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재난로봇경진대회에서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팀의 휴보가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대회는 세계 각국에서 23개 팀이 재난현장에서 대처하는 능력을 뽐냈다. 도전 과제는 차량 운전하기, 차에서 내리기, 문 열고 들어가기, 밸브 돌리기, 드릴로 구멍 뚫기, 돌발 미션, 장애물 돌파하기, 계단 오르기 등 8개 과제로 60분 이내에 가장 빨리 임무를 완수한 팀에게 우승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8개 과제를 모두 완수한 팀은 참가팀 중에서 단지 3팀뿐이었다. 임무를 완수하는 시간을 경합하지 못하고 개별 임무를 몇 가지나 수행했느냐가 더 관심사였다. 참가 로봇들의 움직임이 매우 느리고 균형감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움직이는 자율로봇의 기술 수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영화에서 보는 로봇은 인간보다 월등한 지력(智力)과 완력(腕力)을 갖추고 있다. 많은 로봇 연구팀들이 자랑삼아 매스컴 등에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자유롭게 춤도 추고 공도 차고 대화도 나누는 묘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 들통 난 로봇의 진짜 실력은 어눌한 동작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장난감 수준이었다. 경주 코스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로봇의 동작을 미리 설정하지지 못했고, 따라서 로봇이 스스로 입력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만 대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로봇이 정확한 판단 없이 움직이다 보니 무게 중심이 흐트러져 넘어지기 일쑤였다. 많은 로봇들이 임무 수행 중에 앞뒤로 넘어져서 넘어진 충격으로 부서지는 수모를 겪었다. 로봇에게 주어진 시간이 60분이었지만 사람이라면 아마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만한 일들이다. 이번 우승은 로봇의 기계적 작동 능력보다 소프트웨어적 판단 능력이 더 우수한 로봇에게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카이스트 팀은 소프트웨어적으로 다양한 위기 대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카이스트 휴보의 소프트웨어적 판단 능력이 빼어났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급속히 증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다. 수집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원하는 지식을 뽑아내는 기술을 빅데이터 기술이라고 통칭한다. 예를 들면 우주망원경에서 수집한 방대한 별들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는 디지털 천체분석기술, 엄청난 거래 정보를 수집하여 고객별로 상품을 추천해주는 아마존의 서비스기술, 개인별로 검색한 이력을 근거로 맞춤 검색 정보를 제공해 주는 구글의 맞춤검색기술, 선거판에서 지지자를 선별하여 공략한 오바마 대통령진의 선거유세기술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빅데이터 활용 사례다.
빅테이터는 우리가 직면한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더욱 더 중요해진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빅데이터 기술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데이터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뽑아내는 기술이다. 방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다음에 발생할 상황 변화를 예측하는 일이나 연관된 다른 현상을 추정해 보는 기술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수집할 때부터 아예 자동으로 가공되도록 하는 스마트 데이터 기술이 더 중요하다. 스마트 데이터란 의미를 쉽게 알려주는 데이터다. 예를 들면 주간 매출을 알려주는 데이터라면 매출액을 나타내는 숫자들을 시계열상에 길게 나열하는 것보다, 시간 구간마다 매출량이 들쑥날쑥 변하는 모습을 그래프로 표현해주면 쉽게 변화를 알 수 있다. 스마트 데이터는 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의미 없는 숫자들에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을 뽑아내 주는 알고리즘이 핵심이다. 아무리 복잡한 데이터를 통계 처리해도 실용적인 메시지가 없는 분석 결과는 쓸모가 없다. 만약 상황이 시급하게 변해가는 상황이라면 한가하게 축적된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할 여유가 없다. 수초만 분석이 지연되어도 상황이 뒤바뀌거나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 채널4에서 새로 시작한 공상과학 드라마 <Humans>에 등장하는 합성로봇 도우미https://www.youtube.com/watch?v=9zYQjR0wvxM
패스트 데이터의 지능처리기술이 핵심이다.
