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가 올해부터 은행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전망이다.
브이앤비즈니스(vnbusiness) 등 현지 매체들은 "팜 민 찐(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가 부실채권 등으로 인해 취약해진 은행들을 구조 조정하는 계획을 최근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베트남 정부는 대형화와 경쟁력 제고를 통해 2025년까지 자국 은행산업을 동남아 4대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해 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금융기관의 매입·매각·흡수합병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베트남 은행간 본격적인 인수합병에는 외국 자본도 참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금융사들 역시 베트남 은행들의 구조조정에 주목하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시개발은행(HD은행)을 이끌고 있는 김병호 회장을 SK서린빌딩에서 만났다.
"한국에서의 경험 살려 베트남 금융에 기여"

지난해 5월 HD은행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에겐 '금융계 박항서'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 회장은 베트남 49개 은행 가운데 외국계 은행을 제외한 유일한 외국인 회장이다.
HD은행은 베트남 민간 은행 가운데에서도 세전 영업이익 기준 5위(BIDV 등 국영상업은행 포함시 9위)인 중견 은행이다. 지난 10년간 자산규모는 10배, 세전 영업이익은 30배로 증가하며 급속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HD은행이 김 회장을 선임한 이유는 다양한 인수합병(M&A) 경험, 국제금융시장과 관련한 전문성을 지닌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선임에 앞서 HD은행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로부터 전략 컨설팅을 받았다. 외국인 경영자를 영입하는데는 HD은행의 모회사 소비코(SOVICO)그룹의 최대주주인 응우옌 티 프엉 타오 (Nguyen Thi Phuong Thao) 회장의 의지가 작용했다.
김 회장은 "베트남은 한국에게 3번째 큰 교역국가이기도 하지만 한국 역시 베트남의 3번째 큰 교역 국가가 됐고 투자 파트너로서도 양국은 매우 중요한 나라가 됐다"며 "한국과의 관계 등을 감안해 한국쪽에서 회장을 찾아보자는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주인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회장의 선임도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HD은행이 속한 소비코(SOVICO) 그룹은 비엣젯(VIETJET) 항공의 지주회사다.
그룹에서 주축은 금융과 항공, 부동산 개발, 에너지 등이다. HD은행과의 직접적 지분 관계는 없지만 그룹에서는 증권, 보험, 자산관리 등의 라이센스를 갖고 있다. 계열사 및 관계사들과 HD은행간 시너지를 통해 성장 잠재력이 많다.
베트남은 한국만큼의 금융과 산업간 분리 이른바 금산분리가 엄격하진 않다.
은행에 대해 동일인 20%, 관계자 포함해서는 30%로 제한돼 있지만, 오너십을 갖는 최대주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CEO 등 은행 수장을 뽑는데 있어서만큼은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 기준이 오히려 한국보다 더 타이트하다. 김 회장 역시 HD은행 회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깐깐하다 싶을만큼의 심사를 받았다.
김 회장은 "베트남의 경우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인사에 대한 적격성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할 뿐 아니라 이같은 적격성에 대한 판단을 주주총회 이전에 마친다"며 "은행 회장직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지, 범죄 이력이 있는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그간 금융업 경험 여부 등 실질적 자격 여부가 판단된다"고 했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국내 은행 및 금융지주사들의 거버넌스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 회장은 "주인이 없다보니, 오히려 대리인이 자기 마음대로 다 해버리는 현상이 심화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주주들이 분산돼 있어 경영 이슈에 관심이 적고, 이에 따라 주주 액티비즘(행동주의)이 일어날 가능성도 낮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인 주주들은 대부분 인덱스를 쫒는 투자(지표에 따라 포트폴리오에 패시브 형태로 담는 투자)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은행 큰 곳은 포트폴리오로 투자하게 돼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주주들은 아무런 액션이 없이 그냥 경영진의 의사에 따라가는거고 유일하게 주장하는게 배당 정도다"라며 국내 은행의 지배구조 현실에 대해 그간의 경험을 통해 갖고 있던 시각을 내비추기도 했다.
취임 2년차가 된 김 회장은 "하나금융지주 시절 중요한 모멘텀을 대부분 경험했다"며 "한국 금융산업에서의 경험을 살려 베트남 금융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1998년 IMF사태가 몰아쳤을 때 하나은행이 국제금융공사(IFC) 자금 1억5000만달러를 유치에 성공했던 변곡점 등 그런 중요한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데 감사한 마음"이라며 "베트남에서 그런 경험들을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하나은행장 등 하나금융지주 내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하나은행의 모태였던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한 이후 충청·보람·서울·외환은행, 대한투자증권 인수 등 하나은행이 국내 4대 금융지주로 발돋움하기까지 중대한 변화의 시기를 모두 겪었던 전통 하나은행맨이다.
하나금융지주 설립때는 실무를 이끄는 기획팀장을 맡았고 이어 지주 CFO로서 재무를 이끌었다.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론스타와의 협상을 위해 그를 선수로 보내기도 했다.
"베트남 금융사들 초고속 성장…자산건전성은 주의 깊게 살펴봐야"

