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은 마치 유명 연예인처럼 시장의 주목을 받는다. 또한 신시대를 열 것처럼 시장을 정신없이 흔들기도 한다. 이에 반해 늘 조용하고 시장의 이목을 받지 못하는 ‘무명’(無名) 같은 산업이 있다. 바로 종자산업이다. 첨단 시대가 열릴수록 종자산업은 더욱 외면받는다. 그러나 종자산업의 경쟁은 시장의 관심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인간의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식량 주권’을 보장하는 종자 산업은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그 가운데 국내 종자기업을 대표하는 농우바이오는 외롭게 ‘마이웨이’(My Way)를 외치며 전진하고 있다.

종자산업의 국내 총시장규모는 지난 1995년 1100억원, 1996년 120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7년 국내 금융위기를 전후로 외국 자본에 의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당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과도한 가격경쟁이 시작됐으며 이후 오히려 시장 규모는 축소되기도 했다. 현재는 약 1500억원 정도로 추정되고 있으며 20년간의 기간수익률로 따지면 연평균 성장률(복리기준)은 1.1%에 지나지 않는 ‘저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종자산업은 시장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 모든 경제와 산업은 마치 시험을 마치고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성장’에 목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자산업은 성장가치가 없는 것일까.

국제종자협회(ISF)에 따르면 세계 종자 시장 규모는 지난 2002년 247억달러에서 2012년 449억달러로 10년간 약 2배에 가까운 성장을 했다. 같은 기간 세계 종자 교역 규모 추이는 2배 넘게 확대됐다는 점에서 종자산업의 성장성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종자는 인류의 태동과 함께 시작된 먹거리 문화의 근원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각국이 자원화할 만큼 중요성이 큰 분야다. 과거 식민지 시대가 도래했을 때, 강대국이 식민지 국가에서 행하였던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토속 우량종자를 자국으로 가져가 개발하는 일이었다. 이는 일본에 지배를 당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국내 종자산업은 지난 1960년 정부가 배추, 양배추, 양파 교배종 품종들의 양친을 민간 종묘회사에 분양, 민간 육종 근대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종자산업은 여전히 열악하다.

한국종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총 50개 종묘회사가 국내에서 무, 배추, 고추, 수박 등의 채소 종자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묘회사는 영세해 자체 품종 개발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체 육종시설과 연구능력을 가진 기업 중 국내 업체로는 농우바이오, 동부팜한농이며 해외 기업은 사카다, 신젠타, 코레곤 등이며 이들 5개사가 국내 전체 종자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최근 LG화학은 국내 종자기업인 동부팜한농 인수를 발표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화학기업이 종자 기업을 인수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사실 종자는 모든 첨단산업의 근간이라는 점이 그 중요성을 말해준다.

또한 종자산업은 타 산업과는 달리 씨앗이라는 생물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하나의 신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최초 육성재료 수집부터 최종 생산력 검정 및 농가 실증실험을 통해 농가에 보급할 때까지 기간이 8~10년 정도 소요된다. 또한 개발된 종자의 매출 수명기간이 2~5년 정도로 다른 공산품의 수명보다 짧다. 우습게 보일지 모르는 종자산업은 육성 소재 확보 및 기술 노하우 없이 쉽게 뛰어들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어떤 산업보다 위대한 산업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외롭게 전진하는 농우바이오

▲ 출처:SK증권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내 종자기업들이 외국 다국적 기업에 M&A됐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업이자 현재 국내 종자산업을 대표하는 업체가 있다. 바로 농우바이오다.

농우바이오는 1967년 창업주인 故고선희 회장이 채소종자 소매업을 시작한 것이 모태가 됐다. 이후 종자업의 지속적 성장과 함께 1981년 농우종묘가 설립됐으며 2001년에는 농우바이오로 회사명을 바꾸고 R&D에 집중투자하기 시작하면서 종자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다.

농우바이오는 채소종자 부문의 강자다. 한국바이오안전성정보센터에 따르면 농우바이오는 전 세계 채소종자기업 중 13~14위 정도에 있다. 농우바이오는 약 10년 전부터 국내 종자 시장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며 지난 2015년 기준 약 30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리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연구개발(R&D)비용이 매출의 16%를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기반 기술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회사 규모 대비 기술적으로는 아시아 톱(Top) 수준이며 충분한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농우바이오는 여러 분자육종 관련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하면서 다국적 기업처럼 유전자변형생물체(GMO) 개발 연구도 15년 정도 수행했다. 채소종자에 주력하는 만큼 주로 채소 GM 종자 개발 연구를 함으로써 기술적으로는 고추를 포함해 10개 채소작물의 GMO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GM 고추를 개발하는 기술은 세계에서 농우바이오가 유일하게 국제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GMO 분야의 대표 종자는 해충 저항성 GM 양배추와 가뭄에 저항하는 GM 박 대목 등이 있다. GM 양배추는 배추좀나방에 저항하는 양배추이며 저항성 덕분에 피해가 없었으나 일반 비형질전환체는 배추좀나방에 의해 큰 피해를 입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GM 박 대목은 13일 동안 물이 없어도 생육할 수 있는 내성을 갖고 있었으며 수분이 공급되면 바로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반면 같은 조건일 경우 일반 박은 7일 동안 물을 공급하지 않으면 물을 공급해도 소생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점은 최근 농우바이오가 GMO 연구개발 사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먹는 채소에 대한 GMO 거부가 강하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농우바이오는 오는 2020년 채소종자기업으로 글로벌 톱 10에 진입과 종자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묵묵히 외로운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외로운 길을 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더 이상 외로울 것도 없다는 점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셈이다.

 

종자에 대한 관심, 전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까

한국 종자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종자 자체에 대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우수한 국내 기업들이 성장해 종자 강국의 명성을 드높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앞서 언급한 LG화학의 동부팜한농 인수 소식은 상당히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기업이 종자산업까지 손을 뻗는 것이냐는 부정적 인식이 작용할 수 있지만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종자 수출로 인한 로열티를 고려하면 대기업의 종자산업 진출에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CJ제일제당도 지난해 3월 농산물 우수 종자 개발을 위한 전문 법인인 CJ브리딩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종자의 품종에 대한 기초연구는 학계와 정부 기관이 수행하고 시험재배 단계의 연구개발은 CJ브리딩이 담당한다. 확대재배는 농민이 담당하는 구조로 기업과 학계, 농민이 협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상생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직 한국의 종자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그 규모가 미미하다. 하지만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한 단계 퇴보한 국내 종자산업이 현재 수준까지 올라선 것은 분명 종자산업의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외로웠던 한국의 종자산업은 더 이상 외롭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