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혹한기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내년 글로벌 거시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당장의 유동성 악화 현상은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부의 충격이 진정된다고 해도 내부의 기초체력이 탄탄해지지 못하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와 민간의 '2인 3각'이 필요하다. 정부는 스타트업 엑시트는 물론 인수합병까지 염두에 둔 광범위한 규제 개혁에 착수하는 한편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투자 지원이 절실하다. 업계도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속도를 내면서 이제는 효율화 전략에도 방점을 찍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업계에서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의 정부 역할을 두고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 업계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스타트업 혹한기라는 엄혹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어떤 방향성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판 전체가 흔들리기도 한다.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
다만 무조건적인 규제 개혁은 오히려 '독'이다. 일각에서는 규제를 무제한에 가깝게 풀어주는 중국의 사례를 들어 정부의 국내 스타트업 규제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는 시장을 키운 후 정권의 입맛에 맞게 강제로 업계를 재조합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중국 특유의 상황일 뿐이다. 한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판단해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리를 쫒을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선거 표밭을 의식해 기형적인 모빌리티 시장을 창출했던 '타다 베이직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명확하고 발전적인 규제를 모색해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최근 의미있는 정부의 방향성이 나와 눈길을 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공개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창업기업(스타트업)의 개방형 혁신을 촉진하고, 규제로부터 얽매이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지원 위주의 정책을 탈피해 외부 자원을 활용한 개방형 혁신에 돌입한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창업기업(스타트업)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초격차 10대 분야로 확대하고 대기업의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유도할 수 있도록 일반지주회사 보유 기업형 벤처투자사(CVC)에 대한 외부 출자 및 해외투자 한도 등 규제 완화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최소 규제(네거티브 규제) 특례가 시행되어 기업들의 신속한 성장이 가능한 글로벌 혁신 특구도 하반기에 2곳 이상 지정할 예정이다. 나아가 사전에 규제를 진단할 수 있는 ‘창업규제트리’를 구축하고, 스타트업 대상 규제 유예제도 도입 검토 및 규제 안내제도(예보제)도 확대 추진할 예정이다.
발전적 규제 개혁이라 부를 수 있는 의미있는 발표들이다. 무엇보다 민간의 영역을 대폭 확장해 규제 개혁의 틀로 삼은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다만 타다 베이직 사태, 로톡 사태의 핵심인 기존 산업과의 충돌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쉽다는 평가다. "축적된 경험을 통한 도전적 창업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전략이 보이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이 고민이 필요하다.

한편 정부의 규제 개혁에는 플랫폼 인수합병과 관련된 내용도 필요하다. 인수합병이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 구축에 큰 도움이 되는 상황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들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풀어내면서 이들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및 인수합병을 유도하는 방안도 절실하다.
시장 독과점 측면에서의 대형 플랫폼에 대한 견제는 필요하지만, 이들의 역량을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 구조로 끌어내려는 영리한 시도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법안 제정’ 등으로 인해 대기업들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가운데 이와 관련된 입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투자 혹한기와 인수합병 활성화' 리포트를 통해 "최근 성사된 스타트업 인수합병 빅딜은 2019년 말 4조8000억원에 독일 배달서비스 전문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된 국내 1위 배달 플랫폼 우아한형제들을 비롯해 2021년 글로벌 영상기술 기업인 매치그룹에 1조9000억원에 인수된 소셜 디스커버리 플랫폼 하이퍼커넥트, 2019년 머신 비전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코그넥스(Cognex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에 2300억 원에 인수된 제조업 분야 무인검사 솔루션 제공 기업 수아랩 등이 있다"면서 "(국내) 대기업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얼라이언스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국내에서 인수합병하고 욕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있는데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것 자체에 대해 자라나는 새싹을 자르고 잠재적 경쟁자를 죽이는 킬러 인수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대기업의 인수합병 활동에 대해 무조건 킬러인수로만 인식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대중이나 언론, 특히 정책 입안자들의 시각은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생태계 전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투자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민간을 중심으로 정책적 판단을 하는 실질적인 투자가 절실하다.
정부의 계획은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오랫동안 이어진 정부 주도 및 보조사업 위주 지원방식에서 탈피할 것"이라며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출자하여 2027년까지 총 2조원 규모의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를 조성해 ‘딥테크’, ‘글로벌 진출’, ‘회수(세컨더리)’ 등 세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다.
보조금, 출연금으로 획일적이었던 창업지원방식도 추가 재정 없이도 기업당 더 많은 지원을 하되 회수하여 재투자가 될 수 있도록 투·융자 등이 결합된 형태를 도입할 예정이다. 나아가 수도권에 비해 소외된 지역 창업생태계를 활성화해 '지역 투자 촉진 → 지역경제 활성화 → 균형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도 구축한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글로벌 시장과의 연계로도 확장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그간 정책지원 대상이 내국인의 국내 창업에 한정되었다면, 이제 해외에서 현지 창업을 한 한국인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며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춘 한국인 창업 해외법인에 대해서는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일정규모 이상의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정부가 매칭 지원하는 글로벌 팁스 프로그램도 신설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벤처기업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한국모바일기업진흥협회,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한국엔젤투자협회, 한국여성벤처협회, 한국인공지능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로 구성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혁단협)는 논평에서 "벤처·스타트업이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이끄는 주역으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겠다는 추진방향에 적극 공감·환영한다"고 밝혔다.
혁단협은 "벤처·스타트업의 과감한 글로벌 도전을 위한 지원체계 마련과 민간주도의 벤처투자 시장 확대, 혁신기업과 대기업간의 개방형 혁신 촉진, 네거티브 규제혁신 제도 등 그동안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사안들"이라며 "대거 반영돼 앞으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에 자생력을 높이는데 기여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 내년 모태펀드 출자예산도 늘어난다. 4540억원을 편성해 올해보다 44.8% 늘린다는 방침이다.

업계 "비즈니스 모델에 효율 더하라"
스타트업 업계도 혹한기를 벗어나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보여줘야 한다.
먼저 비즈니스 모델 고도화 및 유연한 조직 관리다. 특히 후자의 경우 스타트업 특성상 인력 이동의 탄력성을 고려해 탄탄한 '플랜'을 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효율성이라는 키워드가 붙는다. 수익성과 매출 성장을 동시에 확보하는 한편 성장 가능성과 기술력 등 내실을 갖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유례가 없는 스타트업 혹한기를 버티려면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