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차. 출처=셔터스톡
청소차. 출처=셔터스톡

매주 새벽이면 디젤 엔진이 작동하고 청소공무원들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고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릴 적 살던 동네부터 20년 가량 지난 현재 지내고 있는 빌라촌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듣고 있는 ‘소음’이다. 소음도 문제지만, 청소차가 지나간 구역에서 한동안 맡을 수 있는 매연 냄새도 고역이다.

트럭이나 버스 등을 통칭하는 상용차는 온실가스 배출 주범이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국내 ‘도로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난 2019년 9만7462기가그램 이산화탄소환산량(Gg CO2eq.)으로 7만9258Gg CO2eq. 대비 23.0%나 증가했다. 정부가 해당 기간 승용차와 버스 등 차종의 전기차를 도입하기 위해 차량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정책을 펼쳐온 상황에서 나온 결과다.

같은 기간 일반 시민의 구매력이 상승하는 한편 대중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자동차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진 점도 배출량을 늘린 요인으로 작용했다. 다만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욱 획기적인 배출량 저감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상용차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상용차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의 평균치가 승용차 평균치의 70배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화물차를 일절 매연 없는 무공해차로 전환할 경우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이 승용차의 2.5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화물차가 승용차보다 거리 대비 더 많은 배출량을 보일 뿐 아니라 용도상 더 많이 운행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무공해 트럭은 미미한 규모로 운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통계 자료에 따르면 무공해 화물차 차종별 등록대수는 전기(배터리전기) 트럭 4만2937대, 수소트럭 5대 등 4만2942대로 집계됐다. 전체 화물차 363만1975대의 1.2%에 불과하다. 이 중 현대자동차와 기아 양사가 보급한 1톤급 소형 순수전기트럭을 제외하면 중형 이상 차급의 무공해 트럭 비율은 0에 가깝다.

국내 무공해 트럭의 비율이 낮은 건 현재 상용화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한 수소전기트럭을 보급하는데 초점 맞춰진 트럭 전동화 전략도 한 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이 앞세운 상용차 전동화 전략의 초점인 수소연료전지 분야의 국가 역량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올해 들어 제주 등 일부지역에 현대차그룹의 수소트럭을 관용으로 시범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앞서 유럽 등 외국에서 양산되고 있는 순수전기트럭에 대해서는 국내 양산되는 소형트럭을 제외하곤 일절 보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현재 현대차그룹이 중형급 이상 트럭을 모두 수소차로 개발해 공급하려는 전략을 펼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일종의 ‘자국보호주의’ 정책인 셈이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의 규제환경 백서 발간 기념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모습. 국내 외국계 기업들이 경영상 애로사항을 겪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규제를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건의하는 취지로 열렸다. 사진=최동훈 기자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의 규제환경 백서 발간 기념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모습. 국내 외국계 기업들이 경영상 애로사항을 겪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규제를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건의하는 취지로 열렸다. 사진=최동훈 기자

온실가스 느는데…‘5㎝ 규제’로 유럽 전기트럭 못 들어와

정부가 토종 기업을 우선 밀어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다만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더 큰 차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욱 유연한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가 당초 계획한 탄소중립 달성 목표 기한인 2030년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당시 정부가 확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그동안 배출량 정점을 찍었던 2018년 대비 40% 줄일 계획이다. 다만 국내 재계에서는 “실현 가능성 우려”(대한상공회의소), “생산량·고용감소 우려”(한국철강협회, “경제 여건 맞춰 합리적으로 수립돼야”(전경련) 등 목표 달성여부가 불투명한 점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국내 기업을 밀어주는 듯 쥐어짜기보다는 해외의 우수한 기술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대의명분에 부합하는 행보다. 트럭 시장에서도, 현재 중국산 제품이 득세한 버스 시장과 마찬가지로 해외 제품을 적극 반입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중형급 이상 순수전기트럭의 경우 차폭 너비가 2.5미터를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국내 규제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2.55미터까지 차폭을 설계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5센티미터의 짧은 길이에 얽매여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을 우회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되겠다.

환경부가 내년 예산의 집행목록에 중형 전기화물차에 대당 5000만원의 구매보조금을 신설한 점은 전향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정부가 큰 뜻을 이루기 위해 더욱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