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산아제한정책으로 홍콩으로의 원정출산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홍콩 퀸 엘리자베스 병원의 신생아들.


얼마 있으면 예쁜 아기를 낳을 중국 임산부 츄리(邱麗)는 베이징 내 한 사무실에서 여권에 붙어 있는 갓난아이의 증명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홍콩에서 태어난 생후 2개월짜리 중국 아기다. 아기 여권에는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라는 글씨가 뚜렷이 찍혀 있다.

츄리가 앉아있는 곳은 원정출산 중개사무실. 사무실 직원들은 홍콩으로 원정출산할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

“태어날 아기가 몇 째죠?”, “첫째예요.” 직원이 츄리의 배를 훑어보고 다시 묻는다. “임신 몇 개월째죠?”, “3개월인데요.”, “그럼 지금 소속을 밟으세요. 배가 더 부르면 불편하니까.”

중국인들의 원정출산에 대한 홍콩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자 사무실도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다. 이들이 내건 사무실 간판은 ○○교육센터. 다른 중개사무실들도 무슨 광고회사니 아무개 무역회사니 하며 엉뚱한 상호를 내걸고 있다.

“홍콩에 가서 아기를 낳고 싶은 분 연락주세요. ××회사는 당신을 위해 서비스를 해드립니다.” 중국에선 최근 이런 스팸 문자 메시지가 핸드폰에 계속 뜬다.

홍콩에 와서 원정출산을 감행하는 중국인들 때문에 홍콩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지난 2007년부터 홍콩은 이들의 입국을 막으라는 홍콩인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중국 임산부의 원정 출산을 제한하고 나섰다. 하지만 2년간 원정출산은 오히려 늘어났다.

속지주의를 적용하는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홍콩에서 태어난 아기는 영구적으로 홍콩시민의 신분을 얻게 된다.

2007년 2월부터 홍콩은 임신 7개월이 지난 임산부들은 홍콩 병원에서 분만 예약증명을 받아야 입국을 허용하고 있으며 홍콩 의료기관들도 이들에 대한 입원비를 대폭 올렸다.

하지만 2001년 620명에 불과(?)했던 원정 임산부들은 매년 두 배씩 늘더니 지난해에만 2만5000명이 넘었다. 홍콩 공립병원에서 태어나는 아기의 1/3은 순수한 중국 혈통이라고 한다.

오는 2015년에는 홍콩에서 태어나는 중국 아기가 8만명에 달할 것으로 홍콩 당국은 전망했다. 그렇다면 원정출산 가격은 얼마쯤 될까. 통상 4만~15만위안(약 735만~2750만원) 사이라고 한다.

가장 인기 있는 패키지 상품은 8만위안(약 1470만원). 이 상품에는 왕복 항공료·호텔 숙박비·여권 수속비·병원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비싼 출산가격에도 불구하고 힘들여 홍콩으로 원정을 가는 이유는 뭘까.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서다.

산아제한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중국에서 둘째를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홍콩 원정출산에서 태어나는 아기의 80%는 둘째 아이라고 한다.

홍콩에서 아기를 낳을 경우 아기가 얻게 되는 혜택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다.

홍콩시민이 되면 영구적으로 홍콩에 거주할 수 있을뿐더러 평생 의료비와 9년간 교육비 면제에다 전 세계 134개국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으며 중국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광둥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중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으면 일반 중국 학생들보다 훨씬 쉬운 특례시험을 보고 입학할 수 있다. 60세 이후에는 홍콩인에게 주어지는 양로 연금도 받을 수 있다.

임산부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홍콩시내 한 병원은 6월 초에도 벌써 10월까지 예약이 완료됐다고 한다.

아시아경제신문 김동환 베이징특파원 (don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