패스트(Fast) 데이터는 발생한 데이터의 양이 마치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내듯이 많다고 해서 전문가들은 ‘소방호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워낙 많은 데이터가 한꺼번에 스쳐가므로 데이터가 발생하는 순간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을 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다양한 데이터 소스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복잡한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대응하는 CEP(Complex Event Processing)기술은 패스트 데이터를 처리하는 기술이다. 마치 동물의 시각정보 처리 시스템과 같다. 보는 즉시 두뇌가 이미지를 인지한다. 시각정보 처리능력은 동물에 따라 물론 다르다. 예를 들면 파리 같은 곤충은 통상 250㎐, 즉 1초에 250개 동작을 구분할 수 있다. 사람은 60㎐로 1초에 60개 동작을 구분한다. 그래서 사람의 움직임을 파리가 보면 매우 동작이 느리다고 본다. 파리나 모기를 손으로 때려잡으려 해도 모기나 파리의 시각에서는 사람의 손동작이 너무 느리기 때문에 쉽게 피할 수 있다. 유명했던 방송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도민준이 세상의 시계를 멈추게 하고 재빠르게 차에 치일 뻔한 소녀를 구해내는 장면을 연출했던 과학적 배경은 외계에서 온 그가 1초를 수백 토막으로 쪼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그는 남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는 짧은 순간에 모든 일을 해치우는 순간이동 능력을 보여줬다. 사람도 재빠르게 움직인다면 15㎐의 시간분해능력을 가진 거북이에겐 순간이동능력이 있다고 보인다.
동물에 따라서 이미지 감지 속도가 다르듯이 데이터의 의미를 포착하는 속도는 용도에 따라서 달라져야만 한다. 예를 들면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일은 1년에 한 번 정도 하면 된다. 반면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라면 사람처럼 1초에도 수십 번씩 주변의 변화를 판단해야 한다. DARPA가 원하는 재난 대응 로봇이라면 적어도 수초에 한 번씩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2015년 재난로봇경연에 참가한 로봇들의 동작은 수십 초(秒) 내지 수분(分)에 한 번씩 주변을 파악하는 듯 보였다. 공상과학영화 속 로봇처럼 빠르게 움직이려면 적어도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주변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데이터 입력을 이미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인식도 멀티프로세싱이 가능한 인지형 컴퓨터가 아니곤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 그런 면에서 움직이는 로봇이 자율적으로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2020년대 중반은 넘어서야 할 듯하다.
복잡계 시스템의 복원력은 CEP 기술에 달렸다.
데이터 분석 능력은 모든 일상사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최근 퍼진 메르스 바이러스만 해도 초기에 전염병이 퍼지는 속도에 비해 방역본부의 초기 대응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중동에서처럼 환자 1명당 0.6~0.7명 정도로 느리게 퍼졌다면 쉽게 제압이 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중동과 달리 대한민국은 인구 밀도가 높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은 곳이다. 슈퍼 전파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이 밀집한 곳에서 병원균이 퍼지면 슈퍼 전파력을 갖게 된다. 바이러스가 1대 1로 전파되지 않고 환자 한 명에서부터 한꺼번에 수십 명에게 전파되는 일이 가능하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병원 응급실에 바이러스를 심하게 뿜어낸 환자가 있었다면 슈퍼 전파력을 갖는 건 당연하다. 이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하는 길은 바이러스가 퍼질 지점을 미리 알아서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수밖에 없다. 메르스 의심 환자와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을 바이러스 잠복기 동안 일단 격리시키는 방법이 전염병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기업의 비즈니스에서도 데이터 경영이 매우 중요하다. 빅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추라면 흔히 데이터를 저장하는 복잡한 저장시스템을 떠올린다. 하지만 데이터 저장은 데이터가 어떤 역사적 기록을 필요로 할 때나 의미가 있다. 고객과 접촉하는 최전방 매장이나 기술 서비스 부문에서 감지한 정보라면 실시간으로 분석되어 생산과 경영에 바로 반영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위기 신호가 발생하면 그 즉시 발동시킬 위기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 데이터가 발생하는 순간에 통찰력을 제시해야 한다. 기업마다 아무리 극심한 위기가 닥쳐도 바로 회복할 수 있는 CEP 대응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의사 결정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 처리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업이나 국가의 시스템 복원이 지연되게 된다.
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채널 4의 새로운 드라마 <Humans>는 합성인간 로봇이 인간 생활의 각종 잡일을 도맡으며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다룬다. 예고편을 보면 인간형 로봇에 대해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패턴을 미리 정할 수 없는 잡일들은 로봇이 처리하기 가장 어려운 일이다. 움직이는 로봇의 시각정보 처리 능력이 인간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는 잡일을 맡기 어렵다고 믿는다. <언제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을까>의 저자 앤토니 버글라스(Anthony Berglas) 박사는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인 왓슨의 지능을 IQ 30도 안된다고 평가한다. 2020년대 후반에나 가능하다고 보는 완전 자율운전차량의 지능도 IQ 40 정도면 가능하다고 본다.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합성인간 로봇같이 집안 가사 일을 도맡으려면 적어도 보통 사람의 지능에 해당하는 IQ 100 정도는 되어야 한다. 지금 판단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