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해 선서하고 있는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의 모습. 출처=국회의사중계 갈무리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갈 길이 바쁜 와중에 각종 논란에 휘말리면서다. 최근에는 군사기밀 유출 의혹까지 불거지며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에 놓여있다. 

한영석 사장, 2년 연속 국감 출두… 협력사 갑질·산재 사망 등 질타

8일 한영석 현대중공업 회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공정위의 기술탈취 논란 결정과 관련 “공정위의 판단을 존중한다. 하지만 공정위 판단은 저희랑 다르다. (저희는) 기술탈취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해석의 차이다”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에 관한 질의와 질타가 이뤄졌다. 지난해부터 현대중공업은 하도급 갑질에 따라 잇따른 과징금 폭탄을 맞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7월 공정위가 현대중공업이 협력업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술자료 유용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9억70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판단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다.

뒤이어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난해와 올해 비슷한 상황으로 오게 됐다. 공정위 처분에 대해 불복하고 소송하는 등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내년에 또 올 생각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한 사장은 “내년에 또 부르면 또 오겠다”고도 말했다. 공정위의 판정에 대해 사실상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셈이다.

또한 이날 정무위 국감에서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임금 미지급은 하도급업체들을 죽이는 행위다. 법 위반 업체에 대해 공정위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게 문제다”며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하도급 위반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208억원의 과징금을 받았지만 그해 매출 15조1000억원을 냈다. 단가 후려치기로 버는 돈이 더 많다는 말이다. 처벌을 강화하는 하도급법 개정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감에서 현대중공업이 마주한 문제는 협력사 갑질 논란만이 아니었다. 오전에 진행된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산재 사망 건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작업장에서 5명의 근로자가 사망해 곤혹을 겪고 있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현대중공업은 1974년 설립 이후 46년간 467명의 원하청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는 매월 1명이 사망한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고용부 특별근로감독을 받은 바로 다음날 바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근로감독관이 지적한 곳이었다. 현대중공업이 시정조치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현대중공업은 매년 조직개편으로 꼬리자르기를 하는가 하면 돈으로 떼우는 등 알맹이 없는 대책으로 꼼수만 부리고 있다. 고용부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며 “2022년까지 문재인 정부가 산재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한만큼 법적 처벌을 확실히 해 달라”고 촉구했다. 

▲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왼쪽)이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출처=국회의사중계 갈무리
▲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제시한 자료. 출처=국회의사중계 갈무리

현대重, 갈 길 바쁜데… 노사 갈등에 군사기밀 유출 의혹까지

현대중공업은 국정감사의 단골손님이라 봐도 무방하다. 현대중공업은 4년 내리 고위 임직원들이 국감에 출석하고 있다. 특히, 한 사장은 지난 2018년 11월 현대중공업 사장 취임 후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국감에 출두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주력사업의 부진에 이어 대우조선해양 합병 지연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노사갈등, 군사기밀 유출 의혹까지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갈 길 바쁜 현대중공업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현대중공업을 이끌고 있는 한영석 사장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로 현대중공업의 주력사업인 조선업의 부진이다. 올 들어 코로나19로 선주들의 신조 발주 심리가 축소되며 조선업은 수주절벽을 겪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기관 클락슨러시치에 따르면 올해 9월말 기준 세계 선박 수주잔량은 6806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기록했다. 지난 2003년 12월 수주 잔량 6598만CGT을 기록한 이후 17년 만에 최저 수주잔량이다. 

실제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조선계열사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은 올해 연간 수주목표 157억 달러의 25% 수준인 49억500만달러의 수주에만 성공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당기결손금은 당기순손실에 신종자본증권이자 등을 포함해 1049억원에 이른다. 부채총액도 8조246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월 야심차게 추진하고 나선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도 2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현재 국내를 비롯한 6개 국가에서의 경쟁당국 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데, 결과가 나온 것은 카자흐스탄과 싱가포르 두 곳 뿐이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들어 세 차례나 기업결합심사를 유예하는 등 합병작업에 딴지를 걸고 있다. 

노사 갈등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19년도 임금협상을 1년 5개월 넘게 마무리하지 못한 데다 올해 임단협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다. 1년 5개월간 양측이 진행한 교섭만 70차례에 달한다. 이들은 지난해 5월 말 회사의 법인(물적)분할 과정에서 빚어진 파업 참가자 1400여명 징계와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을 높고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노조는 노사 화합을 위해 고소·고발을 취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회사는 재발 방지를 위해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군사기밀 유출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7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개발 사업의 기본 설계 평가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직원들과 해군 관계자와 주요한 기밀 정보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다수의 연루자가 군사재판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단과 결정이 요구되는 가운데 한 사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날 국감장에서의 한영석 사장 발언은 잘못에 대한 인정은 피해가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며 ”동반성장실 관련해서도 과거 문제는 관여치 않는다고 말하는 등 지적된 문제에 대해 절반의 인정도 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태도로는 과거의 문제가 계속해서 거론되고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 하다”며 “이날 선시공 후계약 문제를 제외하곤 구체적이고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않은 만큼 당장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