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 지수가 다시금 꿈틀하며 재상승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증시로의 자금 쏠림이 심화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예·적금 만기가 몰려 있는 연말 연초를 앞두고 대규모 '머니무브(자금 이동)’를 막기 위해 고금리 특판 상품 내놓기에 나섰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의 주요 자금줄 중 하나인 요구불예금 잔액이 최근 한 달 새만 22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47조8564억원으로 집계됐다. 9월 말(669조7238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만에 21조8674억원(3.27%) 감소한 것으로, 2023년 이후 최대의 월간 감소 폭이다.
반면,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팔고 찾지 않은 돈인 투자자 예탁금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같은 기간 투자자 예탁금은 76조4474억원에서 85조4569억원으로 9조원(11.77%) 가까이 늘었다.
투자자 예탁금이 80조원을 넘어선 것은 1998년 6월 통계 산출 이래 처음으로, 은행에서 빠져나간 자금 상당 부분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든 것으로 짐작된다.
대표적인 ‘빚투(빚내서 투자)’ 지표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팬데믹 불장' 이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7일 기준 26조2165억원으로, 종전 최고치였던 2021년 9월의 25조6540억원을 4년 만에 갈아 치웠다.
신용거래융자는 하루만 빌려도 금리가 최저 연 5%대에 달하고, 빌리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금리는 연 10% 언저리까지 높아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빚까지 지며 증시에 뛰어드는 것은 돈을 은행 예금 계좌에 가만히 묵혀두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은행권은 비상이 걸렸다. 은행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요구불예금 ▲정기 예·적금 등 예금성 자금과 ▲CD(양도성예금증서) 발행 ▲RP(환매조건부채권) 거래 등의 시장성 자금을 활용한다. 그중에서도 요구불예금은 예금주의 자유로운 입·출금이 보장되는데, 은행 입장에선 유동성이 높은 대신 0%에 가까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선호된다.
은행은 지금처럼 예금성 잔액이 줄어드는 경우,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시장성 자금을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리가 정기예금보다 높은 CD는 은행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단기성 자금을 확보하고, 예·적금 만기 도래 후 갈 곳 잃은 자금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고금리 적금 특판 경쟁에 뛰어드는 전략을 택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3일부터 9일까지 최고 연 20% 금리를 제공하는 '오락실 적금' 판매를 진행했다. 매주 최대 10만원씩 8주간 저축할 수 있는 상품으로, 게임 성적에 따라 우대금리를 차등 적용받게 했다. IBK기업은행도 지난달 100일 만기에 최고 연 15% 금리를 받을 수 있는 'IBK 랜덤 게임 적금'을 출시했다. 이 상품도 게임 성적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우대금리가 특징이다.
이밖에도 전북은행은 최고 연 13% 금리·12개월 만기의 'JB 슈퍼시드 적금'을, 하나은행은 최고 연 7.7% 금리·6개월 만기의 '오늘부터, 하나 적금'을 출시했다. NH농협은행도 오는 12일부터 최고 연 7.1% 금리를 제공하는 'NH대박7적금' 판매를 시작한다. 월 최대 3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 이 상품은 선착순 3만좌 한도로 판매될 예정이다.
바로바로 돈을 빼서 주식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파킹통장(수시입출식예금) 유치 경쟁도 뜨겁다. 파킹통장은 입출금이 자유롭고 일반 입출금통장에 비해 금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보통 변동금리를 취하고 있어 기준금리 인하기에는 금리 메리트가 거의 없다.
실제로 지난해 연 7~8%대로 치솟았던 파킹통장 금리는 올초 기준금리 인하 이후 연 2%대까지 뚝 떨어졌다. 이에 떠나가는 자금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은행들은 파킹통장 금리도 대폭 인상하고 나섰다.
IBK기업은행은 이달 초부터 연 최고 3.1% 금리의 'IBK든든한통장' 판매를 시작했다.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도 각각 연 최고 4%의 'Npay머니 우리통장'과 '모니모 KB매일이자 통장'을 출시하며 치열한 수신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KB국민은행의 '모니모 KB매일이자 통장'은 출시 2달여 만에 22만5000장이 팔리며 1차 한도가 소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은 바 있다. 이에 국민은행은 이달 중 은행권 최초로 기업·기관 전용 파킹통장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요구불예금과 같은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하기 위한 은행들의 이같은 노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하기인 데다, 불장 여파로 인해 자금 이탈 속도가 더 빨라져 고민이 크다”며 “내년 초까지 다양한 특판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