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업계의 글로벌화가 본격화 되고 있다. ‘제약 르네상스 원년’으로 불리는 올해는 무엇보다 제약산업 글로벌화를 촉진시키는 다양한 지원방안들도 추진될 예정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해외시장 공략을 통해 약값인하와 리베이트 규제 등으로 위축된 국내 시장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지난 4일 일동제약이 베트남 현지 사무소를 개설했다. 현지 마케팅을 통해 지역사정에 맞는 시장조사와 유통경로 확대 등을 추진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일동제약은 이곳을 통해 이미 국내에선 성공을 거둔 비오비타, 아로나민 등의 일반 의약품을 비롯해 항암제, 항고지혈증제, 항당뇨제 등의 전문 의약품과 의약원료 등을 내세워 시장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대웅제약은 지난 7일 글로벌 연구개발(R&D)분야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에서 임원급 인사를 영입했다. 유한양행 신약연구실장과 대웅제약 생명과학연구소장, SK케미칼 생명과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이봉용 연구본부장과 생명공학 분야에서 20년 가까운 연구경력을 보유한 바이오테크 전문가인 박흥록 바이오연구소장이다. 올해 ‘R&D 성과 도출로 글로벌 기업 도약’을 핵심 경영목표로 설정한 대웅제약의 연구역량 강화 전략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제약사들의 글로벌 행보가 본격화 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기존 국내 시장에서 안정성과 효과에 있어 소비자들로부터 우수성을 입증을 받은 대표제품이나 이미 세계 시장 곳곳을 석권한 다국적 기업에 맞서도 전혀 손색없는 신약개발 등을 내세워 미국과 유럽 위주의 세계 제약시장의 기존 판도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화는 최근 2~3년 사이에 국내 제약업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초미의 화두로 떠올랐다. 약가합리화를 위한 제네릭 의약품 가격의 일괄 인하(14%)와 리베이트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도입된 쌍벌제 시행 등으로 제약업계는 영업적 측면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최근 경기불황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규제의 울타리에서 성장한 제약업계는 최근 그들을 옥죄는 내수 상황을 극복하면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장하기 위해선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방안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지만 최근 약품가격 일괄인하와 쌍벌제 시행으로 규제를 받으면서 영업활동에 제약이 따른다고 판단한 제약사들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동아·보령 등 중남미 시장 잠재력 큰 지역 공략
최근 제약사들은 해외 시장 진출을 제1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현지화를 통해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특히 중남미 진출이 활발하다.
한 제약사 임원은 “중남미 시장은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의약품 수요도 높아 잠재력이 있는 시장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지주회사로 본격 출범한 동아제약(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 2월 브라질 상파울루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나섰다.
브라질 법인은 미국(동아아메리카)과 중국(소주동아음료유한공사)에 이어 설립된 해외법인으로 현지 투자 계획 수립, 신사업개발, 동아제약의 ETC(전문의약품), OTC(일반의약품), 박카스 등의 수출을 위한 제품 등록 및 인허가 업무와 마케팅·판매 등을 담당한다. 장기적으로는 동아제약의 라틴아메리카 시장을 총괄하는 본부 역할을 수행 한다. 지난 10년간 브라질 현지 파트너사를 통해 연 100억 원 규모의 제품 수출을 해온 동아제약은 이번 법인 설립으로 수출품목 확대를 통한 매출액 증대뿐만 아니라 현재 보유중인 제품의 현지 임상을 추진함으로써 향후 브라질 내에서 직접 출시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브라질은 인구 약 1억9000만 명의 세계 7위 경제 대국으로 매년 제약시장 규모가 급성장해 국내 제약사들의 진출이 늘고 있는 지역이다. 2012년에는 시장규모가 26조원을 초과 했으며 2016년까지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5위의 제약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제약사들의 관심과 진출이 집중되고 있다.
보령제약도 브라질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아쉐(Ashe)사와 고혈압신약 ‘카나브’ 단일제 및 복합제에 대한 수출 계약을 성사시켜 올해부터 향후 5년간 4000만 달러에 달하는 제품을 수출한다. 아쉐사는 브라질 제약업계 1위 기업으로 ETC 시장 1위, 심혈관 시장 4위의 탄탄한 영업력을 구축하고 매출규모가 약 1조 2억원에 이른다.
