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녁 외부에서 갑자기 긴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수면 문제로 늦은 오후에는 커피를 안 마시는데, 그날은 저녁 회의를 하면서 무심결에 커피를 많이 마셨나 봅니다. 늦게 돌아와 잠들려고 했으나 실패, 아예 일어나 책상에 앉았습니다. 책을 보려다가 접고 한해가 다가는 시점이라 자연스레 한해를 돌아보며 금년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금년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이 내 인생 10대 일을 꼽는다면 들어갈 일들이지 싶었습니다.
외손자가 태어나 할아버지가 된 것, 아들이 결혼함으로서 두 자식을 다 출가시켜 홀가분함을 가졌다는 것, 모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남으로 삶의 무상 생각이 많아진 것...
그렇게 내 인생 10대 일에 들어갈 내용들을 메모하다가 문득 두 가지 내용이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는 만델라 대통령이 한 얘기입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인터뷰에서 본 얘기였습니다. 만델라가 오랜 기간 흑인 탄압이 심했던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었고, 만델라 자신이 무려 27년 여간의 수감 생활을 겪으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가 플려난 처지였는데, 그 나라에 충분히 있음직한 백인에 대한 정치보복이 없었던 겁니다. 이에 반기문 총장이 그대목이 신기하고 궁금해서 어떻게 정치보복이 없고, 용서가 가능했는지를 물었던 것이죠. 거기에 만델라가 답합니다. ‘과거는 여는 게 아니고 닫는 것이다. 미래를 여는 것이다’
크게는 선진정치, 작게는 정치보복 여부와 관련된 질문과 배경을 담은 심오한 얘기였지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 손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해를 마감하며 내 인생 10대 사건을 하나씩 메모해나가는 것이 만델라가 열어갔던 미래와 대비되어, 웬지 오래된 앨범을 들썩이며 접혀진 과거의 페이지를 자꾸 들추고, 여는 것 같았습니다. 왜 미래를 열지못하고...
그는 알다시피 세계적 인권운동가로 서기까지 27년여간의 투옥 기간을 포함해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남아공에 출장을 가서 틈을 내어 그가 갇혀있던 로빈섬 수용소를 보러갔으며, 그가 만든 당 대표와 회의도 했고, 그의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이라는 책도 읽어서 그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의 고난, 고초에 대해서는 무지했지 싶었습니다. 바로 그런 깊은 시련에서 나온 철학이 바로 과거는 접고, 미래는 여는 거라는 결론이었을 텐데 말이죠.
또 하나는 얼마 전 부친과 나눈 대화였습니다.
고향 선배 되는 친척 형이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 최근 집안일에 모셔 함께 행사를 치루었습니다. 나는 물론이고 행사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그의 메시지에 많은 위로도 받고, 감동도 받았습니다. 일이 끝나고 부친이 그에 대해 말해주더군요. 신앙의 힘도 있지만, 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힘든 가정사의 시련을 겪으며 사람이 단단해지고, 커지고 속이 깊어진 목회자가 되었다고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습니다.
결국 만델라까지는 안 가더라도 사람을 크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은 바로 어려움과 시련을 겪은 후가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내 과거를 돌아보니 어려움, 시련이 있으면 일단 그걸 피하려 애써온 인생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커지고 성숙해질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걸까요?
조금은 무참한 기분이 드는 새벽, 과거를 적어나가던 펜을 내려놓고, 만델라 인생 선생이 얘기한 대로 과거는 접고 내년이라는 미래를 활짝 열어갈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이 있을지라도 그걸 정면으로 맞설 용기를 간절히 기대하게도 됩니다.
앞으로 가끔씩 저녁때 커피를 마셔 잠 못 들고 각성하는 시간으로 내일을, 미래를 열어보자는 생각도 덤으로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