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은행 청소를 하는 미화원들이 약 720명이에요. 그중 620명이 각 지점에 1명 씩 배치돼 일을 하는데 이들 중 90% 이상이 3~5시간 정도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에요. 문제는 이들 모두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계약시간이 이렇게 작게 잡혀있으니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와 다름이 없다는 거예요. 60만원 남짓 받는 생활비로 뭘 할 수가 있겠어요?” - 청소미화원 A씨
“나라는 정규직 늘렸다고 생색내고 기업은행은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다고 자부하지만,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라는 명목 하에 일거리만 더 늘어났고요. 결국 고용안정 보장 된 노예와 다름없습니다.” - 청소미화원 B씨
국책은행 기업은행(024110)의 청소미화원들이 3년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약 근무시간은 8시간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720여명 미화원 가운데 대다수가 5시간 이하 단시간 근로계약을 맺고 있으며, 지점보다 규모가 큰 집합건물에 배치된 미화원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기준 없이 계약상 근무시간이 상이한 것으로 확인됐다.
“3시간 근무하고 실수령액 월 60만원…근무시간 책정 기준 알 길 없어”

2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한 결과, 정규직으로 고용된 기업은행 청소미화원 총 720여명 가운데 계약상 근무시간이 8시간인 인원은 100여명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620여명 중 대다수는 3~5시간 근무하는 단시간 근로계약을 맺고 있어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본점·파이낸스·수지센터·한남센터·충주연수원·기흥연수원 등 기업은행 산하 6개 집합건물서 일하는 미화원들의 경우에도 근무시간이 일정치가 않은데, 이에 대해 사측은 특별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근무시간을 기반으로 책정된 월급은 3시간 기준 세후 60만원대(세전 약 70만원)에 머문다. 최대 7시간 근무하는 일부 직원도 세후 160만원 수준이다. 근무시간 자체가 낮게 책정되어있다 보니 올해 최저임금 기준 주 40시간(일 8시간) 근무하는 일반 근로자의 월 최저임금 실수령액 172만원(세전 191만원)보다도 적다.
이에 대해 IBK서비스 측은 “용역사 근무조건을 그대로 적용했다”며 “근무시간은 청소면적에 따라 산정하고 추가적으로 전문기관 외부컨설팅을 거쳐 근무시간 산정의 공정성을 높였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측이 산정한 각 지점 및 집합건물별 미화원 1인당 청소면적을 알려달라’는 추가 질의엔 “밝힐 수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노조 측은 “전문기관 외부컨설팅을 진행했다는 얘기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고, 근무시간의 책정기준에 대해서 물을 때마다 사측은 ‘우리도 모른다. 용역시절 그대로 받았을 뿐’이라는 말만 늘 반복해왔다”며 “게다가 3시간 근무에 60만원 받는 청소노동자들이 대다수인데 정규직이라고 하기에 너무한 수준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기업銀, ‘정규직 전환’ 치적 쌓기…3년간 노무비 산정 규칙도 어겨”
현재 청소노동자들은 기업은행이 지난 2018년 말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설립한 인력전문 자회사 ‘IBK서비스’ 소속이지만, 기업은행과 IBK서비스는 여전히 도급(용역) 계약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원청이자 모회사인 기업은행에 근본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용역사로부터 받은 근무조건을 면밀히 살피지 않고 단순 승계만 한 것이 문제 발생의 시초라는 입장이다.
또 원청인 기업은행이 지난 3년간 노무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임금과 관련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타공공기관인 기업은행은 국가계약법에 따라 용역계약을 맺을 때 매년 상·하반기 중소기업중앙회사 발표하는 시중노임단가 변경 등에 따라 계약금액을 조정해야 하는데, 정규직 전환 이후 지속적으로 이러한 조정 없이 IBK서비스와 수의계약을 맺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8월경 감사원에 해당 내용에 대한 민원이 접수됐고 이후 감사원 조사 결과 기업은행 측은 해당 내용을 시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당시 기업은행이 노조와 협의를 통해 시중노임단가가 반영된 3년간의 조정분을 연내 지급할 예정이고 앞으로는 예정가격 작성과 시중노임단가 반영과 같은 법령에 맞는 용역계약을 추진하겠다고 소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지난 3년간 노무비 관련 조정분에 대해 지난해 말 재산정을 진행했다”며 “올해부터 계약 갱신시점에 따라 일부 노동자에게 적용했고 나머지 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갑을관계 산하 경영 간섭도…기업은행이 업무방법 지시”
분리 법인이지만 용역·도급계약을 맺는 관계로 기업은행과 IBK서비스가 사실상 갑을관계에 놓여 있다 보니 원청의 불합리한 간섭이 이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본지가 입수한 녹취파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경 기업은행 행장 비서실에서 IBK서비스 측에 “담당 미화원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한다”는 취지의 전달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은행 본점을 비롯해 집합건물 내 청소미화원들은 통상 1인당 1층을 맡아 수개월의 간격을 두고 각층에 대한 순환근무제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청인 기업은행 측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은행 측은 “청소용역은 도급계약이므로 용역수행과 관련한 업무방법 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으나, 해당 녹취에는 IBK서비스 담당자가 “비서실에서 미화원 이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수차례 언급하며 “이 내용은 IBK대표께 보고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일”이라고 강조한 내용이 담겼다.
당시 노조는 형평성에 어긋나고 해당 층만 순환근무에서 배제돼야 할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반박했으나, 결국 기업은행 본점 행장실이 위치한 층은 현재까지 순환근무서 제외돼 별도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조 관계자는 “도급업체의 경영권 침해이고 독립성을 무시한 사례”라며 “이후 기업은행 다른 부서들에서도 이와 동일한 요청이 왔는데 해당 행위는 직접적인 업무지시로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결국 정부와 기업은행의 치적 쌓기에 지나지 않았다”라며 “물론 고용안정이 된 점은 장점이나 노예는 여전한 노예일 뿐, IBK서비스도 기업은행 그림자 아래에 묻혀 독자적인 경영을 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업은행 청소미화원들 내부에선 최근 보건당국의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건이 수차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은행 본점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 C씨는 지난 14일 코로나19 관련 증상이 나타나 PCR검사를 받았으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출근해서 일하라”는 미화팀장의 강요로 근무를 강행했다.
이튿날 C씨는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후 해당 내용이 알려지자 노조는 즉각 사측에 항의했다. 그러나 진상 파악에 대한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화팀장과 사측 담당자는 C씨를 각각 불러 사실관계를 추궁했고, 피해자격인 C씨에게 사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해당 미화팀장은 백신접종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지시한 건으로도 지적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IBK서비스 측은 “공식 답변이 없다”고 입장을 짧게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