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새로운 데이터에 따라 통화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히면서 12일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1년물을 제외한 전 구간의 금리가 일제히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9.2bp(1bp=0.01%포인트) 오른 연 2.923%에 장을 마쳤다. 10년물 금리는 연 3.282%로 8.1bp 상승했다..
5년물과 2년물은 각각 9.7bp, 8.1bp 상승해 연 3.088%, 연 2.837%에 마감했다.
20년물은 연 3.275%로 7.0bp 올랐다. 30년물과 50년물은 각각 7.4bp, 7.1bp 상승해 연 3.200%, 연 3.049%를 기록했다.
금리 인하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꺾이자 국채 금리가 일제히 급등하며 패닉장이 연출된 것이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총재는 싱가포르 출장 중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현재 국내총생산(GDP) 갭이 마이너스 상태인 만큼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면서도 "금리 인하의 폭과 시점, 혹은 정책 방향의 변경 여부는 앞으로 나올 새로운 데이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서울 주택시장 과열에 대해 "예상보다 훨씬 높다"고 평가하며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급격한 상승세가 둔화되길 기대한다"며 통화정책만으로는 집값 상승을 제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유동성이 충분한 상황은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급 확대 등 정부의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외환시장과 관련해 "미국 인공지능(AI) 주식 변동성과 미·중 무역구조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원화 약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외환시장이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시장에 개입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 이 총재 발언 여파에 금리 연중 최고치 급등
이 총재의 발언 직후 채권시장은 급격히 요동쳤다. '금리 인하가 사실상 끝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년물부터 10년물까지 전 구간에서 금리가 급등세를 보였다.
이날 국고채 3년물(2.923%) 금리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다. 국고 5년물은 3.088%, 10년물은 3.282%, 30년물은 3.200%로 각각 뛰었다.
채권시장에서는 ▲은행채 대량 발행, ▲외국인 국채선물 대량 매도, ▲한은 총재 발언이 겹치면서 금리가 급등했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수급적으로는 연이은 은행채 발행이 부담을 줬다.
신한은행이 3년물 1조원어치를 민평금리 보다 5bp 높은 3.08%에 체결했고, 산업은행도 1년물, 1.5년물, 2년물 4500억원치를 체결했다. 11일부터 12일까지 체결물량만 2조7500 억원에 달했다.
이 총재의 주택시장 안정화 발언과 성장률 상향 언급이이 채권시장의 모든 만기물의 금리 급등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국채선물 시장에서 외국인은 3년물 1만4000계약, 10년물 3700계약을 순매도했다. 3년 국채선물은 27틱 하락한 105.81, 10년 국채선물은 71틱 급락한 114.28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6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 한은·기재부 긴급 진화 나섰지만…시장 약발 미미
채권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한은 부공보관은 "총재가 금리 인하 사이클임을 명시했고, 기존 입장을 유지한 것"이라며 "이는 시장의 잘못된 해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도 "통화정책 선회나 금리 인상 검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 관계자도 "국고채 금리 급등이 과도해 예의 주시 중"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기재부의 긴급 바이백이나 한은의 국고채 단순매입 등 안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채권시장에서는 시장이 다시 한 번 훼손된 만큼 자체적으로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ㅇ관측이 제기됐다. 긴급 매입 등 정책적 대응 없이는 시장의 변동성이 완화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 단기자금 이탈도 부담…완화 기조 복귀 여지는 남아
최근 주식시장으로 단기자금이 이동하면서 채권시장 자금 여력이 줄어든 점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머니마켓펀드(MMF) 잔액은 8월 225조원대에서 현재 217조원 수준으로 감소했고,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도 9월 말 648조원에서 11월 11일 기준 614조원으로 33조원 이상 줄었다.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의 로스컷(손절매)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투자심리도 위축됐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경기 여건을 고려하면 추가 금리 인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단기자금 시장이 안정을 찾는다면 현 수준의 고금리 자체가 채권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며 "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 초 퇴직연금 등 기관 자금의 선제적 매수 수요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시장의 시선은 이달 27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 쏠린다. "데이터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 총재의 메시지가 실제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