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사외이사…회의하고 억대 연봉

국내의 대기업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명망 높고 능력 있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모셔오려고 한다. 하지만 이른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고 능력 있는 인사’는 그 수가 한정돼 있다 보니 많은 기업들이 서로 이들을 모시기 위해 안달이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명망 높은 인사’들의 사외이사 겸직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가 20대 재벌그룹의 30개 기업의 사외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직 관료, 기업인, 대학교수, 시민단체 관계자 등 무려 20명이 넘는 인사가 2개 기업의 사외이사 직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국내 20대그룹 주요기업의 사외이사 연평균 보수가 7000만원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사외이사로만 ‘억대 연봉자’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상공회의소(AMCHAM) 회장이 포스코와 두산, 최열 전 환경연합 사무총장이 기아자동차와 현대산업개발, 강찬수 전 서울증권 사장이 KB금융지주와 SK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사외이사 ‘단골손님’인 교수들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하이닉스반도체와 기아차, 박오수 서울대 교수는 삼성전자와 대한항공, 신희택 서울대 교수는 두산인프라코어와 우리금융지주, 예종석 한양대 교수는 두산과 제일모직, 한인구 국민대 교수는 LG디스플레이와 SK에너지의 사외이사다.
전체 상장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겸직’ 사외이사는 크게 늘어난다. 지난해 4월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내놓은 ‘주권 및 코스닥 시장 상장법인 사외이사 선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개 상장회사에 겸직하고 있는 사외이사는 모두 208명에 달했다.
더구나 비상장회사는 겸직 제한이 없어 본인의 의사와 능력만 있다면 10개를 맡는 것도 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는 현직 사외이사 가운데 상당수가 이전에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은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로 옮겨가거나 동종업계의 2개 기업에서 사외이사로 일하는 사례도 있다. 이해충돌 가능성과 함께 ‘자기들끼리 자리를 바꿔가며 사외이사를 독식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업들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 사외이사제의 역사가 일천해 인재풀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경영 판단의 중요한 파트너여서 아무나 앉힐 수도 없고 이 기준, 저 기준을 들이대다 보면 결국 다른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하는 분이 눈에 띄게 된다는 것이다.
해답은 사외이사의 인재풀을 다양화하는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권용준 경희대 교수는 “많은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세운 분들이 있지만 그들 대다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사외이사 선임에서 외면받고 있다”면서 “편향적인 인사들이 아니라 시민단체나 학계 등에서 확실히 검증된 경력을 쌓아온 인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 사외이사 연봉 가장 많아
한편 사외이사 연봉의 경우 <이코노믹 리뷰〉가 국내 20대 그룹의 30개 주력기업의 반기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들의 사외이사들은 1인당 평균 4970만원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 보수가 가장 높은 곳은 현대자동차로 연간 평균 보수가 8700만원에 달했다. 현대자동차에 이어 사외이사 보수를 많이 지급한 기업은 SK텔레콤으로 7700만원이었다. 또 시가총액 순위 1위인 삼성전자는 1인당 6141만원을 지급했으며 LG전자 사외이사는 연간 7250만원을 받았다.
이 밖에 삼성중공업, 삼성물산 등은 1인당 사외이사 비용이 6000만원을 넘었고 두산중공업, (주)CJ 등의 기업도 5000만원이 넘는 사외이사 비용을 지출했다.
이처럼 높은 보수 수준에도 사외이사들이 대주주와 경영진 견제 및 주주가치를 높이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가 655개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사외이사의 이사회 참석률(2007년 말 기준)을 조사한 결과 72.0%로 조사됐다. 이 중 100% 참석률을 기록한 회사는 SKC, 녹십자홀딩스 등 182개사(27.8%)이며 참석률이 0%인 기업은 19개사(2.9%)였다. 특히 외국인 사외이사의 이사회 출석률은 49.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사외이사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와 보상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공시 등을 보면 사외이사들이 받는 평균액수만 나와 있고 스톡옵션 등에 대한 사항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사외이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를 명문화해 사외이사 평가규정을 투명화하는 기업이 늘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사외이사들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주주대표소송, 집단소송 등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형구 기자 (lhg0544@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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