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의 마지막 주말, 오래전부터 계획돼 있던 약속 때문에 코네티컷으로 향했다.

원래 약속이 월요일 오전으로 잡혀있었는데 뉴욕에서 코네티컷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데다 눈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상예보를 듣고 주말인 일요일에 기차를 타고 미리 가기로 했다.

뉴스 기상예보는 기차표를 예매할 때만 해도 주말 즈음해서 눈이 올 것이라는 정도였다.

이번 겨울에 뉴욕은 눈 예보가 많았지만, 실제로 눈이 내린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기상예보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상예보에서 전하는 내용이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눈이 온다더니 며칠 후에는 큰 눈이 예상된다고 말이 바뀌었고, 출발해야 하는 주말이 다가올 때쯤에는 눈 폭풍(블리자드)이 예상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뉴욕과 코네티컷 등 무려 7개 주에서 블리자드가 예상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눈 폭풍에서 눈 폭풍을 뚫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걱정이 깊어질 무렵 뉴욕주 쿠오모 주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상 최악의 눈 폭풍을 예상해야 한다’면서 ‘안이하게 생각하지 말고 준비해달라’고 당부했다.

스스로가 ‘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됐지만, 코네티컷에서 일을 마치는 대로 돌아오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밤늦게 올 거라던 눈은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바람도 세게 불어서 얼굴이 따가울 정도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코네티컷에서는 오후부터 도로 운전도 금지한다는 공지까지 나오자 마음이 더욱 바빠져 점심시간도 건너뛰고 예정된 회의를 연달아 마친 후 서둘러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과 함께 있는 버스터미널에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가는 모든 버스가 취소됐다고 전광판에 표시돼 있었다.

다행히 기차는 30분 정도 지연된 것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으로 운행했다.

그렇게 밤에 도착한 뉴욕은 마치 버려진 도시처럼 황량했다.

밤 11시부터는 응급차나 경찰차와 같은 비상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운행이 금지됐고, 지하철은 평일이 아닌 주말 기준으로 운행이 줄어들었으며 뉴욕시의 모든 공원은 입장이 금지됐다.

‘비상 상황이 아닌 한’ 이동을 삼가라는 경고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머무르거나 인근 상점으로 몰려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눈으로 뒤덮인 도로를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걸어서 도착한 상점에는 비상용으로 사려고 했던 빵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피자나 햄버거 등의 냉동식품도 냉장고 안을 텅 비워버린 채 1~2개만 남아있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공립학교들은 모두 오후 일찍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을 하교시켰으며, 화요일에는 모두 휴교령이 내려졌다.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상점을 제외한 대규모의 회사들은 대부분 화요일에 문을 닫았고, 전날인 월요일에도 오후 일찍 문을 닫았다.

밤사이에 엄청난 눈과 바람이 불 거라는 기상예보는 천만다행으로 뉴욕을 빗겨나갔다.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눈보라가 동쪽으로 치우치면서 뉴욕시 대부분은 25cm 정도의 눈이 오는 데 그쳤고, ‘최고 90cm’라는 최악의 상황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상보다 약한 눈 폭풍의 결과에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기상예보의 부정확함에 불만을 토했다.

밤사이 중단됐던 지하철 운행이 시작되자 눈이 쌓인 곳을 찾아서 사진을 찍거나 눈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나와 자동차가 한적한 도로에서 눈썰매를 타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30km 거리인 롱아일랜드에서는 70cm가 넘는 눈이 쌓였고, 뉴잉글랜드 지역인 매사추세츠주는 예보가 맞아떨어지면서 사상 최악의 눈 폭풍을 맞았다.

보스턴 지역은 화요일 하루에 90cm의 눈이 쌓이면서 예보가 딱 맞아떨어졌고 과거 하루 최대 적설량인 22cm 기록을 멀찌감치 제쳤다.

눈 폭풍의 여파로 낸터켓 섬은 전체의 전기가 끊겼고, 마쉬필드 지역은 방파제가 무너지면서 주택가로 물이 밀려들어 수백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빚었다.

정부의 비상대책이 너무 과도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빌 드 빌라시오 뉴욕시장과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모두 ‘조심하는 편이 낫다’고 밝혔는데, 안전불감증이 문제인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지나친 안전염려증을 조금은 닮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맨해튼 컬처기행

영화 <투모로우>의 촬영지 뉴욕 공공도서관

 

 

뉴욕에 눈 폭풍이 예고되고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자 뉴욕 맨해튼을 찾은 관광객들은 열심히 관광명소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한적한 타임스퀘어에서 눈보라를 맞으면서 점프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눈보라 속 뉴욕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내뱉은 말은 재밌게도 ‘영화 <투모로우>를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온난화 현상이 빨라지면서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의 영화 <투모로우>에는 퀴즈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온 샘이 급작스레 빙하기가 찾아온 뉴욕 맨해튼에서 친구들과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갑자기 녹은 빙하로 인해 섬인 맨해튼에는 쓰나미가 밀려들고 사람들은 정신없이 높은 곳을 향해 뛰어든다.

샘은 기후학자인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뉴욕 공공도서관으로 피한다.

급작스러운 기온의 변화는 맨해튼을 눈으로 뒤덮고 도서관에 피신한 이들은 책을 불태워 체온을 유지하면서 구조대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맨해튼이 눈에 파묻히고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든 손만 남긴 채 모두 눈에 묻힌 장면이 이번 눈 폭풍 사태를 통해 상기된 것이다.

이 영화에 등장한 뉴욕 공공도서관은 1895년에 설립되었으며 무려 1000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1911년 일반에 개방된 이후 현재는 연간 1600만명의 사람들이 뉴욕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뉴욕의 명소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