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출처= 한국앤컴퍼니그룹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출처= 한국앤컴퍼니그룹

[이코노믹리뷰=최동훈 기자]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계열사로 둔 한국앤컴퍼니그룹의 조현범 회장이 최근 선임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적 문제는 없다. 다만 형제의 난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회장에 오른 조현범 체제에 리스크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최근 정기 인사를 통해 조현범 회장을 선임한 주체로 ‘회사’를 내세웠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지난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지주회사인 한국앤컴퍼니의 최고경영자(CEO) 조현범 사장을 회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조현범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이사회가 열렸다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이코노믹 리뷰>가 문의한 결과 한국앤컴퍼니그룹이 이번 인사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이사회를 열지 않았지만 이사회 구성원 간 ‘내부 절차’를 거쳐 인사 결과에 대해 뜻을 모은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조현범 회장의 부친인 조양래 명예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이사회가 별도로 열렸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앤컴퍼니그룹 관계자는 “(조현범 회장을 비롯한 당시) 임원 선임과 관련해 이사회 구성원과 사전협의(승인) 절차를 거쳐 진행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조현범 사장이 회장으로 새롭게 불리기 위해 이사회를 거쳐야 할 법적 의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법 제389조(대표이사)에 따르면,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다만 ‘회장’을 선정하기 위해 이사회 결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은 해당 법령에 존재하지 않는다. 회장은 기업 안팎에서 쓰이는 ‘세속적인’ 직급일 뿐 법에서 규정한 개념이나 지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앤컴퍼니의 정관 내용. 출처= 한국앤컴퍼니 공식 홈페이지 캡처
한국앤컴퍼니의 정관 내용. 출처= 한국앤컴퍼니 공식 홈페이지 캡처

그룹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의 회사 정관을 살펴볼 때도 조현범 회장을 이번 방식으로 선임하는 것에 대해 문제삼을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한국앤컴퍼니가 지난 3월 배포한 한국앤컴퍼니 회사 정관 제37조(대표이사 등의 선임)에는 ‘본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대표이사,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 약간 명을 선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정관을 살펴볼 때, 한국앤컴퍼니그룹이 조현범 회장을 앞서 대표이사로 선임할 때만 이사회 결의를 실시한 건 이율배반적인 행보다. 정관 제37조에서 대표이사와 회장 등 직책을 모두 동일선상에서 언급함에도 법적으로 의무화한 대표이사직에 대해서만 이사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지난해 11월26일 이사회를 열고 조현범 회장(당시 사장)을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현재 한국앤컴퍼니그룹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의 이사진 중에는 당초 조현범 회장과 경영 승계다툼을 벌여온 친형 조현식 고문의 추천 인사인 이한상 사외이사도 속해 있다. 이한상 사외이사는 “비지배주주의 이익을 처리해줄 인사를 찾는 것 같아 (조현식 고문의 추천에)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하는 등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포부로 사외이사에 임했다. 이한상 사외이사가 조현범 회장 선임 과정에서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이사회 결의 안 거쳐 선임

조현범 회장의 이번 선임과정은 앞서 지난 2019년 논란을 일으켰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선임 건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한 국내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2019년 4월 조원태 회장을 선임할 당시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안건만 올렸을 뿐 회장직 선임 여부까지 결의하진 않은 점으로 지적받았다.

한진칼 정관에도 한국앤컴퍼니 정관과 마찬가지로 ‘본 회사는 이사회 결의로 대표이사인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및 상무 각 약간 명을 선임할 수 있다’(제34조)는 내용의 조항이 담겼다. 다만 같은 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원태 회장을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해 사실상 회사 대표로서 지위를 인정함에 따라 논란은 일단락됐다. 조원태 회장은 이날 현재 직급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현범 회장 선임 건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삼을 소지를 찾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재계 관행에서 벗어나는 사례라는 점으로 업계 일각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비대면 이사회까지 열어 선임

실제 이들과 반대의 사례가 국내 존재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들을 통해 지난해 10월 비대면 경로로 임시 이사회를 열고 당시 정의선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선임하기로 의결했다. 현대차나 현대모비스 등 주력 계열사별 정관에 회장직에 대한 선임 규정이 없음에도 이사회를 개최한 점에서 한국앤컴퍼니그룹이나 한진그룹과 대조된다.

익명을 원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회사 정관 상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규정한 내용이 임의조항으로 담겨 있을 경우 이의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의미없다”며 “다만 회장과 같이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중요 직급을 부여할 주체를 (강행규정으로서) 명시하지 않은 점은 법률적 해석과는 별개로 문제 삼을만한 일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조현범 회장은 선임 과정에서의 논란 뿐 아니라 노사 갈등,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 조양래 명예회장 성년후견심판 청구 등 여러 숙제도 안고 있다.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