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대출을 놓고 은행권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달부터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3단계로 강화됐고 정치권의 가계대출 금리 압박이 거세지면서 영업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가계대출이 6개월 연속 줄어드는 반면 기업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기업대출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치권 압박 이어 7월부터 DSR 3단계…“가계대출 수요 한계”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들이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대출 포트폴리오와 플랫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강화된 DSR 규제와 금리인상기 등 영향으로 가계대출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차주별 DSR 규제 ‘3단계’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기존엔 규제대상이 ‘2억원 초과 대출자’였으나 이달부터 ‘1억원 초과 대출자’로 확대된 것이다.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는 대출자들은 앞으로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2금융권 50%)를 넘을 수 없다.
전체 차주의 29.8%, 전체 대출의 77.2%가 DSR 3단계 규제 대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가계대출은 점차 줄어들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지난 6월 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은 699조6521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4094억원 줄어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최근 정치권의 가계대출 금리 압박 행보도 은행권의 예대마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와 예금금리가 7년여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지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금리상승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은행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은행들은 서둘러 대출금리를 낮추고 예·적금 금리를 올리며 몸을 바짝 낮추는 모양새다.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신규 취급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금리를 각각 최대 0.35%포인트(p), 0.30%포인트 낮추기로 했다. 또 6월 말 기준으로 연 5%를 초과하는 기존 주택담보대출 이용 고객 전원에게는 향후 1년간 금리를 ‘연 5%’로 고정해 금리를 깎아주기로 했다. 5%를 넘는 이자는 신한은행이 부담한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 1일 NH농협은행은 주담대 금리를 최대 0.2%포인트 내렸고, 우리은행은 지난 6월 24일부터 혼합형 주담대 조정금리를 기존엔 내부 신용등급 기준 1~8등급까지만 적용했지만 9·10등급까지 확대했다. 이에 우리은행 주담대 최고금리는 하루만에 0.9%포인트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은행권, 中企 중심 현장경영·포트폴리오 강화 박차
이에 은행권은 영업의 활로를 기업대출에서 모색하겠다는 입장이다.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5대 은행의 6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673조7551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37조8672억원 불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이 9조4008억원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인상하는 이유도 이러한 상황적 영향이 크다. 업계 관계자들은 “예·적금 금리를 올리는 이유에는 예대마진을 줄이라는 정치권의 압박뿐만 아니라 기업대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는 상황도 주요하게 작용한다”며 “예·적금 유치를 통해 하반기 대출 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기업대출 잔액 중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중소기업대출(581조8307억원)이라는 점에서 해당 부문 강화를 놓고 업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은행장들은 현장경영을 통해 기업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지난 6월 말 3박 5일간 베트남 출장에서 현지진출 고객의 사업장을 방문해 경영 현황과 금융 애로를 청취하고 해당 지점에 지원 방안 마련을 당부했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도 현장을 찾았다. 권 행장은 지난 6월 말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중소기업을 방문해 업계의 애로사항과 현안을 듣고 금융 지원 방안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협은행은 연이은 기업 방문을 통해 ‘농마고우’ 경영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권 행장의 의지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농마고우’는 죽마고우처럼 농협은행과 기업과의 끈끈한 관계 유지를 돕는 현장 방문을 의미한다.
은행 차원에서의 포트폴리오 강화도 눈에 띈다. 먼저 신한은행은 지난 6월 22일 ICT솔루션 개발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워 중소기업 특화 금융플랫폼 사업에 나섰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공개된 정보와 신뢰성이 부족해 일반 시중은행의 금융 지원에 한계가 있는데 합작법인을 통해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에 대한 애로 사항을 해결하고 중소기업 금융 시장에서의 우위를 확고하게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 30일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대출’을 출시했다. 네이버의 중소상공인 업체 정보 관리·운영 플랫폼인 ‘스마트플레이스’ 전용 대출상품으로, 여기엔 250만명의 소상공인 매장이 등록돼있다. 지난해 은행권 최초로 네이버 플랫폼과 연계한 ‘우리은행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대출’ 출시 이후 11개월 만이다. 과거 출시한 대출상품이 ‘온라인 사업자’를 위한 상품이었다면 이번 상품은 ‘오프라인 매장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반면 기업대출 증가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는 9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출원금 만기연장 및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돼 기업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경우 금융기관들의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기업대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진 주원인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중소기업들이 대출로 연명하게 됐기 때문”이라며 “오는 9월 대출만기 유예 종료 이후 특히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대출의 부실 위험이 높고 이는 금융부문의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 교수는 “정부도 정책금융 등을 활용한 대책을 사전에 준비해 코로나 관련 대출의 경우 대환이 가능하게끔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