카나브는 혈압상승이 원인이 되는 효소가 수용체와 결합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물로 다국적 제약사가 주도하고 있는 국내 고혈압시장에서 발매 8개월 만에 1억원을 돌파하는 등의 성공을 경험삼아 올해부터 브라질 시장을 비롯해 중남미 13개국과도 총 3000만 달러 규모로 수출이 이뤄진다. 보령제약은 역시 지난해 멕시코 의약 전문 기업인 스텐달(Stendhal)사와 멕시코를 비롯한 콜롬비아, 파나마 등 중남미 13개국과 카나브 단일제 독점 판매 및 완제품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대웅·동국 제품력과 전략적 M&A로 승부수
제약사들은 중남미와 같은 공략지역을 선점하는 전략 외에도 국내 시장에서 오랫동안 노하우를 쌓아온 제품력으로 승부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또한 제약업에 대한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가진 글로벌 제약사와의 M&A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전략도 국내 제약사들의 해외진출에 탄력을 제공한다.
대웅제약은 50여 년간 꾸준하게 건강관리제로 입지를 다져온 우루사를 내세워 세계 시장 곳곳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10년 중국과 베트남을 기점으로 아시아 시장 공략은 물론, 오는 2015년 미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된 후 대웅제약은 우루사를 더욱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월드클래스 300은 매출액 1조원 미만 중견 기업 중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업체를 2020년까지 정부가 집중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대웅제약은 우루사의 미국진출을 목표로 생산설비 요건을 갖추기 위해 cGMP 수준의 전용공장 구축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효능과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발표된 UDCA관련 논문 200여편을 집대성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동국제약은 지난해 2월 글로벌 기업 3M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그동안 전자제품, 통신기기, 사무용품 및 의료·치과용품 등에 다양한 제품라인을 보유해왔던 3M이 의료사업부가 성장동력으로 치주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을 밝히면서 성사됐다. 잇몸약 인사돌로 국내시장을 다져온 동국제약이 치주분야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다국적 제약사와 전략적 M&A와 공동수출계약은 국내 제약사들이 해외 시장 개척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꼽힌다. 지난해 근화제약과 미국 알보젠사간의 M&A와 한독과 이스라엘 타바(TAVA)사간 합작사 설립 등은 해외 제약사와 국내사간 전략적 제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밖에 동국제약처럼 시장 포트폴리오 보완을 위해서도 윈윈(win win) 제휴도 본격화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와 공동수출 계약 성사는 특히 지난해 약 2배의 수출증가율을 보였다. SK케미칼 치매패치의 경우 EU의 12개 제약사와 수출 계약을 하는 등의 성과로 이어졌고 한미약품의 아모잘탄정은 MSD와 51개국 수출계약으로 시장확대를 이룰 수 있었다.
