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반도체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에 더욱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특히 인도와 베트남 등 신흥국 또한 중앙정부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반도체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지난주 인도는 1조2500억루피(약 20조원)을 투자한 반도체 공장 3곳의 기공식을 개최했다. 인도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구자라트주에 웨이퍼 제조공장과 반도체 후공정(OSAT) 공장이, 아삼주에는 OSAT 공장이 들어선다. 

구자라트주 돌레라 특별투자지역(DSIR)에는 인도 타타그룹 계열사인 타타일렉트로닉스가 웨이퍼 제조공장을 설립한다. 이 공장은 인도 최초의 12인치 웨이퍼를 제조하는 반도체 생산공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자라트주 사난드에는 인도 기업 CG파워가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를 담당하는 OSAT 공장을 짓는다. 아삼주 모리가온에는 타타일렉트로닉스가 OSAT 공장을 건설한다.

지난해 인도 구자라트주 간디나가르에서 열린 ‘세미콘(반도체) 인디아’ 행사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레드카펫을 펼쳐뒀다. 선점하면 큰 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장담하며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유치 유세를 펼쳤다. 

인도는 여세를 몰아 정부의 보조금과 우수한 IT 인력을 앞세워 세계 각국의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고 있다. 

인도 정부는 2022년과 2023년 두 번에 걸쳐 약 25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책을 발표했다. 작년 모디 정부는 ‘반도체 생산 공장 유치’를 목표로 100억 달러(약 13조원)의 보조금 지급 계획을 내놨다. 이와 별도로 해외 반도체 기업이 인도에 공장을 설립하면 인도 중앙정부가 시설 건립 비용의 50%를, 주 정부가 20%를 지급한다. 최대 70%를 인도가 지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 기술 전문 매체인 이이뉴스 유럽(eeNews Europe)은 “극단적 수준의 인센티브”라고 평가했다. 

영어를 구사하는 고급 IT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점도 인도의 장점 중 하나다. 인도에는 세계적 수준의 대학인 인도공과대학(IIT)이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의 카티르 탄다바리안 파트너는 “현재 인도는 칩 설계 분야에 전 세계 인재의 20%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인도인이 5만명 가량 된다”고 밝혔다. 

인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우수한 인력에 힘입어 마이크론, AMD,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 마이크로칩, 램리서치, 폭스콘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인도로 몰려들고 있다. 

대내외로 총력 지원하는 베트남

반도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신흥국은 인도뿐만이 아니다. 베트남 또한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 움직이고 있다.

베트남은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진입장벽인 낮은 후공정에 집중하고 있으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유치를 통해 전공정으로 산업을 확대하고자 한다. 

지난달 니케이아시아(Nikkei Asia)는 후인 탄 닷(Huynh Thanh Dat) 베트남 과학기술부 장관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베트남이 보조금을 비롯한 특전을 약속하며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베트남 정부는 ‘대나무 외교’(‘더 많은 친구를 보유하고, 적의 숫자는 더 줄여야 한다’는 뜻의 베트남 외교 전략)를 통해 해외 기업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지난해 말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를 만났으며, 이 자리 이후 젠슨 황 CEO는 “나는 베트남 총리에게 베트남을 엔비디아의 제2의 공향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발언을 했다. 베트남 정부의 대나무 외교가 실리적인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 대기업과 외국 기업 대상 지원 부족

한국의 경우에 올해 1월 민간자금 622조원을 들여 경기도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반도체 쟁탈전이 극한에 달한 상태에서 나름의 액션플랜이라는 평가다. 다만 그 주된 내용이 용수·전력 등 인프라 시설 지원,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보조금 지원책이 포함돼 있으나, 앞서 언급한 인도와 베트남에 비해 규모와 대상 범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의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방안 발표’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중소·중견기업에 1조3000억원, 외국기업에 2000억원 정도에 투자유치 인센티브(현금지원)가 지급될 전망이다. 국가 규모를 고려해도 절대적인 수치에서 인도와 비교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은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인도, 미국, 일본 등 전세계 국가들은 타타그룹과 인텔과 같은 대기업에게 또한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재, 대기업 지원을 이유로 한국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정치권에서도 보조금 논의가 물꼬를 트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만 가능한 기존 지원 체계를 개편해 보조금 지급 근거를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기지 쟁탈전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더욱 신속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