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브레이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20년 10월 7일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의 상은 생명의 코드를 다시 쓰는 것에 돌아갔습니다. 이 유전자 가위를 통해 생명과학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였다. 두 사람은 2012년 ‘크리스퍼 시스템’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세계 최초로 규명해냈다. 크리스퍼 시스템이란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후천적 면역체계를 말한다.

크리스퍼 시스템에 대한 연구는 이후 유전자 편집기술(일명 크리스퍼 가위)로 발전하여 암과 유전병 치료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발생 이후 백신 개발은 물론 코로나 진단-치료 연구에도 널리 응용되고 있다.

이 책은 크리스퍼 연구의 선구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첫 공식 전기이다. <스티브 잡스>의 저자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은 여류 과학자의 전기를 집필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20세기 전반은 물리학의 시대였고, 20세기 후반은 정보기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명과학의 시대다.’

요즘 미국에서는 과학 영재들이 생명과학, 유전공학, 의학에 지원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시민과학자들과 바이오해커들은 자기 집 연구실에서 유전자 편집 키트를 가지고 생명을 재프로그래밍하고 그 과정을 전 세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생명과학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 바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이다. 제니퍼 다우드나가 최초로 고안한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은 기존 도구들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제작이 간단하며 정확도와 효율성이 높다.

이 책은 유전자 조작이 가져올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유전자를 바꾸는 문제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장애, 동성애, 인종 등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그런 개입이 공정한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바람직한 것인지 같은 심오한 질문들로 이어진다.

만약 우리에게 유전자를 안전하게 편집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을 갖게 하는 기술이 주어진다면, 이를 사용하는 게 잘못일까 사용하지 않는 게 잘못일까? 치료를 위한 편집은 괜찮지만 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편집은 괜찮지 않다는 논리는 얼마나 타당한가?

공동체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자녀의 유전자를 선택하지 못하게 정부가 막을 수 있을까? 반대로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유전적 격차가 생기고 그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은 없는가?

이 책은 흥미로운 사고실험과 실제 연구 사례, 인터뷰들을 통해 도덕적 가늠자에 포함될 일련의 원칙들을 세울 때 우리가 무엇을 숙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찬성 또는 절대적 금지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