한미·녹십자 R&D역량 강화로 글로벌화 앞장
R&D 투자규모를 확대하며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기업들도 주목된다. 한미 약품은 매년 15%에 가까운 R&D 투자율을 고수하며 글로벌 신약창출에 도전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 신약 등을 개발해 활발한 해외 임상을 진행 중이다.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중인 LAPS-Exendi(langlenatide)는 유럽에서 환자대상 단회 투여 임상을 마치고 미국에서 2차 임상에 돌입했다. 또한 차세대 표적 항암제 중심의 항암신약 파이프라인에 대한 임상도 활발하다. 미국 제약회사인 카이넥스사와 공동으로 다중 표적항암제인 KX2-391에 대한 임상을 위암과 유방암 등을 타깃으로 미국과 홍콩, 국내에서 각각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이 같은 R&D역량은 북경한미연구센터라는 글로벌 임상 전진기지로 대변된다. 2008년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북경센터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 한미약품과 함께 공동프로젝트를 비롯해 중국 내 다른 연구기관들과의 협력연구를 통해 R&D 글로벌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미약품 이관순 사장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해외임상과 북경연구센터와의 R&D 네트워크 등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한 R&D노력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며 “준비 중인 신약들을 2015년 이후부터 매년 1~2품목씩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수 있도록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2020년까지 신약 20개를 창출하고 글로벌 순위 20위권에 진입한다는 비전2020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1월 ‘건강산업의 글로벌 리더’를 이상으로 하는 새로운 미션과 비전을 선포했다. 해외법인으로 중국 안휘성 회남시에 위치한 중국 녹십자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설립된 GCAM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본격적인 중국시장 진출을 확대에 나서고 있는 녹십자는 중국 내 의약품 유통을 맡길 의약품 도매 법인 ‘안휘거린커약품판매유한공사(이하 거린커)’를 지난해 설립하기도 했다. 거린커는 녹십자가 중국에 직수출한 1000여 달러 규모의 알부민 제품을 시작으로 향후 유전자재조합 혈우병 치료제 ‘그린진 F’와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 중국진출의 가교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회사측은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에 따라 알부민 등 혈액제제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현지법인인 GCAM은 2009년 12월 설립됐다. 녹십자는 혈액원을 운영하며 일반 혈장 및 특수혈장 생산이 가능한 GCAM으로부터 미국 FDA가 보증하는 양질의 혈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음으로써 혈액제제 생산비용 절감을 물론 제품의 경쟁력 확보와 비용절감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녹십자는 자체연구소의 효율극대화, 산학협력, 해외 선진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국내외 전문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 바이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및 제휴 등을 기본 방향으로 국내외 광범위한 R&D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경기도 용인 모암타운 부지에 연면적 2만8000㎡의 R&D센터를 신축할 예정이다.
바이오약품, 백신 합성신약 등 신약개발을 위한 개별 연구시설, 생산공정 확립 및 비임상 시험용 실험물질 제조 시설과 함께 첨단 동물실험 시설, 분석 전용 시설도 마련한다.
올해는 ‘제약 르네상스 원년’ 정책도 시작이다
국내 제약업계는 금융, 유통, 제조업 등 타 부문 기업들에 비해 글로벌화가 다소 뒤늦은 감이 있다. 구미권에서 성장한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에 새 시장을 발굴하고 공략하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았고 국가산업으로 규제와 같은 정책적인 장벽도 존재했다. 화이자, 노바티스, 사노피, 로슈 등과 같은 세계적인 글로벌 제약기업이 아직까지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 이유다.
다행히도 최근 정부와 제약업계는 이 같은 한계와 현실을 개선하고 제약산업을 미래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혁신 노력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 2007년 6월 한미 FTA 발효에 대비해 제약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수립을 계기로 2009년 바이오 의약품을 신성장동력분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육성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제약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2011년 3월)되는가하면 해외수출 지원센터 설립과 혁신신약, 바이오, 개량 신약 R&D 분야 투자확대도 이뤄졌다. 특히 지난해 8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는 ‘제약산업 비전과 발전전략’이 수립됐고 오는 2020년 세계7대 제약강국 도약을 목표로 한 5대 핵심전략이 마련됐다. 과감하고 개방적인 기술혁신에 승부를 걸고 시장은 크고 투명하게 만들며 기업은 글로벌 경쟁 규모로 육성하고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뒷받침하는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올해는 이 전략들이 예산과 세법개정에 반영이 되는 해로 보건복지부는 올해를 글로벌 제약 강국으로 도약하는 ‘제약 르네상스 원년’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제약산업을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지정하고 ‘글로벌 10대 강국’을 목표로 적극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복지부가 올 1월 경 발표한 ‘2013년 제약산업 지원방안’에 따르면 올해 정부는 제약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제약기업들의 해외 M&A, 기술제휴, 현지 영업망 및 생산시설 확보자금 투자를 위한 글로벌 제약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할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약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제약기업의 해외진출과 M&A를 위한 공동투자를 목적으로 우량기업과 국민연금 공동투자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5월 동아제약은 투자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해외 기술개발 지금 지원을 강화한다. 신약, 바이오, 시밀러의 해외 임상3상 소요자금에 최대 100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정책금융지원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M&A기업에 대한 세제 및 약가 지원도 단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