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게나 기업에게나 또는 개인에게나, 그 누구에게도 재난은 닥친다. 그러나 그 재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예방까지 할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 29일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또한 그런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정치권은 벌써 이 참사가 예방할 수 있었는가 아니면 부지불식 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설왕설래하고 있다. 90년대에 연달아 일어났던 인재(人災)와 최근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까지, 다양한 유형의 국가적 재난을 늘 겪으면서 우리는 이러한 장면에 매우 익숙하다.
다시 정리하면 재난을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면 최선일 것이고 이러한 재난을 잘 대처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고, 재난 이후에 이러한 재난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 이 세가지가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주기적으로 이러한 국가적 재난과 참사를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첫번째로 우리는 과연 재난을 예측할 수 있을까? 경영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허버트 하인리히는 1920년대 미국 여행보험사의 직원이었는데, 수많은 통계를 다루다가 하나의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형사고 한 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와 관련 있는 소형사고가 29회 발생하고, 소형사고 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증상들이 300번 발생한다는 법칙을 파악한 것이다. 이러한 1 : 29 : 300 법칙은 그후 ‘하인리히 법칙’으로 정립되었고, 하인리히가 쓴 책인 ‘산업재해 예방’은 경영학 분야 뿐만이 아니라 산업재해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자리매김했다.
기업의 입장에서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고나 실패의 징후를 성공의 법칙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들은 직구를 던지다가 실수로 개발된 투구법이다. 방울토마토는 슈퍼토마토를 만들기 위해 품종 개량을 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3M의 포스트잇이 개발 단계에서 사장(死藏) 될 뻔한 일화는 유명하다. 흔히 실패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애써 감추려고 한다. 그러나 의외로 성공의 씨앗은 그 사소함 속에 숨겨져 있다. 즉 실패와 성공은 결국 같은 단어다.
두번째로 기업들은 이러한 재난 상황을 어떻게 잘 대처하는가?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작년 여름, 한 약사는 의문의 문자를 받게 된다. 문자 내용은 "한 박스에 10정, 400개가 들어있고 최대수량은 50박스"라며 "보건복지부 특별지시로 납품하기 때문에 약사카드로는 결제가 안된다"고 현금거래를 유도하는 문자였다. 이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타이레놀 품귀 현상'을 틈탄 일종의 보이스 피싱 일당이었다. 대한약사회의 요청으로 보이스피싱 일당에 대한 수사가 들어갔고 이러한 뉴스가 전해지면서 타이레놀의 가치는 더 올라가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귀하디 귀한 타이레놀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인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존슨의 대표 상품인 ‘캡슐형 타이레놀’ 제품을 복용한 소비자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제품에 누군가가 청산가리를 넣은 독극물 사고였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존슨앤존슨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시카고 지역에 유통된 타이레놀만 회수 요청했다. 그러나 존슨앤존슨의 대처는 권고를 넘어선 그 이상이었다. 전국에 유통된 캡슐형 타이레놀 제품 3100만병을 전량 회수했고 제품을 회수하고 폐기하는 데 쓴 비용만 1억달러가 넘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고 손실은 컸지만 회사를 바라보는 소비자 신뢰는 높아졌다. 잠시 떨어졌던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회복됐고 40년이 지난 오늘도 품귀현상을 일으키는 진통제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위기를 기회를 바꾼 전략으로 오늘날까지 타이레놀은 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업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대처하는지는 보여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 예로 ‘CAP 법칙’의 작용하는데, C는 진정성 있는 사과(Care & Concern)’를, A는 ‘앞으로 취할 행동(Action)’을, P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Prevention)’라는 약속을 뜻한다. 누가, 누구에게, 왜 죄송한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핵심적인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에게는 이러한 재난을 겪은 이후에도 유사한 상황을 선제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수적이다. 최근에 사회적 이슈로 붉어졌던 카카오와 SPC사태는 이 두 기업이 과거의 재난 상황 이후에도 시스템 마련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카카오는 과거에도 데이터센터(IDC)의 전력 장애로 인한 서비스 중단 사례를 겪었었다. 10년 전 2012년 4월 28일에는 카카오톡과 카카오스토리 서비스가 4시간 동안 중단된 적도 있었다. 카카오는 당시에 모든 서버를 LG CNS 데이터센터에 맡겨 운용했었는데 이곳의 전력 공급 장치에 문제가 생기자 바로 먹통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 재난 상황에 대한 시스템 구축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SPC도 마찬가지다.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발생한 산업재해는 총 581건인데 이 중 SPC 근로자 사망을 불러온 ‘끼임’ 사고도 54건에 달했다. 끼임 사고에 대한 안전장치 구축은 미흡했고 고용노동부는 이번 근로자 사망 사고가 혼합기 끼임 방호 장치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없어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전력연구원의 부사장인 칼 스탈코프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 사회 전체는 온갖 전선(電線)들이 서로 얽히고 설킨 일종의 토끼 굴과 같다. 재난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드물게 일어나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또한 일탈적이고 지엽적인 특징을 지닌 문제로만 몰고 갈 일고 아니다. 재난은 이제 현대사회를 이루는 구조적 특성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또다시 국가적 재난을 겪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토끼 굴 속에서 ‘토끼 머리’를 한 남성을 찾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민낯이자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