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글로벌 조선·해운업계의 최대 이슈는 ‘친환경’이다. 국제해사기구(IMO)와 유럽연합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넷-제로(기후중립)에 합의하는 등 친환경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계도 친환경 연료선 도입 등 탄소 저감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탈탄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탄소 저감에 신경 쓰는 만큼, 선박 운항으로 인해 파괴되는 해양 생태계 보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9월 20일 UN에서는 글로벌 해양조약이 비준되며 선박의 항로와 운항 여건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됐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10월 19일 유엔사무총장 해양특사와 면담하며 해양생태계 보전 및 복원 정책과 계획을 설명한 바 있다. 이처럼 각계에서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조선·해운계도 앞다퉈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기술 개발·확보에 나서고 있다.

‘방오도료’, 독성을 잡아라
해양 생태계 파괴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방오도료’에 포함된 유독성물질이다. 통상 선박의 연수부(물에 닿는 부분)에는 운항 시간이 지날수록 따개비나 홍합 등 온갖 해양생물이 부착한다. 부착량이 많아질수록, 선박 속도가 감소하고 연료 소비량이 늘어나 탄소 배출도 증가한다. 선박 무게도 무거워져 사고 위험도 커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선박 하부에 도포하는 도료가 방오도료다. 하지만 방오도료에는 해양생물에 독성을 띠는 유기주석화합물, 수은, 구리화합물 등이 함유돼 있다. 해양생물의 임포섹스(Imposex, 환경호르몬에 의한 암수 혼합)를 일으켜 생태계를 교란하는 등 부작용이 따른다.
업계는 독성 문제를 해결한 방오도료 개발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특수화학기업 랑세스는 ‘씨나인 211N’과 ‘씨나인 울트라’를 출시했다. 중금속이 없고 독성학적으로 생물 축적을 최소화는 화합물로 이뤄져 있으며, 권장 사용 수준의 농도에 맞춰 사람과 해양 환경에 모두 무해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씨나인 211N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수여하는 안전한 화학제품 설계 부문에서 최초로 녹색화학챌린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내 유력 화학도료 제작업체인 KCC는 국내 최초 양극성 방오도료를 출시하고, 저용제 방오도료도 개발했다. 양극성 방오도료 ‘메타크루즈 NS’는 국내 최초로 방오도료에 물과 잘 융합되는 친수성과 물과 잘 섞어지 않는 소수성을 동시에 구현해 다양한 극성의 해양생물 포자들이 원천적으로 선박 표면에 부착하지 못하도록 개발했다. KCC 관계자는 “조선·해운업계가 친환경 체질개선에 나선 만큼, KCC의 방오도료도 친환경성에 중점을 두고 수요에 맞춰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도료와 신기술을 융합해 미생물을 해결하려는 시도도 있다. 미세전류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업체 ‘프록시헬스케어’는 선박 표면 관리 솔루션 ‘트로마츠 오션’을 선보였다. 트로마츠는 미세전류로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선박표면에 전도성 재료를 도포하고 트로마츠 기술로 표면의 미생물막 생성을 억제하면, 미생물막을 먹이 삼는 따개비, 굴 등의 해양생물의 부착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프록시헬스케어는 트로마츠 오션 기술로 지난 7월 해양수산부 ‘예비 오션스타’ 기업으로 선정됐다.

해양 포유류 울리는 ‘바닷속 소음 공해’
방오 도료뿐 아니라 수중 방사소음도 생태계 파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선박의 수중 방사소음은 선박이 항해할 때 추진기 선체, 기계류에 의해 발생한다. 수중 이동 감각이나 개체 간 소통, 먹이 활동 등을 위해 소리를 이용하는 고래류를 비롯한 해상 포유류의 번식률 저하, 해안가 좌초, 선박 충돌 등의 문제에 영향을 끼친다.
국내 유력 조선사인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방사소음 해결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한화오션은 시흥R&D캠퍼스에 세계 최대 상업용 공동(空洞)수조를 설치하고 공동 현상 저감 연구를 한다. 공동현상은 선박 프로펠러가 빠르게 회전할 때 압력이 급변하면서 물이 기체로 바뀌는 현상이다. 거품과 함께 강한 소음, 진동이 발생해 생태계 교란과 선박 부식을 초래한다.
삼성중공업은 소나로 탐지한 바닷속 음파 신호를 통해 선박 수중 방사소음을 정밀 분석하는 기술을 확보했다고 지난 7월 밝혔다.
소나 신호 분석기법은 선박이 방출하는 소리를 수신해 소음의 세기, 방향, 거리 등을 측정하는 기술이다. 군용으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삼성중공업이 상선 분야 최초로 이 기법을 적용해 17만4000㎥급 LNG운반선의 소음 원인을 정밀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동연 삼성중공업 조선해양연구소장은 “삼성중공업은 수중 방사소음 R&D 역량을 기반으로 해양 환경영향을 최소화하고 국제사회의 환경규제 움직임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혁신기술 개발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 생물 서식지 뒤섞는 ‘선박 평형수’
글로벌 해사계는 ‘선박평형수’ 규제 강화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선박평형수는 선박 운항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아래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이다.
선박이 다른 국가의 항만에 입항 시 싣고 있었던 바닷물을 배출하는데, 바닷물 속에 유해성 플랑크톤이나 박테리아 등이 포함돼 있어 주변 해역의 토착 생태계를 교란하는 등 해양오염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최근 해양 생태계 파괴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해파리의 서식지 밖 이상 증식 현상에 선박평형수가 원인으로 제시됐다. 수천톤 이상의 바닷물을 빨아들일 때 유입된 해파리들이 배를 타고 원양을 건너 타국 해역으로 방류되며 문제를 일으킨다.
IMO를 비롯한 국제 해운계는 이런 선박평형수를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선박평형수관리협약(BWM 협약)을 맺었다. 협약은 2017년 9월 8일 발효돼 2024년 9월 8일까지 유예기간을 뒀다. BWM 협약의 적용 대상인 400톤 이상 국제항해 선박은 2024년 9월 8일까지 승인된 선박평형수 처리설비(BWMS)를 선내 장착해야 한다.
다만 한국은 유예기간 동안 모든 신조선에 선박평형수 처리설비를 의무 장착해 건조함과 동시에, 기존에 운영하던 선박도 대부분 처리설비 장착을 마쳐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해운협회 관계자는 “2024년 9월 8일 이후부터는 선박평형수 처리설비가 장착되지 않은 400톤급 이상 원양선은 운항 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업계 전반이 우선적으로 대비를 끝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탄소 저감뿐 아니라 국제기구부터 민간 기업까지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양 생태계 보호 기술은 개발 비용과 개발 인력 부족 문제 등 여러 면에서 투자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속 가능한 해양 경제를 조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