이제 그는 2050년까지 세계 10위 경제 대국을 노리는 베트남의 금융산업 중심에 서 있다. 아울러 선진 금융으로 발돋음 하기 위한 단초인 베트남 은행 산업 구조조정의 시작점에 서 있기도 하다.
영국의 씽크탱크인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은 2035년에는 아시아 주요 경제국인 대만과 태국을 뛰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CEBR은 '193개국 경제성장 전망 연간 순위' 보고서를 통해 베트남의 GDP는 2025년까지 연간 7% 이후 연 6.6%의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베트남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맞춰 금융산업도 성장할 것이란 기대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 회장은 베트남 은행들에 대해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자산건전성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은행 산업은 나라의 경제 발전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베트남은 코로나 19로 전세계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던 작년에도 8% 이상 성장했다"며 "이런 환경에서 은행 산업 역시 발전할 수 밖에 없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은 세계 어느 국가의 은행보다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회장은 "베트남의 금리 수준이 높다보니 이자 마진도 높다"며 "이윤이 높지만 중요한 것은 자산건전성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 7~8년 전 자산건전성 이슈가 불거진 후 그 당시 경험을 기반으로 건전성 관련 규제가 생기면서 개선된 점도 많다"고 전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베트남 은행들의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21년 이후 20% 수준을 보일만큼 성장세가 빠르다. 하나은행 (ROE 10.97%), 신한은행(10.13%%), 국민은행(9.12%) 등 국내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역대급 이익을 냈지만,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베트남 은행들과는 경영효율성면에서 비교 자체가 무리일 정도다. 은행 산업의 성장은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률과 비례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ROE가 아닌 자본건전성을 놓고 비교해 본다면 상황이 다르다. 베트남 은행들의 자본적정성비율(CAR)은 10%대 초반으로,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필리핀 등 아세안+5 역내 국가들(15~24%)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베트남 정부가 코로나 19 지원을 위해 부채상환을 연장하면서 은행들의 부실채권(NPL)이 증가했고 지난해 중반부터 부실은행 리스트가 오르내렸다.
베트남 군대은행(MB)은 OCB를, 비엣콤은행(Vietcombank)은 CB은행을, HD은행(호치민시개발은행)은 동아은행(DongA Bank)을, VP은행은 BP은행을 인수하는 등의 시나리오였지만 이에 대해 베트남 정부가 공식 확인한 바는 없었다.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김 회장은 어느 정도 구도는 그려져 있는 상황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구조조정 관련) 금융당국과는 얘기가 되고 있지만 아직 공식 발표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김 회장은 "부실은행 관련 4개 정도의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 시스템이 생겼고 거기에 HD은행이 참여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또 "베트남 정부에서 일부 은행들이 참여를 한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구조조정 대상인 은행에 대해서만큼은 해당 은행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주기 때문에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HD은행을 포함해 MB은행, 비엣콤은행, VP은행 등 인수 주체 은행은 밝혀졌지만, 피인수될 것으로 거론되는 은행 리스트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베트남 정부는 2025년까지 자국의 상업은행 2~3개를 아시아 100대 은행 명단에 올리는 한편 1~2개 은행은 해외 주식 시장에 상장시키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베트남 금융권 일각에서는 은행간 M&A에 대한 물밑 작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이 베트남 은행권의 M&A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현지 매체 보도도 나왔다. 베트남 은행들의 본격적인 M&A장이 열리면서 한국 기업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HD은행, 잠재력 풍부…연계 로열티 구축해 카드·방카 등 시너지"

베트남 진출을 적극 추진하는 한국 금융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2009년 현지 법인 '신한베트남은행'을 출범시킨 신한은행에 이어 국내 은행, 보험, 증권, 카드 등 전 금융사들이 베트남 사업 진출을 적극 추진해 왔다.
최근 수년새 현대해상, 삼성화재, 롯데카드 등 2금융권도 베트남 현지 금융사 지분 또는 경영권 인수 등을 이어왔다. 토스뱅크의 모회사 비바리퍼블리카가 2019년 베트남 현지법인 '토스베트남'을 설립한 이후 인터넷은행들 역시 베트남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제 2금융권에서도 베트남 진출에 관심이 있는 것 같고 실제로 타진중인 곳이 꽤 많다"며 "핀테크들도 창업해서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려고 하고 있고, 서플라이 체인 공급자망 금융, 페이먼트 금융,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등과 관련한 한국 스타트업들도 들어오려고 한다"고 전했다.
HD은행 역시 베트남 금융사 인수를 위한 한국의 금융사들과 전략적 제휴를 추진중이다. 다만, 자본 투자 뿐 아니라 사업적 시너지 역시 중요하다고 김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자본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며 "전략적 파트너로서 한국의 은행, 보험사 등에 오픈해 놓고 검토해 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으로부터의 베트남 투자, 양국간 교역 등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전략적 파트너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관련된 분야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HD은행에 대해 "잠재력이 풍부한 금융사"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비엣젯항공의 연간 수송 인원이 2천200만명 정도, 한사람이 여러번 비엣젯항공을 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ID 기준으로 보자면 연간 800만명 정도 된다"며 "일본 크레딧카드 마켓쉐어 1위사인 크레딧 세존(SAISON)과 50대 50으로 합작해 설립한 할부금융사 HD세존의 경우 고객수가 1100만에 달한다는 점에서 에코시스템이 매우 좋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연계 로열티 시스템, 카드, 방카슈랑스 등으로 시너지를 넓히기 시작하면 매우 훌륭한 에코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