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무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 “중국이 그동안 우리의 피를 빨아먹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의 ‘막말’이 후보 개인의 지지세력을 자극하기 위한 막말만은 아닌 듯하다. 실상은 현재의 오바마 행정부도 철저히 보호무역주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미국 상무부는 중국산 냉연강판에 사상 최대수준인 52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3월 예비 판정 때 예고했던 세율보다도 2배가 높아졌다. 상무부는 "정부 보조금 지급 등으로 미국내에서 원가이하 가격에 팔리는 중국산 철강이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미 당국은 이어 내부식성 철강 제품(도금판재류)에도 최대 45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면서 사실상 중국산 철강제품의 수입 금지를 선언했다.

세로드 브라운(민주당 오하이오) 미국 상원의원을 비롯한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한 미국 의원들이 미국 정부에 무역구제 조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상무부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중국의 철강업체들이 저가 물량 공세로 시장을 어지렵혀 미국 업체들이 피해를 봤다고 판정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자국 업체인 유에스 스틸 사가 제기한 중국의 철강 대기업 40개 사가 결탁해 기밀을 절취하고 가격을 담함했다는 진정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바오 스틸 그룹과, 허베이강철그룹, 안산강철그룹 등 주요 철강 대기업과 그 계열사들이 포함됐다. 유에스 스틸은 이들이 지난 2011년 해킹을 통해 철강 생산량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경쟁사들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러한 비난을 근거없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맞불을 놨다. 28일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 무역구제조사국은 전날 성명을 내고 “미국의 이번 조사를 단호하게 반대한다”면 WTO제소 사실을 밝혔다.

성명에는 “신중하지 못한 미국의 행동은 보호무역주의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무역을 어지럽힐 뿐 미국 철강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날 선 비판도 담겼다.

미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기로 한 것에 대해 내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상무부의 중국 철강 제품 반덤핑 관세 조치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대선과 결부해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라고 지적했다. WSJ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는 더 강화될 뿐 진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중국 철강 제품 전반에 최대 30%의 관세를 부과하는 일명 철강 ‘세이프가드’를 시행했는데, 철강 수요 업체들로 구성된 CITAC (Consuming Industries Trade Action Coalition)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20만개의 일자리와 40억 달러의 임금을 잃은 셈이 됐다. 이어 오바마 행정부도 2009년 중국산 타이어를 비롯한 중국산 제품에 이 같은 철퇴를 놓았다가 중국이 WTO에 제소해 벌금을 물어야 했다.

카토 연구소의 다니엘 피어슨은 WSJ에 "철강을 쓰는 미국 기업들이 9900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이는 미국 철강 생산업계의 산출의 16배에 달한다"면서 "또한 이들이 생산업계의 16배 가량의 노동자를 고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산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의 철강 제품 가격이 오를 것이고 그로 인해 다른 외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미국 경제의 성장이나 고용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의 철강 생산업자들은 더 높은 관세를 매기면 미국 철강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철강 생산업체들은 중국만큼 다양한 철강제품을 내놓지 못해 미국의 철강을 활용한 제조업체 중 비싸진 중국제품을 사야하는 업체도 많다.

그럼에도 오바마 정부는 11월 대선 전에 이 같은 ‘세이프가드’ 형태의 보호무역을 다시 한번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예측된다. 장기 불황으로 미국 내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감이 생겨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줄어들자 오바마 대통령이 국회에서 TPP 비준에 대한 충분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그러한 결정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에 맞서는 유력한 대선주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마저 미국의 무역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장관 시절 TPP를 추진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오리건주 경선을 앞두고 오리건주 노조와 환경단체에 “TPP에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산업보호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국 철강업체 담합 조사에 대한 최종 결정은 다음달 30일 미국 ITC에서 내려질 예정이다. ITC가 유에스 스틸의 진정을 인정하면 중국 철강제품의 미국 반입을 금지하는 수입 배제명령(exclusion order)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ITC는 미국 관세법 337조에 의해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한 조사 및 이에 따른 수입금지 명령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관세법 337조를 이용한 제소는 이례적인 것으로 보이며, 그간 미국 철강업계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제소보다 강력한 조치다.

세계적인 철강 과잉생산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고 언급될 만큼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만난 미국, 일본 등 G7 정상들은 27일  선언문에서 "보조금과 각종 지원 철폐를 위해 공조하는 등 시장 기능을 강화하자”며 중국의 철강 덤핑 수출을 제동을 가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중국은 2020년까지 연간 철강 생산량을 1억~1억5000만 톤 줄이기로 했다. 그렇다해도  중국 내 수요 7억 톤을 여전히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최근 철강 선물 가격 급등으로 생산량이 슬그머니 늘고 있다. 지난 4월 중국의 하루 평균 철강 생산량은 사상 최고치인 231만4000 톤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