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역대 정부는 헌법상 4대 의무의 하나인 ‘병역의 의무’에 관한 한 상당한 개입을 해왔다. 다양한 목적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병역의무 면제’ 카드를 사용해왔다.

지금도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운동선수의 병역을 면제시켜주고, 문과나 정경계열은 불가하지만 이공계 석·박사라면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산업체나 연구기관에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거나 일부는 학업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를 ‘병역특례’라고 불렀다. 특혜라는 이미지가 부각된 명칭이었다. 지금은 대체복무라는 중립적 단어로 바꿔 쓴다. 대체복무요원은 두 종류가 있다. 산업체에서 일하며 군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능요원과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계속해도 병역을 이행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전문연구요원이 있다.

전환복무 제도도 있다. 전환복무요원은 의무경찰과 의무소방원으로 구성된다. 대체복무요원처럼 민간영역에서 병역을 이행하더라도 전환복무는 병역만큼이나 고된 업무에 투입된다.

17일 국방부는 대체복무· 전환복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예술·체육 특기자들에 대한 병역특혜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주된 이유는 군대갈 병력 자원의 부족. 군은 2000년 초반부터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오는 2020년대에는 병력 자원이 급감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현재 20세 남자는 35만명 수준이지만 2020년 쯤에는 25만명으로 10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현재 전체 병력수를 감축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시행 중이다. 기본골격은 현재 63만명 수준인 병력을 2022년까지 52만명 수준으로 줄이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병력 감축 속도에 비해 병력 자원의 감소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2020년 이후 매년 병력 자원 2만∼3만명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다.

현재 대체복무·전환복무 요원은 연간 2만8,000명 정도 선발된다. 국방부는 2020년 이후 이 들을 모두 현역 자원으로 전환할 경우 병력 자원의 부족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전환복무요원을 대략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2023년에는 더 이상 병특 요원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선발 인원을 2019년 4000명에서 매년 1000명씩 감축하며, 전문연구요원은 2020년부터 한해 500명씩 줄일 생각이다.

특히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에 대해서는 일정을 앞당겨 오는 2019년부터 뽑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경우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은 1,000명 선이다. 이 부문을 조기폐지하려는 것은 특혜시비 때문이라고 한다.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으로 선발되면, 이공계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하던 공부를 3년간 계속 하기만 해도 병역을 마친 것으로 인정해준다. 이 때문에 개인의 학업이 병역이행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고,이공계 대학원생들이 병역문제 해결을 위해 전문연구요원 시험공부에만 매달려 학습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아직 예술·체육 특기자들에 대한 병역특혜 제도의 폐지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군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국위가 선양된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올림픽 메달 수가 많다고 국격이 높아지거나 수출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희박해졌다”고 말했다. 예술·체육 특기자에 대한 병특 폐지의 배경으로 국민의식 자체가 많이 바뀐 점을 든 것이다.

한편 국방부의 병특 폐지 움직임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간 병역지정업체로 선정되면 저비용으로도 우수 인재를 활용할 수 있었던 중소·벤처기업들은 개발인력 확보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과학기술계는 이공계 병특제도가 폐지되면 우수인재들이 연구공백과 경력단절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단체행동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19일에는 전국 이공계 대학 학생회 대표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측은 국가 연구개발 역량에 큰 역할을 하는 제도인 만큼 존속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도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경과 의무소방원은 연간 1만6700명 선발되고 있다. 만약 전환복무제도가 폐지될 경우 경찰과 소방당국은 그만한 인력을 직접 채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상당한 예산 증액이 전제되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대체복무와 전환복무 제도의 폐지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최대한 충격 완화를 위해 유관 부처와 충분한 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