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입구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입구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이코노믹리뷰=금교영 기자] “저 현수막이 왜 붙었는지 누가 붙였는지 조차도 모른다. 절대 주민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달라.”(관양동 현대아파트 한 입주민)

다음달 5일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앞둔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가 단지에 걸린 현수막으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HDC현대산업개발의 퇴출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화제가 되면서다.

17일 기자는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관양동 현대아파트를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노란 바탕의 현수막 여러개가 눈에 들어왔다. 안전한 아파트를 바라는 관양현대 시니어모임이 붙인 현수막에는 ‘현대산업개발 보증금 돌려줄 테니 제발 떠나주세요’, ‘우리의 재산과 목숨을 현산에게 맡길 순 없다’, ‘무너진 기업! 현대산업개발 퇴출!’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그 사이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이 걸어놓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죽을 각오로 다시 뛰겠습니다’라는 현수막도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현수막을 놓고 조합원들도 다양한 입장을 보이며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를 취재하기 위한 기자들까지 몰리며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에 걸린 HDC현대산업개발 시공사 선정 반대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에 걸린 HDC현대산업개발 시공사 선정 반대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지난주 붕괴사고가 나기 이전까지 현산이 7대3정도로 우위를 보이는 것 같았다”며 “인지도도 더 높고 현산이 뿌리가 깊다는 인식이었는데 지금 상황이면 다르지 않겠나,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현산을 안 찍을 것”이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안그래도 제안서와 계약서가 다른 부분이 있어서 현산보다 롯데 쪽으로 기울었는데 이런 사고까지 발생해서 너무 실망했다”며 “만약 현산이 최종 시공사로 선정된다면 차라리 이사를 가겠다”고 덧붙였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관양동 현대아파트는 지난달 HDC현대산업개발과 롯데건설이 시공사 선정 입찰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오는 2월5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해당 아파트는 1985년 HDC현대산업개발이 준공한 단지인데다 앞서 이 회사가 제안한 조감도가 조합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HDC현대산업개발의 수주가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발생한 외벽 붕괴 사고로 인해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HDC현대산업개발을 재개발·재건축 시공사로 선정한 일부 사업지에서는 시공사 교체, 계약 취소 등의 이야기가 나왔고, 이미 공사가 진행된 곳에서는 교체는 어렵더라도 아파트 이름에서 ‘아이파크’만이라도 빼자는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에 걸린 HDC현대산업개발의 사과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에 걸린 HDC현대산업개발의 사과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관양동 현대아파트는 이미 시공사가 결정된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이 있는 만큼 이를 놓고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해당 현수막이 걸리며 언론에서도 관련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조합원의 혼란도 가중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의 퇴출 요구가 조합원 전체 의견으로 비춰져서다.

다수의 조합원들에 따르면 해당 현수막은 재건축 조합 차원의 공식적인 대응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조합원들의 의견으로 주민들조차 누가, 언제, 왜 현수막을 걸었는지 몰랐다며 공분했다. 단지 한쪽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로 다가가 현수막과 시공사 선정에 관한 이야기를 묻자 이런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조합원 A씨는 “우리 아파트에는 원래 시니어모임이 없었는데 며칠 전에 갑자기 생겼다”며 “저 현수막이 왜 붙었는지, 누가 붙였는지조차 모르는데 언론에서는 조합원들이 이렇게 원한다고 하면서 사진을 걸어놓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어서 굉장히 불쾌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옆에 있던 조합원 B씨도 “진짜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시니어모임이 건 현수막이 마치 조합원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 마냥 비춰지고 있다”며 “대다수의 주민들은 모르는 내용으로 조합원 전체 의견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써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합원 C씨는 “시니어 모임 대표자가 당당하면 본인 이름을 밝혔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또 현수막 색깔이 너무 튀다보니 더 화제가 되는 느낌으로 조합원들 사이에서 색감이 참 중요하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해당 현수막이 경쟁사 소행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양산되면서 조합원들은 “둘 중 한 건설사를 선택해야 하는 조합원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참 난감하다”고 전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재건축 수주를 위해 마련한 홍보관.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재건축 수주를 위해 마련한 홍보관.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주민이 기자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그는 “우리 아파트가 며칠 전부터 굉장히 이슈인데 사실 저희는 하루하루 마음이 바뀐다”며 “현산이 엄청난 잘못을 했지만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현산과 롯데를 놓고 하나하나 비교·분석하고 있는 상황인데 언론에서 함부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현수막 내용만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조합원 D씨는 “저 역시 현대산업개발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가 붕괴 사고 이후로 고민이 되긴 한다”면서도 “이번주 22일 홍보관이 열리면 설명을 듣기 위해서 시간을 잡아놓은 상태인데 이렇게 자꾸 와서 들쑤시고 일방적인 의견을 각인시키면 사람들이 한쪽으로 기울 수 있어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했다.

실제 이날 현장에는 여러 매체의 기자들이 와서 현수막 사진을 찍고 조합원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기자라는 말에 이야기를 거부하고 자리를 피하는 조합원이 있는 반면 적극적으로 먼저 찾아와 의견을 내놓기도 했고, 삼삼오오 모여 자신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있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당일 오전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사퇴 소식과 유병규 대표이사의 자필 사과문도 화제가 됐다.

한 조합원은 “현산 회장이 회장직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다 믿을 얘기는 아니지만 뼈를 깎는 각오로 하겠다고 하니 잘 처신하지 않겠냐”고 말했고, 또 다른 주민은 “회장이 사퇴하면서 안전결함에 대한 법적 보증기간을 10년에서 30년까지 늘린다고 했으니 어쩌면 더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조합원에 보낸 자필사과문 뒤로 HDC현대산업개발 퇴출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조합원에 보낸 자필사과문 뒤로 HDC현대산업개발 퇴출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반면, 또 다른 조합원은 손에 들고 있던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보낸 자필 사과문을 보여주며 “이런 종이 사과문 하나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차라리 재건축을 안 하거나 시공사 선정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합원 E씨는 “솔직히 말하면 다 무효시키고 새로 공고해서 건설사 모집하고 처음부터 다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면서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올해로 지어진지 38년째인데 오래되긴 했지만 지금도 파헤쳐지지 않는 이상 당장 사는데 걱정은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다”며 “주민들이 전반적으로 순해서 집단행동을 하거나 그러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길 바라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조합원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면서도 중립을 지켜달라는 점은 동일하게 요구했다. 조합원 F씨는 “현수막으로 인해 우리 아파트가 큰일이 난 것처럼 비춰지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라며 “오히려 언론 보도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는 부분도 있고 시공사 선정 과정이 남은 만큼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저녁 무렵부터 관양 현대아파트 입구 HDC현대산업개발 퇴출을 요구하는 현수막앞에는 명품아파트 지킴이 이름으로 ‘다음 세대를 이을 멋지고 품격있는 아파트를 만듭시다’라는 현수막이 걸린 상태다.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입구에 걸린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입구에 걸린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